김승주 이사장 “죽음을 준비하듯 금쪽같은 인생을 사신 박상은 원장님”

 

 

샘병원 박상은 미션원장(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이 베트남 다낭에서 의료선교 활동 중 지난 115일 오후 불의의 사고로 소천했다. 현지 의료진이 응급 상황에 대처했지만 끝내 소생하지 못했다.

1958년 생의 박상은 원장은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고신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 미국 세인트루이스 의대 생명윤리센터 교환연구원, 미국 미주리주립대 신장내과 교환교수 등을 거쳐 2001년 안양샘병원에 부임했다. 그 후 진료부원장, 병원장, 대표원장 등을 거쳐 현재 미션원장에 이르기까지 병원 성장을 이끈 것과 더불어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 이웃을 위한 진료봉사 등 의료적 취약 계층을 돕는 일에도 힘써왔다.

그는 장기려 박사에게 큰 영향을 받아 그 분을 뜻을 이어가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의료선교의 선봉에 한국누가회 및 아프리카미래재단 등 다양한 사역을 지속했다. 갑작스로운 소천에 베트남 현지에서 입관 및 발인 그리고 화장을 마쳤으나, 아직 국내에서의 장례 일정은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베트남 현지에 빈소가 마련됐다.

본헤럴드는 고() 박상은 미션원장님의 뜻을 기리는 관련 기사를 소식이 이어지는대로 알리기로 하고, 최근 박상은 원장님과 깊은 교분을 나눈 김승주 이사장(안양호스피스 선교회 대표)의 추모사를 전한다.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대표 김승주 목사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대표 김승주 목사

【추모 글】 고(故) 박상은 원장님을 추모하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친히 한 세대를 대표할 괄목할만한 인물들을 세워 가셨습니다. 저는 박상은 원장님이 그런 분이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종합병원 경영자로, 대학교수로, 선교 전문가로, 국가기관의 장으로...

특히 기독교가 이렇게 수모를 당하며 날로 높아지는 시련의 파고를 맞고 있을 때, 그 물결을 맨몸으로 막으며 아니야! 예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야!”를 외치던 분이셨습니다.

제가 원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20여 년 전. 이제 막 호스피스 제도화를 위한 논의가 시동을 걸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종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회관에서의 구수회의를 마치고 개인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목사님! ‘호스피스 병동 24를 출간하셨군요.”라며 축하 인사를 해 주셨습니다. 첫 인상은 소년같이 수줍은 웃음을 가지셨구나!’ 했는데 그 웃음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호스피스 관련 각종 세미나 현장에서도 틈틈이 만날 수 있었고, 제가 이사장으로 섬기던 한국호스피스협회 세미나 강사로 초청하기도 하는 등 저와의 교제는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급변하는 안팎의 상황을 설명하고 허브 사역으로의 전환과 동역을 제안하였을 때 흔쾌히 저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원장님과의 공식적인 동역기간은 비록 짧았지만, 유튜브 아카데미 강사를 비롯하여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예심아카데미’(4) 녹화를 마쳤지만, ‘안호선’(49) 교육생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생명윤리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써 해박한 지식과 최신 정보를 알려 주셔서 수강생들은 방대한 영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호선 식구들과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셈이 되었습니다.

영상교육 자료를 안호선MOU관계인 미국 뉴저지 필그림교회’(네이버 플러스 호스피스) 강의 자료로 제공할 것을 건의했을 때 역시 흔쾌히 허락하셔서 그곳에서도 교육 자료를 공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원장님은 참 따뜻하고도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따지자면 우리 사회 최상위 클래스에 속하신 분입니다만 그 분에게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위압적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마치 이물 없는 친구처럼! ‘성공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는 것을 육필로 보여 주시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교육 녹화를 마치고 마침 로뎀나무 유기농으로 재배한 풋고추와 유정란을 조금 드렸을 때, 많이 기뻐하시더니 귀가 후에도 카톡으로 감사 인사를 다시 보내 주실 정도로 소박하신 분이셨습니다.

원장님은 아무리 열악한 기관의 요청이라도 거절하는 일이 없다고 들었고, 열악한 기관에는 오히려 후원금을 놓고 오시는 분으로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저희와는 사역지는 달랐어도 안호선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환우를 위한 성탄키트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샘병원 직원들 앞에서 그 동안 지켜 본 안호선에 대하여듣기 민망할 정도로 과분한 칭찬을 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안호선이 그 분과 동역을 시작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샘병원 원목 출신 독일호스피스박희명 선교사님은 좋은 분들끼리 함께 모여 귀한 사역을 만들어 가시니 좋은 일들이 가득하리라 믿습니다하며 기뻐하기도 하였습니다.

떠나시는 날에도 카톡으로 마침 도착한 남천병원 사회복지사님의 안호선기고글을 보냈는데 클릭이 늦어서 이상하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원장님은 평소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카톡은 빠르게 확인하곤 하여 시간을 쪼개어 사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궁금하기도 하였는데 그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로뎀나무 활성화 방안에 대하여 구체적 논의를 건의해 놓은 상태였기에 그것만큼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

원장님 나이 65! 아직은 한참을 열정적이셔야 할 나이신데 우리 앞에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울고 있다고 했습니다.

원장님은 안호선기고(강의)에서 자신이 지켜 본 죽음은 준비된 죽음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이런 글(강의)는 자신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남은 시간을 금쪽같이 쪼개어 살면서 늘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던 중. 부르심을 받으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에게도 많은 도전을 주시던 분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을 하자면 얼마든지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훌쩍 떠나신 것은 아직 남아있는 일들은 우리가 하도록 남겨 놓고 가신 것이라고!’

원장님! 원장님은 젊은 시절에는 장기려 박사님을 흠모했었다고 하셨습니다. 코드와 대화가 통하는 동역자로 만나게 된 것이 저희들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인간적 아픔과 아쉬움이야 말로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주 안에서의 재회가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재 확인하면서 오늘의 슬픔을 참아 내려고 합니다. 그간 많이 고마웠습니다.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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