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대한 영적 지각력을 소유한 말씀 사역자

  • 입력 2020.09.1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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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연속칼럼】 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2)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인 말씀 사역자

영이신 하나님의 소통 방식은 인간의 경우와 다르다. 물론 성경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직접 말씀하신 사례들도 나오긴 하지만 예외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특정 개인에게 말씀하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서 은총의 사건에 해당한다. 대부분은 누군가를 세워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곤 하셨다. 하나님의 입이 되어 대변자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예언자 곧 대언자이다. 성경의 모든 예언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을 전했으므로 대언자에 속한다.

대언자란 누군가를 대신하여 말을 전하는 자이다. 심부름꾼이라고도 부른다. 왕의 대언자는 왕의 심부름꾼으로서 왕의 말을 대신 전하는 자이다. 전령이라고도 부른다. 하나님의 예언자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하나님의 말을 대신 전하는 자이다. 선지자는 스스로 생겨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신다. 한 사람이 말씀 사역자로 세움 받았다면 그는 곧 대언자이다. 대언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세우시고 그렇게 세워진 대언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소위 신탁의 말씀은 오직 세움 받은 예언자에게만 임한다.

역사와 효험이 뒤따르는 말씀 사역자

스스로 깨우쳐 득도에 이르는 종교도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의 한 경지를 이룬 선지자들은 스스로 터득한 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깨우쳐 주셔야만 선지자가 태어난다. 선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의존적이다. 하나님과 말씀을 떠나 선지자를 따로 생각할 수 없다. 대언자는 말씀이신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지자들에게 주어지는 말씀의 본질은 같지만 사역의 내용과 방향은 다양하다. 사역의 방향이나 내용이 다를지라도 그들이 선지자로 세움 받는 근본 과정은 동일하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선지자로 정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신다. 선지자가 전할 말을 그의 뇌에 이상으로 집어넣고 입에는 언어로 넣어주신다. 하나님이 주신 말에는 반드시 역사와 효험이 뒤따른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말할지라도 그 말에 아무런 증험이나 성취가 없으면 선지자가 아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일으키신 사람이다.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생명의 역사를 통해 합당한 영광을 드러내신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인 말씀 사역자

하나님은 자신이 손수 세우신 대언자를 통해 자기 백성들에게 들려줄 말씀을 알려주신다. 오늘날의 말씀 사역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 18:15) 하나님이 세우신 대언자 모세가 사라지자 여호수아가 뒤를 이었고 연이어 많은 선지자들이 일어났다. 나중에는 온 율법과 선지자의 총합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 대언의 말씀들은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드러나시기까지 예언자들의 사역을 통해 면면히 이어졌다.

대언자는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다. 중보자인 셈이다. 말씀 사역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에 존귀하게 여겨졌다. 제사장이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집행했다면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백성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제사장의 중보 사역이 상향적이었다면 선지자의 중보 사역은 하향적이었다. 제사장의 제사 행위는 말씀을 상징했고 선지자의 메시지는 제사의 의미를 알려주었다. 호렙 산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응답했다. 모세는 중보적 대언자였다.

대언의 영으로 충만해야 하는 말씀 사역자

대언자의 형체는 참으로 위엄이 있다. 그의 발은 땅을 딛고 그의 눈은 하늘을 우러른다. 그의 귀는 위로부터 들려오는 말씀에 열려 있고 그의 입은 세상에 외칠 말씀으로 꽉 차 있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인 고로 말씀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모름지기 대언의 영으로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은 입이 둔하다며 백성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모세에게 아론을 붙여주셨다. 아론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언어 구사에 탁월했다. 하나님은 아론에게 모세를 하나님처럼 세워주셨다. 모세는 아론에게 말을 주고 아론은 모세를 “대신하여 말하는 자”(대언자, 히브리어로는 나비)가 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지자가 되었고 아론은 모세를 위해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었다.

대언자는 하나님의 입을 대신하는 자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그들의 입에 말씀을 넣어주셨다. 입을 열면 말씀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예언자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런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해야 했다.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신 18:18) 오늘 말씀 사역자의 문제는 입에 담은 말씀 없이 뭔가를 주절대고 말씀 탐구와 기도로 말씀 받으려는 당연한 시도를 비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령의 감동이든지, 묵상을 통한 깊은 깨달음이든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려는 진지함이 말씀 사역자에게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흉이고 부끄러움이다.

말씀에 대한 영적 지각력을 가진 말씀 사역자

“미리 보는 자”라는 뜻의 선견자(로에 또는 호제)도 대언자다. 사무엘 선지자가 있기 훨씬 전부터 이스라엘에는 하나님께 물으려고 할 때에 선견자를 찾는 전통이 있었다. 선견자는 선지자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역할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했다. 그들은 꿈이나 환상을 통해 무언가를 보았다.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오늘날의 뜻으로 이해하자면 그들은 탁월한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말씀에 대한 영적 지각력이 뛰어난 자였다.

오늘날의 말씀 사역자가 구약의 예언자나 선견자들과 다른 것은 그들이 단순한 메신저였음에 비해 말씀에 해석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말씀 사역자의 영광은 예언자에 버금간다. 비록 예언자들이 지닌 신비함과 영적 능력 면에서는 덜할지 모르지만 영광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음은 비할 바 없는 축복이다. 사무엘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무리지어 있었고 사무엘은 그들을 이끌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이 왕성하게 펼쳐졌을 때 “선지자의 무리”, “선지자의 생도들”로 불리는 집단이 있어 그들을 도왔다.

선지자는 마치 광야의 성막처럼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빛이 그 백성 가운데 있음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살도록 백성 가운데 세우신 진리의 성채였다. 불순종하는 백성을 경고하고, 약한 이들을 약속의 말씀으로 격려하며, 말씀을 버린 왕들에게는 준엄한 책망을 외쳤다. 대언자는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종이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에게 전달한 메신저였다. 선지자, 선견자, 대언자, 예언자처럼 오늘의 말씀 사역자에게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분명한 말씀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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