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터 다니엘서 묵상이 시작된다. 때마침 우리교회는 한국교회가 연합하는 [2020다니엘기도회]에 참여중이다. 다니엘서는 남유다 왕국이 망국으로 가는 시대배경으로 이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제1차 유다침공을 감행하여 유다 왕 여호야김을 사로잡고 성전의 기물을 빼앗아 바벨론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유다 백성 일부를 잡아가는 제1차 바벨론 포로의 역사다(단1:1-2). 다니엘서는 그 포로 된 자들 중에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실 인물들을 세운 이야기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포로 중에서 출중한 몇 사람들을 뽑아 자신이 부리는 유능한 일꾼으로 삼으려는 소위 ‘느부갓네살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이 N-kids 청소년들은 바벨론 왕궁에서 마련한 특별훈련과 대접을 받아 삼년 동안 새로운 인물들로 구비되어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세 명의 이름은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라고 하는 이들인데 이들은 바벨론식 개명을 당하여,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단1:3-7). 다니엘서는 예언서의 메시지로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역사적 배경과 함께 하기에 흥미진진하다. 뭔가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질 때 바로 그 일이 일어난다. 오늘 묵상할 말씀이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단1:8)
당대 최강의 나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엄명에 의해서 유다자손의 젊고 우수한 인재를 자신의 입맛대로 새롭게 탄생시키려는 계획은 놀랍게도 처음부터 벽에 부딪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유다의 소년,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니엘의 견고하는 뜻 때문이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이 베푼 음식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다. 왕이 베푼 최고 고급의 음식 자체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이방의 뜻과 계획대로 우리 인생이 좌우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선택으로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결정한 것이다.
‘뜻을 정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뜻은 무엇인가? 뜻은 마음의 의지다.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계획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하는 마음의 결심이다. 뜻을 정하는 것은 기독교 영성에서 갖추어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단순히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작심하고 삼일 만에 포기하는 그런 변덕스러운 마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평생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에 있다. 따라서 우리가 올바른 것을 선택한 삶은 분명히 배우고 훈련될 필요가 있다.
달라스 윌라드의 ‘영성형성’이 기억난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은 흑암의 나라가 존재하도록 허용한다. 우리가 중생하기 전에는 우리의 기본적인 본성이 작동하지 않지만 빛의 나라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움직일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이 영성 형성과 관련해 중요한 이유는 이런 변화가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는 계속해서 선택을 하고, 우리의 성품을 개발해 간다. 그리고 때로 그 경험은 아주 힘든 것이 될 수도 있다.”(‘The Kingdom Life 제자도와 영성형성’.p.59).
그리스도인의 삶은 평생의 과정이며 이 영성형성에 있어서 우리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의지를 갖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다. 우리의 대적은 하나님의 자녀인 ‘나’와 그리고 그 백성인 ‘교회’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언제나 흑암의 세력과 전쟁을 한다.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산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당면한 일들에서 그의 뜻을 추구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번 11월에 진행된 ‘2020다니엘기도회’에서 은혜가 컸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한 예로, 난치병 뇌전증 아이를 둔 한 엄마의 간증이 우리를 울렸는데, 그녀는 자신이 맞은 흑암의 고통과 고난의 상황 속에서 연약했던 신앙이 점점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로 형성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린 딸의 치유를 위해 처음에 단순히 ‘고쳐 달라’는 간절한 기도로 나아갔지만, 번번이 좌절되는 경험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다. 마침내 기적 같은 치유가 일어났지만 그녀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한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의 은혜로 계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왜 당신은 더 일찍 오지 않았을까요?”, “왜 나에게만 이런 기적이 일어나고 똑같이 고통스러운 저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라는 물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나는 네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었다”고 알려주셨다. 그녀는 어떠한 순간에도 심지어 그 고통과 고난이 다시 온다고 할지라도 내가 어떤 선택과 반응을 하는 것인가를 배웠다. 매일 우리의 올바른 의지와 선택은 우리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인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되게 이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서 그분을 경외하기로 의지를 드린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은 미래의 거창한 어떤 성과를 이루는 목표보다는 오늘 내가 주님을 인정하고 계속 따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이 흐르고 그 나라와 의는 계속 진행되고 이루어진다(단1:9).
매일 함께 ‘다니엘기도회’를 참여하던 우리 교회 한 성도가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며 나가버렸다. 간증들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저렇게 심한 고난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성도들이 믿음의 영성형성에 있어서 얼마나 연약한 상태에 있는가를 깨닫는다. 참 속상하고 부끄럽다. 그렇다. 내 사역의 목표는 정말 달라져야 하고, 바른 것으로 더 매진해야 한다. 그것은 이 흑암의 세상에서 우리가 주님을 향해 매일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나아가기 위해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 바울이 말한 사역의 목표는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돕는 일’이었다(엡4:11-14). 정말 주님의 뜻을 좇는 제자도는 우리 인생의 필수 과정의 선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