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외치기 전에 엎드려 받아야 할 영광의 말씀

  • 입력 2020.12.18 10:51
  • 수정 2020.12.25 10:13
글자 크기
프린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27)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하나님의 음성을 엎드려 기다린 에스겔

길고 오랜 기도의 산등성이를 넘으면서 에스겔은 낙오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강인한 메신저였던 에스겔은 온갖 위기를 극복하고 난공불락 같던 기도의 정상에 다다랐다. 절망의 한복판에서 절규하던 아픔을 뒤로 하고 그는 폐허더미로 화한 삶의 지경을 억센 기도로 갈아엎기 시작했다. 언 땅을 눈물로 녹이고 이미 잿더미로 화한 영광의 성전 터를 기억에 아로새긴 채 불타는 의지의 괭이를 끝없이 내리쳤다. 그나마 그를 붙든 것은 기도의 불씨였다. 성전에서 익힌 제사 정신과 말씀으로 단련된 예언의 능력이 영혼의 심지에 옮겨 붙은 불씨를 안전하게 키웠다. 작은 불씨는 이내 반짝 불꽃을 일으키며 절망의 고산들을 부수는 불덩어리가 되어 천지를 진동시켰다.

기도의 뇌관에 말씀의 권능이 불꽃을 일으키자 에스겔의 가슴이 폭발했다. 그는 거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또 외쳤다. 하나님의 영광이 말씀의 꽃이 되고 굴복하는 영혼들이 말씀의 열매가 되어 사망의 골짜기를 생명으로 가득 채워갔다. 그렇게 말씀으로 얻은 존귀한 영혼들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진바 되었다. 에스겔이 엎드린 것은 그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다.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 그에게 임했을 때 에스겔은 저항하지 않았다. 반문하지도 않았다.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엎드릴 마음을 갖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에스겔은 엎드려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 놓여 있었으니 그가 느꼈을 침잠(沈潛)의 깊이와 무게가 어떠했을지는 누구도 감히 상상키 어렵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엎드리고 일어선 에스겔

언제까지 그렇게 엎드려 있어야 했을까?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엎드렸기에 에스겔은 일어서라는 엄명이 있기까지 언제까지고 엎드려 있어야 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아마 에스겔은 끝없이 엎드려 있었을 것이다. 석고상처럼 육체가 굳고 숨이 멎기까지 에스겔은 엎드려 부르짖는 자세를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에스겔을 하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엎드려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던 에스겔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스며들기 전에 주님의 긍휼이 먼저 임해왔다. 엎드려 하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던 그에게 익숙한 소리가 임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향해 말씀하셨다. 엎드린 에스겔에게 일어설 것을 명했다. 에스겔은 즉각적으로 일어섰다.

우리가 엎드려야 함은 일어서기 위함이며 일어섬은 걷고 행하기 위함이다. 순종은 언제나 하나님의 타이밍에 자신을 절묘하게 맞추는 것이다. 엎드리고 일어서는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엎드려야 할 때 엎드리고 일어서야 할 때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일어서라는 명령이 오기 전에 몸을 일으키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엎드려 눈물로 숱한 밤을 지새웠다 할지라도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전에 일어나는 것은 비록 일을 위한 것일망정 이미 불순종에 빠진 것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엎드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미처 듣지 못하는 것이며, 일어서라는 명령이 있기 전에 스스로 판단해서 성급하게 일어서는 것이다. 조급함의 망령에 사로잡혀 가장 중요한 명령을 접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에스겔

하나님은 화급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만 귀를 열어놓은 일꾼을 원하신다. 일이 아니라 일꾼이다. 업적이 아니라 순종이다. 성급하게 일어서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심령을 따라 지어낸 말에 스스로 현혹된다. 성급한 영혼은 미혹에 빠지기 쉽고 그의 입술에서 흘러내리는 달콤한 말이 사람들을 실족케 만든다. 엎드려 주님의 정하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엎드릴 만큼 엎드렸을 때 비로소 그를 일으켜 세울 명령이 하달된다. 하나님의 음성이 임했다.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엎드렸던 에스겔은 즉각 일어섰고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히 임했다.

엎드렸던 에스겔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기도와 묵상 속에 화석처럼 굳어가던 그의 몸이 말씀의 강림으로 인해 곧게 펴졌다. 빈들에서 외롭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던 그에게 권능의 말씀이 폭풍처럼 임했다. 그가 엎드리지 않았다면 “일어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엎드려야 말씀을 받는다. 엎드리지 않고 말씀을 받았다면 그것은 영광의 말씀이 아니다. 영광의 말씀은 서재보다 골방에서 익는다. 말씀 탐구는 매우 중요하지만 엎드려 받은 말씀이 아니면 영광의 빛을 드러내기엔 충분하지 않다. 에스겔은 엎드려 말씀의 영광을 접했다. 엎드려 흘린 눈물이 기도로 증발되어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이르자 영광의 말씀이 권능으로 에스겔을 뒤덮었다. 권능의 말씀은 그의 전 인격을 사로잡았다. 능력의 말씀이 영혼에 흡수되고, 마음에 각인되고, 생각에 스며들고, 머리에 기억되고, 언어에 배어들었다. 말씀의 불을 간직한 에스겔은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 세상 한 가운데 우뚝 섰다.

서서 외치기 전에 엎드려 받아야 할 영광의 말씀

오늘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언가 말씀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문장을 가다듬고 한 편의 설교를 완벽하게 작성하는 것은 나중 문제다. 설교의 핵심이 되는 말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주어진 말씀인 성경 본문에서 매일의 상황에 적합한 말씀, 스스로 원하거나 청중이 기대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던져주는 말씀을 받음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어떤 형편에서도 위로가 되고 축복이 되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때론 듣기에 거북스럽고 아프고 거친 말씀이라도 영혼을 살리는 그런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몇 밤을 새우면서라도 기도의 군불을 때야 한다. 서재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강대상 아래 무릎 꿇어야 하고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보따리를 싸고 빈들이나 산으로 향해야 한다. 그것이 에스겔 선지자가 보여준 영광의 말씀받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세상이 맞닥뜨린 현실은 고통의 전면이다. 후면과 측면의 고통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전대미문의 전면적 고통의 침공에 속수무책 상황이다. 급속히 시작된 재앙의 끝머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삶은 더욱 꼬여만 가고 든든한 희망이라고 붙든 끈마저 썩은 동아줄임이 생존 의지마저 꺾어버린다. 430년 노예생활의 끝머리에서 히브리 백성은 재앙의 폭우 속에서도 평안을 노래할 안전지대인 고센에 거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겐 고센이 없다. 교회도 더 이상 고센이 아니다. 재앙의 불바다를 걷고 죽음의 피바다 사이를 지나가야 할 이 험난한 세월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재앙이 깊고 무거우면 주님의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징조임을 우리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현금(現今)의 상황이 나팔 재앙이냐 대접 재앙이냐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해산한 여인에게 출산 직전의 산통이 급히 찾아오는 것처럼 주님의 오심이 그러할진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경고와 위로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갈고닦아야 한다.

엎드려 부르짖고 눈을 밝혀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선명한 메시지를 끄집어내야 한다. 메신저는 달리면서도 서판에 기록을 남기고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호흡을 모아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산 자의 땅에서 남은 시간이 손바닥 넓이일 뿐이라도 마지막 유언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충분하다. 대파국을 향한 역사의 내리막 질주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네 말을 탄 기수들이 번갈아 지구의 사방천지를 헤집고 다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인류를 향한 재앙의 말발굽자국을 남긴다. 지금은 검은 말과 청황색 말이 선두에 섰다. 역병이 창궐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실체 뒤를 바짝 좇는다. 영광의 주님이 역사와 시간의 끝자락에 방점을 찍고자 다가오신다. 유혹과 위협을 견디며 신랑을 위한 정결함을 지켜온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천군 천사를 들러리 삼아 날아오신다. 바람의 숨결 따라 실려 오는 천상의 합창이 신랑과의 해후를 손꼽아 기다리던 신부의 귓전을 울린다. 신랑의 길을 예비하던 메신저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 한결같이 왕의 행차를 알리는 경적소리를 터뜨린다. 그대 말씀의 대언자여, 녹 쓴 나팔을 교체하고 찢어진 북을 보수하여 완성을 위한 종결의 팡파르를 드높이 울리게 하라!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