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리스도의 어깨에 두리니 열면 닫을 자가 없으리라

  • 입력 2021.01.2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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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95) 열쇠(Key)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들린다. ‘아는 것이 힘’이다. 스포츠는 규칙을 앎에서, 구상화는 대상이 표현된 상태를 살피는 데서, 추상화나 음악은 작품에 담긴 현상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데서 즐거움이 시작된다. 스포츠건, 예술이건, 그로부터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려면 우선 그 대상에 대한 최소한의 ‘앎’이 필요하다. 요한은 독자들이 알기를 원한다. 그리스도를 알기 원한다. 그가 지금 참 이스라엘, 즉 교회의 머리로서 가지신 지위와 이것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더 잘 알게 하고자 한다. 엘리야김의 역사적 상황을 교회와 관련한 그리스도와의 상황과 비교한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다. 이사야 22:22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언어다. 그리스도의 모습에 섞어 넣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다. 합법적인 안내자다. 힐기야의 아들, 하나님 종 엘리아김은 셉나를 대신하여 히스기야 가문의 주요 청지기로 임명된다. 그에게 ‘다윗 집의 열쇠’가 주어진다. 그는 ‘성경계보’ 속에 나와 있는 인물 2197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의 남유다 성읍들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위협하고자 랍사게를 보냈을 때 아람 방언을 알아들었다고 말하고 있다(왕하 18:26). 열쇠, 옷, 띠는 총애를 잃고 추방당한 셉나의 자리를 차지할 고관 또는 왕의 청지기 엘리야김의 권위와 권능의 상징이다. 이사야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가 모든 영역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왕국과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신다고 말한다.

1. 엘리아김에게 다윗의 집의 열쇠를 맡기다

하나님은 엘리아김의 어깨 위에 다윗의 집의 열쇠를 두신다. 유다 왕국을 위한 통치의 책임을 뜻한다. 다윗 집의 열쇠의 유형론적인 예언의 이해를 촉진시킨다. 원래 열쇠는 핀들이 딸린 평평한 나뭇조각이었다. 이러한 핀들은 오목한 빗장 구멍들과 일치하였다. 문을 열기 위하여 사람은 자기 손을 구멍에 넣고 열쇠에 맞먹는 핀들로서 빗장의 핀들을 올렸다. 열쇠는 큰 나무 문의 열쇠였다. 아마 여러 가지 긴 못을 박아 고정한 하나의 긴 나무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열쇠는 대개 매우 컸다. 호주머니에 넣을 수 없었다. 허리에 달고 다니거나 심지어는 어깨에 메고 다니기까지 하였다. 어깨에 있는 인대와 힘줄은 고무줄 역할을 한다. 탄성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어깨가 튼튼하고 강해서 만들어내는 힘이 아니다. 인간의 어깨는 그리 강하게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한계를 갖는 약한 어깨로 만들어 주셨다. 구약에서 열쇠는 그 집안의 청지기, 믿을 수 있는 하인, 가사를 전담하도록 주인이 택한 사람에게 주어졌다.

엘리야김은 메시야와 비교된다. 전자는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사 22:21). 후자는 ‘영존하신 아버지’다(사 9:6). 전자는 그의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다(사 22:23). 후자는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다(사 9:7). 요한계시록은 열쇠를 가지신 이가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할 어린 양이다.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다. 전자는 하나님에 의해 왕의 청지기 지위를 차지한다. 후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평강의 왕’이다(사 9:6).

엘리아김은 다윗의 집 열쇠를 맡은 청지기다. 사람들로 왕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허락한다. 행정의 책임을 진다. 백성들의 아버지가 된다. 칠십인역에는 열쇠를 언급하지 않는다. ‘다윗의 영광’만을 언급한다. 1세기 유대 사상의 문헌들 속에서 메시야 사상과 맞추어 해석되었다. 엘리아김은 ‘다윗의 열쇠’를 관장하는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이해된다. 엘리아김은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엘리아김은 예언 전 모형인 그리스도는 참 이스라엘로서 교회를 다스린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할 자를 결정하신다. 이사야가 사용한 이미지는 충격적이다. ‘내가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사 22:22). 당시에는 길고 무거운 나무 열쇠를 어깨에 매고 다녔던 것 같다. 엘리아김에게 주어진 권세 외에도 열쇠가 신뢰와 책임의 이미지를 암시한다.

빌라델비아 그리스도인들은 몇몇 유대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인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압력을 행사한 수단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회당에서 쫓겨났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충돌은 이념이 아닌 종교적 차이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예배하는 자들만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원과 심판의 권능을 행사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이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회당이 아닌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신다. 회당의 문은 닫혔지만 하나님의 나라 문은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열쇠는 다윗의 권세와 관련이 있다. Targum은 종이 성소의 열쇠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가 성전에 접근하도록 허락하신다고 주장한다. 열린 문이다.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요 14:6; 행 16:31). 엘리아김은 하나님의 종이다. ‘나의 종’에 해당하는 아브디(עבדי)는 이사야 40-53장에 13번이 나타난다. 이사야 종 예언과 쉽게 결합되어 있다. 엘리아김에 관한 세부 사실로 증명되는 것처럼 예언 형태를 취한다. 열쇠를 맡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열쇠는 청지기의 성품에 대한 신뢰와 신임의 상징이다. 열쇠는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권한과 책임의 상징이다.

2. 그리스도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이사야 22:22의 인용이다. 엘리아김의 어깨에 열쇠를 두신다. ‘다윗 집의 열쇠’다. 왕과 궁정에 나아가는 권한을 의미한다. 엘리아김은 국가의 비서실장으로서 역할을 한 것이다. 열쇠는 고대사회에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주어졌다. 열쇠가 열 수 있는 것에 비해 열쇠는 매우 작다. 큰 문의 열쇠는 힘을 상징한다. 따라서 열쇠는 힘, 신비, 독점 등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열쇠로 열 수 있고 닫을 수 있는 것은 권한이다. 열쇠로 닫고 열어야 하는 것은 책임이다. 에스라 시대에는 네 명의 레위인과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성전 열쇠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대상 9:27). 그리스도는 자신이 거룩하고 진실할 뿐만 아니라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고 밝힌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열쇠를 주신다(마 16:19). 신뢰와 권세 주제 위에 세워진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기 때문에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는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베드로는 책임이 있다. 땅에서 매고 푸는 것으로 하늘에 있는 것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제자권 행사에 관한 전문적인 용어다. 열쇠를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열쇠를 받아 관리하는 자는 베드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다. 그 열쇠로서 그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에게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 엘리아김의 어깨에 다윗의 집의 열쇠를 두시듯이, 예수님께서 그의 집, 즉 하나님의 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겨서 그를 그 집의 청지기로 삼으신다는 말씀이다. 베드로나 제자들이 독자적으로 특별한 의무나 도의적인 의식을 금하거나 허용함에 있어 그들에게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나라 문들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늘나라는 종말 시의 하나님의 영적 통치를 가리킨다.

Delivery of the Keys, Pietro Perugino, 1481–1482
Delivery of the Keys, Pietro Perugino, 1481–1482

엘리아김의 어깨에 둔 ‘다윗 집의 열쇠’는 미래적 이스라엘 통치자에 대한 예언과 아주 현저하게 병행되고 있다. 엘리야김은 이스라엘 왕을 섬기는 총리다. 그의 왕국에 대한 일시적인 통치는 더 큰 왕국을 다스릴 그리스도의 보다 위대하고 영원하신 통치권을 드러내도록 만들기 위하여 발전시킨 예언의 역사적 경향이다.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갖고 계시는 것은 그분을 하나님의 나라 곧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권세를 갖고 계시는 다윗의 후손 메시야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심판과 은혜를 통제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 그리고 다윗의 열쇠는, 사망으로부터 해방되며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속죄의 동일한 행위의 두 부분임을 말해 준다.

엘리아김에게 주어진 ‘다윗 집의 열쇠’는 ‘열고 닫을’ 수 있었다. 엘리아김의 절대적 권능과 권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권세와 힘과 아울러 신뢰와 책임이 강조된다. 유대인들은 아마 빌라델비아의 그리스도인들을 회당에서 추방했을 것이다. 빗장을 걸어 잠갔을 것이다. 유대 세계에서 전반적으로 그랬다. 그러나 회당에서 닫는 권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만이 다윗의 열쇠를 갖고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음을 선언한다. 회당 문은 닫혔지만 하늘 문은 열려 있다. 새 예루살렘을 향한 문은 열려 있다. 누구도 닫거나 열 수 없다. 반전 패턴(pattern of reversal)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는 자들은 회당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게 된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된다.

이사야로부터 인용한 구절이 미래의 가능성으로부터 현재의 사실로 전환되었다. 그리스도는 진실하신 청지기이면서 주인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다니신다. 때로 천사들이 지하 세계를 열고 닫기 위해 열쇠들을 사용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허락하시는 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주관하시는 그의 권세를 강조한다. 그리스도가 새 예루살렘을 여시면 아무도 그 결정을 바꿀 수 없다. 그리스도가 문을 닫으면 이 결정 또한 절대로 변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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