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자 : 임승훈 목사(더감사교회 담임, 위대한맘 인천한부모 센터장, 더감사운동본부장)
최원영 대표(본헤럴드 대표, 본푸른교회 담임목사)
▶일시 및 장소 : 2021년 7월 7일 낮 11시, CTS 경인방송국
▶동행취재 : 윤홍식 편집국장
▶본 기사의 사진 중 마스크가 없는 단체 사진은 코로나 이전에 촬영한 사진임을 미리 밝힙니다.
Q1. 임승훈 목사님의 사역이 좀 특별하다. 어떻게 이런 특별한 목회를 시작하게 됐나?
A. 나의 사역은 더감사교회로부터 시작됐다. 더감사교회 2013년 12월 초에 시작된 신생교회다. 교환목회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목회적인 어려움이 있어 사의를 표하고, 무작정 가족을 거느리고 인천 계산동에서 겨울 둥지를 틀었다. 우리 가정이 더감사교회의 시작이다. 어려운 시절과 추운 겨울이 겹쳐오니 자연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으나 다 같이 인내하고 감사하며 다시금 도전하자고 온 가족을 독려했다. 기도하는 중에 ‘옛날 일을 생각지 말고 새 일을 행하시겠다’(사 43:18-19)는 말씀의 응답을 받았고, 그때 마침 데살로니가서를 묵상하던 중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감동돼 교회 이름을 「더감사교회」라 명명하였다(살전 5:18).
작은 교회의 장점은 목회자가 자유롭다. 정식으로 세무서에 신고하고 지방에 교회 등록한 후 최소한의 절차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특별한 교회 처소 없이 집에서 시작했다가 이듬해 10월에 CTS 경인방송 지사장님이 여기 방송국 내에 예배처소를 내주셨다.
교회를 개척할 때 분명한 생각을 가졌다. ‘교회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래서 교회의 두 기둥 세 바퀴를 구축했다. 하나는 ‘더감사운동본부’를 통한 감사운동의 전개이고, 다른 하나는 ‘인천 한부모회(싱글맘) 가정지원센터’를 통해 인천의 수많은 싱글맘들을 돌보겠다는 소명이다.
Q2. 두 가지 사역을 보니 우리 시대의 아픔이 배경으로 있는 것 같다.
A. 그렇다. 개척을 할 무렵 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집중하게 됐다. 요즘은 감사하지 못하는 사회다. 감사가 없다. 감사가 없으니까 가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지금은 20만 쌍이 결혼하면 10만 쌍이 이혼한다. 문제는 조이혼율(결혼한 당해 이혼)도 점점 증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문제는 출생률은 줄고 사망률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며 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방 같은 경우는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하며 인구 이동에 따른 수도권 인구 집중은 주택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주택난이나 취업 등의 문제로 인해 젊은이들은 결혼을 꺼리고 있다. 이성교제를 해도 결혼을 목적으로 만나기보다 연애 개념으로만 만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사회지수가 거의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많이 깨어지는 것이 가정이라는 것을 보게 됐다. 특별히 혼자 사회적 냉대와 경제적 고통을 당하는 한부모 가정과 그중에 싱글맘들에 대한 상처를 지워주는 것이 나의 사역의 기반이다.
Q3. 그렇게 싱글맘 사역을 하게 됐는데, 결정적인 동기가 있었나?
A. 몇 해 전 나의 목회에 큰 힘이 되시던 권사님이 계셨는데, 어느 날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깨어나지 못한 채로 한국에 와서 투병 중 소천했고, 1년 후 하나뿐인 딸도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엄마 곁을 떠났다. 그 권사님이 받은 충격도 컸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는 목회자인 나에게도 큰 아픔이었다.
또 한 가지 사건은 2014년도에 DTS훈련에 들어가서다. 7개월 훈련을 마치고 9월에 단기선교여행을 떠나는데 전국을 다녔다. 열흘간 돌아다니면서 같이 동반한 동기생인 자매가 싱글맘이었다. 이혼하게 된 사연과 아이에게서 받은 상처들을 이야기 나누는데, 앞선 권사님의 아픔과 싱글맘인 자녀의 아픔이 오버랩되며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은 내 마음에 어떤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것이 사역으로의 부르심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가 그해 연말, NGO ‘사단법인 글로벌비전’의 책임자로부터 한부모(싱글맘) 사역에 관한 소개를 받았다. “만일, 임 목사가 시작만 하면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말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부어 이끄시는 무거움을 주시니, 책임감이 되고 사명이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해 연말 ‘인천 한부모회(싱글맘) 가정지원센터’를 설립하고 한 달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5년 2월부터 지금까지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Q4. 이혼이나 사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홀로 된 분들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센터를 갖추게 됐나?
A. 당연히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다. 지역 내 주민자치센터를 몇 번씩 뛰어다니면서 사회복지사 공무원들을 만나고 설득하면서 한부모들을 소개해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써늘했다. 개인정보보호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물질이 필요하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부할 거라는 말을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한 가정 또 한 가정 찾아서 홀로 사는 여성 여섯 분과 싱글맘 한 가정을 모았다. 그렇게 2015년 1월에 첫 모임이 열렸다. 작년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쉼 없이 매달 모임을 가졌고, 지금까지 66회 차 모임을 이어왔다. 단톡방에 모임을 공지하면 20~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다.
Q5.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천 한부모회(싱글맘) 지원센터에서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A. 2015년 1월에 첫 모임을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사역이 펼쳐졌다. 매달 첫 토요일 오후에 CTS경인방송에서 모여, 미혼모를 비롯한 사별과 이혼 등으로 홀로 된 엄마들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나눔과 치유가 이뤄졌다.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이 30~40여 명의 회원으로 늘면서 회장과 총무를 비롯해 기도대장과 행복도우미를 세워 조직을 꾸려가고 있다. 이렇게 모이면 환영-출석체크-노래나 찬양-강사소개-묵상 및 기도 후에 기념촬영을 하고 나면 외부강사가 특강을 한다.
강의는 대부분 인문학적인 강의로 진행해왔는데 감사, 독서, 자녀교육, 진로지도, 안전교육, 부모교육과 문화체험, 역사기행, 비즈공예, 놀이치료, 노래와 율동, 메이크업, 마술교육, 나들이나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이어왔다. 한 시간 정도의 강의가 끝나면 맛있는 저녁을 나누고 헤어진다.
Q6. 어찌 보면 음지에 계신 분들을 양지로 끌어내어 그분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자기 계발을 돕는 사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변화가 있었나?
A. 무엇보다 큰 변화는 우리 부부의 변화이다. 이 분들을 더욱 실제적이고 전문적으로 돕고자 우리 부부가 사회복지사를 취득했다. 모임이 계속되자 이 분들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립 자활의 의지를 가지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비자격증 취득을 하면서 조리사,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등의 자격을 취득하여 취업을 하거나 준비하는 등 삶의 의지를 키우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그들은 사회적 취약계층인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도움받기만 하는 자리에서 이제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적인 여성들이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 처음에는 나를 어색하게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먼저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하는 등 자녀들의 변화도 보인다.
Q7. 목사님이 생각하는 목회는 무엇인가?
A. 2012년도 말에 기존 교회에서 사임을 하고 세상 속으로 나온 목사가 됐다. 그전까지는 나도 여느 목사들과 다를 바 없는 교회 안 목사였다. 교회를 떠나 나도 일하고 내 아내도 일을 했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먼 길도 걸어 다니면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았다. 차 없이 다니는 다소 불편한 삶이 오히려 내 건강에 도움이 되며 미래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감사했다. DTS 훈련과 뜨레스디아스 훈련, 아찾사 훈련 등 교육기간을 통해 목사라는 특권의식을 버리게 됐다. 어떤 일을 해도 부끄럽지 않게 됐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목회에 집중하는 기회가 됐다. 예수님은 항상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시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며 복음을 증거 하셨다. 또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목회는 우선 교회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는 목회다. 현장이 목회지다. 그리고 목회자라는 특권의식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소외된 자들을 살피는 목회자 상을 가지고 있다.
Q8. 목사님은 기독교 언론에서도 활동했는데, 기독교 언론활동을 하면서 얻었던 장점은?
A. 교계를 비평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게 됐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가장 잘하는 과목이 국어였다. 방학 때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쓴 유일한 학생이었는데, 국어 교사였던 담임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며 더욱 국어를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쉬는 시간 10분을 100% 국어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 2-3학년 때 전교에서 국어로는 최상위가 됐다.
대학 다닐 때도 학보사에서 신문 마감 때까지 기사를 채우지 못하면 항상 내가 빈 지면을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월간 목회에서 학교 측에 추천을 하라고 할 때 학장이 나를 추천했다. 그다음 날 인터뷰를 했고, 인터뷰 마치고 채용된 후 이튿날 수석 부장을 맡아 일했다. 월간목회에서 3년을 마치고 한국성결신문 창간 실무 대표자가 되어 5년 6개월 정도 언론에서도 일했다. 언론으로 9년을 일한 셈이다.
Q9. 목사님 최근 사역 가운데 통합적인지 발달교육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A. 싱글맘 사역을 하면서 부모들은 케어가 되는데,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싱글맘 가정의 한계 속에 아이들이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아이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싱글맘 가정의 어둔 그늘이 벗어지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단순히 학원처럼 공부를 가르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문제라면 그냥 좋은 학원을 보내면 된다. 이 아이들을 근본적인 학습자세부터 배워야 했다. 고민하던 중 부산에서 아동·청소년 사역을 하는 양순철 교수(부산동광교회 시무장로)를 만났다. 이 분은 서울신학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 독일 Bonn대학교 박사과정을 거쳤으며, 인본사회연구소 고문 및 인문학 강의 대표이며 미래인재개발센터 창립대표로 활동하시는 분이셨다.
싱글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자 이 분이 선뜻 자신이 돕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매주 부산에서 인천까지 올라와 아이들을 케어하겠다는 것이다. 양순철 교수는 통합적인지 발달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바로잡아가기 시작했다.
통합인지 발달 교육은 백지상태와 같은 아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방법, 공부하는 습관, 좋은 인성 인격, 미래에 대한 통찰력, 다음 세대의 리더가 되는 목적 등을 지도한다.
양순철 교수는 싱글맘들의 아이들의 인지능력을 개발시켜 그들을 리더로 세우는 일을 했다. 어떤 과목이 아니라 공부하고 독서하는 능력을 키웠다. 놀랍게도 아이들이 변화했다. 처음에는 단 10분도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법 어려운 책도 읽어나간다. 그러면서 실제 아이들의 학교 성적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Q10.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나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 한국교회가 기존 교회의 목회 사역을 넘어 특수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을 귀한 동역자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기성교회 사역과 특수 사역이 서로 별개의 사역이 아니다는 관점이다. 해외 선교를 도우면서 교회에서는 ‘가든지 돕든지’라는 말을 한다. 꼭 해외 가는 것만 선교사가 아니라 그들을 파송하는 교회와 성도도 선교사라는 자세다.
마찬가지로 사회선교를 위한 특수선교를 하는 사역과 사역자들에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거룩성 회복을 말한다. 거룩은 종교성을 고양하는 것이 아니다. 야고보서에 말한 바와 같이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도 돌보는 것이 참된 경건이고 거룩이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주는 일이 거룩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교회나 목회가 살피지 못한 분들을 살피는 함께 해야 할 사역이다. 소외된 자들을 살피는 사역을 힘씀으로 한국교회의 이미지 제고에도 앞장서고 있는 사역자들이 많다. 교단 내에도 싱글맘 사역뿐만 아니라 청소년 돌봄 사역, 교도소 사역, 외국인 노동자 사역, 다문화가정 사역 등 귀한 일들이 많다. 이 모든 사역이 내어 주는 사역이다. 이 손길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며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는 사역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금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관심을 호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