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라

  • 입력 2021.09.2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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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29) 흰 옷(white clothes)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흰 옷은 제의적, 도덕적 정결 개념에 중심을 둔 긍정적인 의미를 상징한다. 더럽다는 것은 이교도의 생활과 혼합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순결성을 잃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데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그러했다. 하늘의 사자들은 종종 흰 옷을 입은 것으로 묘사된다. 아시아 도시들에서 Greco-Roman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흰 옷을 입었다. 그 이유는 흰색이 신들에게 가장 합당한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흰 옷은 신부의 예복, 순수함, 구원, , 천사들, 공의, 정의, 하나님의 군대 등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에는 흰 옷은 특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지 않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흰 옷을 사서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라는 조언을 듣는다. 신원을 기다리는 순교자들은 흰 두루마리를 받는다. 이십사 보좌에 앉은 장로들은 흰 옷을 입고 있다. 어린양 앞에 어린양의 피로 씻은 흰 옷을 입은 무리가 서 있다. 메시아와 함께 등장하는 하늘 군대는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있다.

옷을 더럽히지 않은 것은 striker가 아니다. boycott도 아니다. 업무 중단도 아니요 압력을 가하려는 행동이 아니다. 거부다. 순교를 각오한 저항이다. 3세기 중엽, Desius 황제가 무서운 박해를 시작했다.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이름 앞에 제물을 드리기를 거부하고 죽어갔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했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감독이었던 Cypian은 다음과 같은 말로 칭찬했다. “하나님의 인으로 거룩해진 당신들의 이마는... 주께서 주실 면류관을 위하여 예비되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구원받은 자들은 흰 옷을 입었다. 어린양의 신부인 충성된 자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었다. 구원받은 자들과 신부와 동일시되는 독자들은 또한 해 같이 빛나는 옷을 입고 별의 관을 쓴 여자와 동일시된다.

 

1.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남은 자는 복이 있다

사데의 번영은 부분적으로 많은 상업로에 위치한 그 입지와 왕도의 종착지로서 그 지위의 결과였다. 사데는 부유한 도시였다. 상업적으로 번성했다. 양모 염색 기술을 자기들이 발명했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 사데 사람들은 잘 입는 것에는 관심을 가졌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내적인 순결과 이교 사회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도덕적인 생활에는 무관심했다.

사데 교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증언하지 않음으로 타협을 하였다. 하지만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는 칠천 명처럼 충성한 사람 몇 명이 남아 있었다. 남은 사람들은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이다. 수사학적으로, 이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동일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 비유는 사데의 부의 핵심 원천 가운데 하나 곧 양모 산업을 기초로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옷과 달리 그들의 영적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던 몇 명은 점차 변절해 가고 있는 교회에서 순수함을 유지함으로써 승리한 자, 즉 이기는 자다. 변신이 있어도 변심을 하지 않은 자다.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을 거부하면 변절자인가 아니다. 뜻이 바뀌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가가 중요하다. 사데의 몇 명은 더럽히지 않겠다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사데 교회의 다수는 고난 때문에 배교하는 사람이다. 소수는 고난 덕분에 본질을 알게 되는 사람이다. 다수는 경제적으로 결핍하기 때문에 주저앉는 사람이다. 소수는 결핍 덕분에 기도하며 흰 옷을 입고 날아오르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데 교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된 순종에서 떠나 있었다. 세속화되었다. 소아시아에서 발굴된 비문에서는 더럽혀진 옷은 예배자에게 합당하지 않으며 신을 모독한다고 선언한다. 이 옷을 인격과 동의어로 간주할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 사데의 기본적인 무역이 울 제품을 생산하고 염색하는 것이었다. 더럽혀진 옷에 대한 이미지가 쉽게 이해되었을 것이다.

더럽혀진 옷은 육체를 불결하게 하며, 예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입기에 합당하지 않다. 사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증언을 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매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교 문화의 우상숭배 분위기에서 저자세(a low profile)를 취했다는 데 있음이 드러난다.

요한계시록의 칠복 중 마지막은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 곧 계속해서 타협하지 않고 짐승의 요구를 거절함으로 더럽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묵시록에서, 밝은 옷들은 일으킴을 받은 자들의 영광을 가리킨다. 문화적으로 흰 옷은 사망과 슬픔을 내포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흰 옷을 생명과 상급과 관련시킨다.

사데의 부의 핵심 원천 가운데 하나 곧 양모 산업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도적같이 오실 것이다. 성도들은 그들의 옷을 늘 입고 있어야 한다.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고난 중에서도 지속되는 충성을 뜻한다. 어린양께서 그의 고난과 죽음에서 드러내 보이신 것과 유사하다.

흰 옷은 더럽혀진 옷과는 반대된다. 옷이 더럽혀졌다는 것은 죄로 물들었다는 의미다.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흰 옷을 입은 무리를 어린양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한다. 하늘 보좌 주위에 있는 흰 옷을 입고 있는 허다한 무리는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

2. 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니리라

연령과 계층에 따라서는 색감이 다르다. 붉은빛 하면 어린이들은 태양이나 불을 생각한다. 청년들은 정열, 장년들은 경고 표시를 떠올린다. 국가별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의복과 예식 등에 쓰이는 색상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는 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니는 미래의 상급의 기초가 된다. 고난을 통한 인내의 상과 관련된다.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소수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흰 옷을 입고걷게 되는 것이다. 로마에서는 자줏빛으로 염색된 옷은 황제나 귀족들만 입을 수 있어 Royal purple이라고도 한다. 공화정 로마 시대에는 집정관이나 전쟁에 이기고 개선하는 장군들만이 자주색 망토를 착용할 수 있었다. 제정 로마 이후 자주색이 황제의 색이었다. 카이사르와 네로는 자신 외에 자주색 옷을 입는 자를 처벌했다. 이 전통은 로마 멸망 이후 중세에도 이어져 자주색은 왕이나 귀족의 색으로 인식돼왔다. 로마 시민들이 제국의 군사적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흰 옷을 입고 행렬에 참여했다. 부와 권세를 상징하는 옷은 자주색이었다. 사데 교회의 순결을 지킨 몇 명은 흰 옷을 약속받았다.

옷이 날개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끔한 옷은 훌륭한 소개장이란 외국 속담도 있다.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 그 자리로 올라서고 싶다면 그들과 어울릴 차림부터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흰 옷을 입은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닌다. 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걷는다는 것은 의롭게 된 자들을 묘사하는 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가능한 기능은 정결, 축제, 부활한 몸, 또는 승리의 날에 흰 옷을 입던 로마 관습 등이다.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데 교회의 몇몇은 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니기에 합당하다. 그들의 합당함은 순수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어린양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와 함께 하는 신부들은 거룩해야 한다. 예배자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섰을 때 흰 옷을 입는다고 하는 환상들에서 분명해진다.

오병이어 기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떠난다. 다시는 함께 다니지 않는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임을 믿고 아는 소수의 제자들만 예수님과 함께 동행한다. 미래에 계속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죄를 저항하고 자신들의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은 미래 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니기에 합당하다. 그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행동하다는 의미로 종종 사용된다. 제자의 신분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닌다또는 걷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순회 사역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을 상기할 수 있다. 에녹과 노아 두 사람에 대한 언급일 수 있다(5:22; 6:9). 둘은 하나님과 동행했다.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를 누렸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사데 교회로 볼 때 승리의 행진이 주는 이미지가 가장 적합하다. 사데 도시는 과거 유명했다. 그때의 영광은 사라졌다. 지금 그리스도는 사데 교회가 사도 도시와 비슷한 곤경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신다. 사데 도시의 태도가 사데 교회에 스며들었다. 사데는 주로 패배의 역사로 알려져 있다. 과거의 승리는 쓰라린 추억으로 갖고 이다. 최후 승리를 축하하는 행진에서 흰 옷을 입고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퍼레이드에 참여한다는 것은 크게 흥분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교제의 방법이나 미팅 장소는 상상하기 어렵다. 속량함을 받은 144,000명은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로서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간다(14:4). 요한계시록은 독자들에게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며, 인류를 향한 그의 영원한 계획이 실제로 성취될 것임을 알려 주는 기능을 한다. 성도들이 짐승, 즉 사탄에게 충성을 서약하든지 아니면 어린양에게 하든지 중대한 결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어린양을 따르기로 한 자는 어린양의 피로 씻은 흰옷을 입은 자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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