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 입력 2021.10.1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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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32) 정체성(Identity)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라오디게아 도시는 히에라볼리 및 골로새와 비교했을 때 리쿠스 강 골짜기에 있는 세 도시 중 가장 유명했다. 이 도시는 리디아, 브리기아, 갈리아 세 지역의 중심 중추였다. 라오디게아 도시 자체는 두 가지 문제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지진이 발생하기 쉬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음은 물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좋은 물을 내는 수원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두 도시에서 물을 끌어와야 했다. 리쿠스 강은 여름이면 말라버렸다. 라오디게아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 긴 수로를 사용해야 했다. 골로새의 질 좋은 식용수가 되는 차고 맑은 시냇물도 라오디게아에 도착하면 미지근할 뿐만 아니라 불순했다. 때로는 더러워서 병을 유발시켰다.

라오디게아 근처에는 두 도시가 인접해 있었다. 히에라볼리와 골로새다. 전자의 온천은 치유 효과가 있었다. 섭씨 35도의 약 효과 있는 온천이었다. 후자의 차가운 물은 순수하고 마실만하며 생기를 북돋아 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 물도 건강에 좋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두 형태의 물은 모두 유익하다. 온천은 뜨겁고 치료에 도움이 된다. 질 좋은 온천수와 냉천수를 공급을 받았다. 그러나 공급 도중에 온천수는 식어버리고 냉천수도 미지근해져 그 효능이 제대로 발휘 못했다. 교회는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한다. 세상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치료의 역할이 소금과 빛의 사명이다. 교회가 미지근하여 무기력하면 영적으로 지친 자들에게 활기를 주지 못한다. 영적으로 병든 자를 치유하지 못한다.

 

1. 그리스도는 교회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는 오랜 세기에 걸쳐 수많은 논란의 주제가 되어 왔다. 대체로 영적으로 차지 말고 뜨거워라로 해석되었다. ‘차든지를 부정적으로 해석해 왔다. 영적으로 미지근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차가워라고 말씀하시고 있는가. 이 은유는 라오기게아의 물 공급 문제에서 시작된다. 차거나 뜨거운 것 모두는 긍정적으로 이해된다. 이 둘은 인내, 믿음, 사랑의 행위로 특징지어진다. 헌신과 동의어이다. 미지근한 것은 차거나 뜨거운 것의 반대로 타협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교회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신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말씀하지 않으신다. 영적 열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양극단을 다 긍정한다. ‘차든지를 부정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한 모든 진술들이 그 지역 물 공급의 특성과 관련되지는 않는다.

시선을 도시가 아닌 교회로 향해야 한다. 주목할 곳은 석회와 유황으로 뒤덮인 히에라폴리스 밑의 절벽이 아니다.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다. 매스껍도록 미지근한 물인줄 모르고 마셨다면 바닥에 토해 낼 수 밖에 없는 온천수가 아니라 교회다.

온천은 뜨거워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다. 목욕과 직물을 염색하는 데 유용하다. 온천을 출발할 때 뜨겁고 미네랄이 함유된 물이 고원을 지나고 절벽 가장자리에서 폭포수로 떨어졌을 때는 미지근함 그 자체다. 현지 터키인들은 라오디게아의 미지근한 온천수는 물맛도 없을 뿐 아니라 불순물이 많아서 이 물을 마신 사람들이 구토를 일으키거나 병을 앓았다고 말한다.

차가운 것인가 아니면 뜨거운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둘 다 믿음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은 다르다. 틀린 것이 아니다. 얼굴 생김새나 생각, 행동처럼 서로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라고 해야 한다.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차거나 뜨거운 물 또는 포도주는 여러 가지 목적을 다르게 사용된다. 그러나 윤리적 시각에 있어 미지근한 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차거나 뜨거운 것은 다름이다. 미지근한 것은 틀림이다. 잘못이다.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등이 그르게 되거나 어긋남을 뜻한다. “네가 한 계산은 틀렸어처럼 써야 한다. ‘다르다의 반대말은 같다이다. ‘틀리다의 반대말은 맞다이다. 품사가 서로 다르다. ‘다르다는 형용사다.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라는 뜻이다. ‘틀리다는 동사다. ‘사실 따위가 그릇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교회는 어느 세대나 두 가지 영적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명에 놓여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안에서 취해야 하는 정체성의 과제다. 다른 하나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상관성의 과제다.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외적 과제로 볼 수 있다.

미지근하여는 차가움과 뜨거움 사이의 기분 나쁜 온도를 나타낸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다는 은유는 라오디게아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지리적이며 경제적인 영향을 떠올리게 된다. 이보다 더 깊은 의미를 함축한다. 온도 구분에 다른 관점을 보여 준다. 미지근한 신앙은 중간 정도의 미성숙한 믿음이 아니다. 우상 숭배와 혼합된 더러운 신앙을 의미한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 참 진리라면 진리답게 철저히 믿어야 한다. 거짓이라면 그것을 철저히 반대해야 한다. 미지근한 태도와 어정쩡한 무관심은 신앙 안에 우상숭배가 들어왔을 때 나타난다. 하나님과 우상이 혼합될 때 신앙은 미지근한 물처럼 더러워진다. 토할 수밖에 없다.

미지근함은 폭포수가 아니라 잔칫집으로 인도한다. Greco-Roman 시대의 음료는 차든지 뜨겁든지 했다. 잔치의 주인은 손님들의 취향에 맞게 뜨겁거나 차가운 음료를 제공했다. 뜨겁거나 차가운 포도주가 음료로 적합했다. 뱅 쇼(vin chaud)는 뜨거운 와인이다. 데워 따끈하게 마시는 포도주다. 프랑스말이다. 독일에선 글뤼바인’, 러시아에선 글린트바인이라고 한다. 모두 따끈하게 데운 와인이라는 뜻이다. 후텁지근한 중동의 여름날에 제격인 와인은 냉랭한 화이트 와인이다. 섭씨 5도 이하의 차갑게 마시는 게 제격이다. 와인 하면 프랑스가 떠오른다. 호주 빅토리아주 와인도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한다. 두 종류다.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이다. 전자는 상온, 후자는 10도 내외 차가운 상태에서 가장 맛이 좋다.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은 포도주를 샘 안에 두거나 눈을 채운 여과기에 포도주를 섞어서 차갑게 했다. 로마시대에는 포도주와 물을 데워진 상태에서 혼합하여 마시는 것을 선호했다.

2. 미지근하면 그리스도의 입에서 토하여 버리신다

당시 소아시아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핍박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회엔 각종 이단이 난무했다. 그리스도는 이런 가운데 믿음을 지킨 일곱 교회의 수고를 인정하고 격려한다. 동시에 질책도 아끼지 않는다. 라오디게아 교회엔 예수님를 믿고도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 양태를 비판한다. 에라볼리스의 온천에서 리쿠스 언덕을 넘어 라오디게아까지 관을 통해 여정의 끝자락에 이르면 온천물은 미지근해지고 메스꺼워진다. 뜨거운 물은 서서히 식어서 미지근해지고, 골로새의 차가운 물은 라오디게아에 도착하면 미지근한 물이 된다. 차가움, 뜨거움, 미지근함의 은유들은 Greco-Roman 식사 관례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식사의 비유적 표현에 적합하다.

자동차에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엔진, 변속기, 바퀴 등일 것이다. 그렇다면 차의 색깔은 어떤가. 개인 선호도일 뿐이다. 좋아하는 색과 다른색은 있을 수 있다. ‘틀린색이란 있을 수 없다. 찬 음료도 있고 따뜻한 음료도 있다. 다르다. 틀린 게 아니다. 그러나 미지근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다. 토하여 버릴 뿐이다. 사실 고대세계에서는 차거나 뜨거운 물 또는 포도주가 건강에 좋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이었다. 하지만 미지근 물 또는 포도주는 그렇지 못했다.

교회는 생수를 공급하는 편의점이 아니다. 냉수든 온수든 물을 파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아니다. 교회는 포도주를 파는 술집도 아니다. 교회는 복음을 무료로 나눠주는 하늘 대리점이다.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한다. 미지근한 물의 온도는 주변의 온도와 같다. 눈으로 봐도 손으로 만져도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다. 세상과 별 차이가 없다. 세상 사람과 별 다를 바 없다. 세상과 별 다를 바 없는 교회는 미지근한 교회다.

2002년부터 파묵칼레대학 조사단이 15년간 8가 넘는 장대한 도시 유적을 발굴·복원 작업하였다. 4세기께 건립된 라오디게아 교회당을 복원하였다. 이 교회당은 4세기 중엽 일요일을 안식일과 예배일로 규정한 라오디게아 종교회의가 열린 실제 공간으로 추정된다. 에베소 교회와 같은 큰 교회가 없던 4세기에 세워져 초기 교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341~381년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열렸던 공의회에서 60개 조항의 교회 규정이 확립되었다. 유대교의 토요일이 아닌 예수님이 부활한 일요일을 예배일로 정하였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7세기까지 비잔틴제국의 중요한 성소로 이어졌다. 질책을 받은 교회였다. 그러나 신앙심을 다잡은 라오디게아인들이 열심을 내고 회개하여 신앙 거점을 꾸려나갔다는 반증이 출현한 셈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다움이다. 영적인 기질이 아니다. 열정적이냐 냉정이냐가 아니다. 사역의 열매 문제다. 잠언에는 뜨거운것은 자제력의 결핍을 나타내는 멸시적인 은유다. 오히려 차가운, 냉정한은 신중함과 자제력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은유다. 이처럼 사람의 기질이 다르다. 교회마다 열정이 있는 교회가 있다. 냉정한 교회도 있다. 온천의 효과가 있고 냉수마찰의 효과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교회는 뜨거운 교회와 냉정한 교회가 아니다.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을 요구한다. 육신의 치료가 아닌 영적 치료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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