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온전하여(테미메 데레크) 여호와의 율법(베토라토 아도나이)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아쉐레) 여호와의 증거(에도타이오)들을 지키고 전심으로(베콜 레브) 여호와를 구하는 자(이드레슈후)는 복이 있도다(아쉐레)”(시119:1-2).
시절이 어려워지고 있고 죽음의 어두움은 짙어가고 있다. 오미크론 전염병이 주류가 되었고 하루 확진자수가 4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곧 20십만 명으로 확대되리라고 보고 나중에는 3명 중 2명은 오미크론 환자로서 감기처럼 앓고 사는 시대가 되리라 본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조물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은 그에게 달려 있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구하며 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내야 한다. 시편 119편도 토라 시편으로서 하나님 말씀의 세계를 우주적으로 보여주고 말씀(토라)의 세계를 연구하고 몰입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타쉬게니)”(시119:10).
시편 119편은 말씀(토라)시편으로서 알파벳(acrobastic)시이다. 알렛부터 타우(22개 글자)까지 각각 8절로 기록된 시로서 176절의 말씀의 세계를 총망라하여 표현하고 있다. 알파벳 시이기에 암송하기 좋고 기억하기 좋아서 이스라엘 사람은 늘 말씀을 읊조리며 하나님께 붙어있으면서 떠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주의 법도(베피쿠데이카)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아쉬하)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아비타) 주의 율례들을(베후코테이카) 즐거워하며(에쉐타아샤)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로 에쉬카흐)” (119:15-16). 우리는 이 어려운 혼돈과 공허의 시대에 말씀의 사람으로서 죄를 떠나 살아가는 생명의 삶을 살아야 어려움을 당하지 않으리라 본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로 헤헤타 라크)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베리비)에 두었나이다(짜파네티)”(시119:11).
이 토라 시편에서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주의 도, 주의 법도, 주의 율례, 주의 계명, 주의 의로운 판단, 주의 율례(법도) 등 여덟 가지 말씀의 세계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표현한다. 우리의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 탄식하며 한 숨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도 말씀에 깊게 천착하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붙들려 있으면 구원의 감사와 찬송을 하게 된다. “찬송을 받으실(바루크, 축복)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후케이카)들을 내게 가르치소서(라메데니”(12). 따라서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묵상하느냐? 아니면 그렇지 못하냐의 문제이다. 우리의 인생을 성공적이고 모범적으로 보여준 선구자들이 있다. 선교사님의 인생은 바로 이 말씀(토라)에 주목하면서 주의 십자가 인생을 살아간 분들이다.
찰스 카우만과 나카다 주지가 설립한 동양선교회(OMS)는 한국 성결교를 시작하게 한다. 성결교회는 18세기의 감리교 존 웨슬리의 완전 성화론 입장을 따라 19세기 미국에서 형성된다. 미국의 제2차 대각성 운동 때, 피미 팔머, A.B. 심슨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성결 운동을 출발점으로 본다. 한국 성결교회 모체는 미국의 찰스 카우만(Charles E. Cowman)와 레키 카우만 부부, 어니스트 길보른, 나가타 주지를 중심으로 동양선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된다. 성서학원을 졸업한 정빈, 김상준 두 사람이 1907년 종로에서 복음 전도관을 세우고 1910년 두 사람이 요청하여 영국인 존 토마스를 초대 감독으로 한국에 파송함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한다. 1911년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교 전신)을 창립하였다.
찰스 카우만 선교사는 동양선교회 부총재로서 길보른의 활동을 도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억하세요 공부만 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공부하지 않고는 설교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언어공부에 있어서 당신의 진보를 방해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카우만과 길보른은 대거부락 전도운동을 통해 전 일본 국토를 순례하며 전도했다. 그 시기에 카우만의 병세가 악화되어 치료하기 위해 1917년 11월 3일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길보른에게 선교를 맡기게 되었다. 카우만은 1924년 9월 14일 57세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선구자 찰스 카우만은 길보른을 키웠고 동경 성서학원에 찾아온 김상준, 정빈을 양육함으로 한국 선교의 길을 열었다. 일본에서처럼 십자군 전도대를 조직하면서 생명의 말씀을 가가호호 전도 운동을 벌이게 되었다. 한국 선교는 카우만 부부와 길보른 선교사가 두 한국인과 1907년 5월 2일 복음 전도관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종로 염곡에서 문을 열고 건물매입 위해 5천 달라가 필요하다고 기도부탁을 하면서 본격적인 선교의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복음의 선교사를 통해 빛의 전도, 생명의 전파가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선교와 구제의 기도를 하며 이 어려운 시대의 파도를 넘어가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