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공동체의 산물이다. 성경은 40여명의 저자가 쓴 공동체의 산물이기에 혼자 읽는 개인 책이 아니다. 또 믿음을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의 배경 속에서 쓴 것이기에 교회공동체 속에서 읽을 때 바른 해석이 된다. 불경이나 다른 경전과 책들은 혼자서 깨달음을 얻는 방식으로 기록되었지만 성경은 차원이 다르다. 성경은 늘 혼자 읽을 때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자기 방식으로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이해하면 성경은 전혀 다른 책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혼자 읽고 공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공동체의 점검을 받고 성경전문 교사의 도움을 물론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이 잘못 읽을 수 있다. 많은 부분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혼자서 읽는데서 일어난다. 예를 들면 혼자서 백번 읽으면 성경이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반복하여 자기 관점으로 계속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는 오류를 범할수 있다. 가르침을 받지 않고 혼자서 무작정 읽게 되면 늘 보는 성경만 보거나 쉽고 내 마음에 드는 성경만 골라 읽게 되고 거기서 문제가 생긴다.
성경을 읽을 때 어려운 점은 성경을 해석하는 일이다. 성경해석은 단어와 구절과 부분만 보고 해석하면 잘못 될수 있다. 적어도 성경 66권 전체를 보면서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르게 성경을 해석하려면 성경전문가인 목회자나 성경교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검증된 성경지침서를 참조하면 되지만 혼자서 배우기는 쉽지 않다. 가능한 교회를 통해서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해석할때는 공동체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혼자서 읽고 혼자서 해석하고 행하면 성경의 뜻과 다르게 방향이 나갈수 있다.
자기 관점으로 계속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는 오류를 범할수 있다
유대인은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 랍비를 통해 배우고 랍비의 지도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혼자서 읽기 보다는 교사의 가르침과 모임을 통해서 성경을 읽는다. 유대인은 랍비가 많지만 우리는 그런 교사가 부족하다. 교회 중에서도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지 않아서 성경을 읽고 지도를 받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최고의 교사는 성령님이다. 성경은 인간의 깨달음으로 기록된 책이 아니다. 성령님의 감동과 조명을 받고 성경이 기록되었기에 성경을 읽을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읽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성령의 음성도 개인적으로 듣게 되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성령도 공동체 속에서 역사하기에 교회 공동체 속에서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 공동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읽지만 이해가 어렵다. 성경에 대해서 잘못 된 오해를 갖는 경우는 모두 혼자서 성경을 자기 방식으로 읽는데서 생긴다. 이런 점에서 교회공동체에 속하지 않고 또 믿음을 갖지 않는 상태에서 성경을 지식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방법이다. 성경은 믿음을 갖지 않는 상태에서 읽고 함부로 가르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종종 성경을 오해해서 생기는 무지함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지 않으면 성령의 조명도 없다.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악한 영이 들어와 성경을 잘못 이해하며 인간의 눈으로 판단하는 문제가 생긴다. 마치 성경을 논어를 공부하듯이 공부하는 예가 있다. 언젠가 예수를 믿지 않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학자가 공영방송에서 요한복음을 강해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성경을 고전과 인문서 정도로 이해하고 가르치는 모습은 성경을 오해하는데서 오는 모습이다. 성경을 믿음이 없으면서 또 신앙고백이 없이 수도하고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혼자서 읽고 깨닫는 책으로 공부하고 읽는 것에 현혹되면 안 된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성경을 해석한다고 해도 성령의 조명이 없기에 거기에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영의 차원을 이성으로 이해하는 인본주의 성경 읽기는 멀리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늘 공동체에서 성경을 읽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을 혼자서 성경을 읽는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는 자기가 읽은 말씀을 교회공동체와 믿음의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늘 공동체에서 성경의 내용을 점검받고 서로 나누는 삶이 필요하다. 성령은 공동체를 통해서 더욱더 역사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음이 없으면서 또 신앙고백이 없이 수도하고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혼자서 읽고 깨닫는 책으로 공부하고 읽는 것에 현혹되면 안 된다.
한국에 이단과 사이비가 많은 이유
한국교회에 유난히 이단과 사이비가 많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성경읽기와 관련이 있다. 이단과 사이비 교주는 대부분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들은 성경 속에서 자기들이 읽은 상징이나 비유에 대한 부분만 선택하여 색다른 알레고리 성경 읽기 방식으로 포교를 하고 기존 교회 속으로 침투하여 분열시키고 미혹한다. 특히 성경이 약한 신자들과 교회들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왜 성경을 읽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가? 그것은 성경을 혼자서 읽거나 자기 방법으로 읽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 읽기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잘못된 성경 읽기가 어떤 문제를 낳는지를 예로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5천년 동안 무속과 유교와 불교영향을 받았다. 한국인에게는 누구보다 종교성이 강하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들어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서 문제는 겉은 기독교이지만 속은 무속과 유교와 불교모습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성경읽기다. 이런 이방문화는 성경을 읽는 것에도 영향을 미쳐 잘못된 성경 읽기가 은연중에 몸에 배어 있다. 예를 들면 혼자서 산속에 올라가 기도하면서 성경을 수백 번 읽다보니 어느 날 도를 깨달았다고 말하거나 혼자서 성경을 읽다가 어느 부분에서 특별한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성경 66권중에 가장 중요한 책은 요한계시록이라고 말하면서 가장 많이 요한계시록을 읽은 자기가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푼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단과 사이비 집단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모두 공통점은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왜 대부분 이단과 사이비는 성경 중에서 요한계시록을 사용할까? 그것은 요한 계시록이 상징과 숫자와 은유로 기록되었기에 자기 관점으로 해석해도 특별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고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좋기 때문이다. 특히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쉽게 설득하기 쉬운 조건을 갖고 있다. 더 그들이 요한계시록을 사용하는 이유는 기존 교회들이 요한계시록을 잘 가르치지 않는 봉인한 책이기에 그 틈을 타서 교회를 미혹한다. 성도들 입장에서는 궁금한 책이고 그것을 잘못 해석해주어도 그것을 분별하기 어렵기에 쉽게 속임수에 넘어간다. 성경전체(total)의 관점에서 해석하기 보다는 인간의 필요성에 맞추어 나름대로 논리적 근거를 갖고 성경을 읽기에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미혹되기 쉽다. 그들은 억지로 성경 구절을 맞추어 논리를 세워 설득한다.
한국 사회속에 이단들이 많은 이유는 우리 종교 문화와 책 읽기 방법의 영향이 크다. 우리는 공부하거나 책을 읽을 때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설명해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 문맥을 살펴보기 보다는 한 구절을 연결하여 해석하거나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 중심으로 공부하는 문화다 보니 이단들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기 쉬운 배경을 갖고 있다. 특히 무엇이든지 반복하여 100번 읽으면 도가 습득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전체를 보고 부분을 보기 보다는 어느 부분을 집중하여 보면 직관이 생겨 깨달음이 온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 이것은 동양적인 학습방법으로 비성경적인 문화다. 우리도 모르게 몸에 익숙한 이방 문화적인 영향이 성경읽기에도 적용되다 보니 이런 잘못된 상황이 생겼다. 지금은 서구의 헬레니즘 철학 방식의 성경읽기 까지 한국교회에 들어와 이것 역시 성경읽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성경읽기 방식을 점검하고 성경이 말하는 제대로 된 성경읽기로 돌아가는데 목적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기존의 보통 책읽기 방법에서 거룩한 성경읽기 방법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통 책 읽기와 다른 성경적인 성경읽기 방법을 체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것을 교회에서 바르게 알려주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교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보통 성경통독은 차례대로 열심을 내어서 읽으라고 강조는 했지만 어떻게, 왜 읽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겨우 성경읽기표 정도를 안내해 주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성경은 성도들이 무조건 열심히 반복해서 읽기만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성경읽기의 바른 가르침이 없다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오히려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서 영적 교만함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 볼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성경을 읽고 있는지 한번 점검 해보자. 성경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성경읽기다. 성경은 인간이 기록한 책이지만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는 책이다. 겸손한 자에게는 열린 책이지만 교만한 자에게는 철저히 닫힌 책이 성경이다. 그래서 성경은 계시의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