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구절로 본 성경과 다른 경전과 차이점
성경은 어떤 이야기가 쓰여 졌을까? 성경과 다른 종교의 경전(불경, 꾸란, 논어, 힌두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책을 다 읽어 보지 않아도 그것을 간단하게 아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첫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슨 책이든지 첫 구절은 그 책의 특징을 보여 준다.
◆불교의 경전인 불경의 첫 구절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 evaṃ mayā śrutam)’로 시작한다.
◆힌두교의 경전 ‘베다’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고귀한 가네샤에게 경배하나이다(oṃśri ganeṣāya namaḥ)’이다.
◆유교의 경전인 논어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이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꾸란)의 첫 구절은 이런 기도문으로 시작한다. “참으로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찬양합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알라께. 참으로 자비롭고 자애로운 분 심판날의 주재자여 우리가 섬기고 구할 분은 오직 당신뿐 저희를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불경의 첫 구절 ‘如是我聞’과 『논어』의 첫 구절인 ‘子曰’ 은 제자들에 의한 것이다. 힌두교 경전과 이슬람의 경전 꾸란은 모두 인간의 기도문으로 시작한다.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는 인간이 출발점이다. 인간을 위해 신이 존재한다. 이것은 우상종교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인간이 신을 계속 만들어 낸다. 인도와 네팔 등을 가보면 그들이 믿는 신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많게는 신이 3억 개 이상이 된다. 인간의 복과 즐거움과 평안을 위해 신들은 사라지고 또 만들어 진다. 그것은 신이 아닌 우상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인간이 주체가 된다. 인간이 열심히 배우고 수양하고 기도함으로 신을 찾아가는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 힘으로 믿을 수 있거나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모든 것을 다 이루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방식이다. 나는 오직 믿는 것 이외 다른 행위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복음이다.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는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성경의 첫 구절은 바로 이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창1:1절은 히브리어 7자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완전한 창조를 의미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주어로 시작한다. 이것은 다른 경전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여기서 신앙의 출발점이 전혀 다르다 . 이것이 다른 종교와 분명히 다른 구별점이 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은 창1:1을 어떻게 믿고 받아 들이느냐에서 결정된다. 이후의 성경이야기는 일종의 창1:1의 주석과도 같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얼마나 내가 믿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신약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성경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들어온다. 결국 창세기 1:1은 짧지만 성경의 놀라운 복선이다. 비록 한 구절이지만 1절은 성경전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창세기 1:2부터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창1:1절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칭1:1)의 말씀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주신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언적 메시지다. 성경의 제목과 같은 구절이다. 이것은 인간이 누구도 감히 말하거나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처음에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가장 궁금한 이야기를 해주는 곳은 이 세상에 성경밖에 없다. 감히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할수 없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한결같이 인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인간이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모르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내가 어디서 온 줄도 모르면 죽음 이후에도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뿌리 없는 나무는 시간이 자나면 말라 죽는 법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만약 이 질문에 답을 못한다면 지금 나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다른 종교의 경전은 이것을 분명하게 말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 질문을 갖고 읽으면 흥미가 있고 읽는 즐거움은 문제가 해결될 때 마다 더해진다,
혹시 아직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했거나 성경 읽는 일을 시작해 보지 않았다면 바르게 성경읽기를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
말씀 속으로 빠져드는 즐거움
최근에 필자가 가르치는 예즈덤 성경대학에 한 남성분이 참여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필자와 같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점점 말씀의 달콤한 맛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전과 다르게 한 주간 동안에 말씀을 읽는 시간을 몇 시간씩 지루하지 않고 성경 읽는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런 색다른 경험은 이전에 갖지 못했던 영적 경험이었다. 말씀 속으로 빠져드는 신비한 경험을 보면서 주위 가족 뿐 아니라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이렇게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말씀의 힘이 위대함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성경 읽는 즐거움에 빠져들고 싶어 한다. 이런 체험을 한번 한다는 것은 계속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 큰 자산이 된다. 이 책을 통해 이 성도처럼 성경 읽는 즐거움에 푹 빠져드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해본다.
성경, 즐겁게 읽을 수 없을까?
흔히 성도들에게 성경을 한번 읽어 보자고 말하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성경, 너무 어려워요”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계속 읽기가 힘들어요” 오래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이런 느낌에 예외가 아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성경을 재미있게 읽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경 읽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런 모습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일반 책과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세상에서 유일한 책이다. 그래서 바로 그 책(The Bible) 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다른 종교 경전과도 다르다. 성경은 영적인 책이다. 이점이 다른 책과 구별된다.
세상의 책들은 모두 인간이 쓴 것이다. 인간의 생각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할 정보들이 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인간이 쓴 책이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담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읽는데 초점이 있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다. 성경을 읽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고 이 세상에서 그분을 따라 사는데 목적이 있다. 이것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다. 책을 읽을 때 저자와 만나듯이 성경도 예수님을 만나는데 있다. 이런 이유로 아직 예수를 믿지 않거나 믿을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는 성경은 따분하고 졸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당연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믿음을 갖는 분량에 따라 가깝게 느껴진다. 성경은 믿음으로 읽는 책이다. 영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을 읽는 일이 힘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걸림돌이 되면서 계속 읽기가 힘들다.
그런데 믿음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직 예수님을 분명하게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열망이 없고 세상 즐거움에 살면 성경은 더 이상 흥미를 주지 못한다. 그 순간 성경이 눈에 안 들어온다.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사람에게는 성경은 장식물에 불과하고 필요할 때 지침을 주는 정도의 책이다.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확신이 없으면 성경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만약 지금 성경을 읽어도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읽기란 무엇인가?”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이렇게 다른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당신은 왜 성경을 읽지 않나요?” 각자 한번 대답을 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