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5일 " 영등포 광야교회 : 베고니아 쪽방촌 위로 공연 "
마태는 선지자 이사야가 기원전 730년경에 예언한 이 말씀이 이뤄진 것이라고 전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이 말씀은 당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불신앙으로 가득한 남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주신 말씀이다. 북쪽의 아람나라가 북이스라엘과 함께 연합하여 남왕국 유다를 침공해 옴으로 유다인의 마음이 산중의 나무처럼 흔들릴 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너희는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저 불타다 꺼져 연기만 피울 부지깽이 같은 것들을 두려워 말라."고 하셨으나 아하스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믿음없는 아하스에게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기다려주시며 "위로나 아래로나 그 어떠한 표적을 구하라 내가 행하여 내말의 진실함을 보증하리라" 하였으나 아하스는 믿음이 좋은 것처럼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아니하리라"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완악함과 불신앙으로 가득한 아하스와 남유다임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주신 말씀이 "임마누엘"에 대한 약속이었다.
처녀가 낳을 임마누엘에 대한 약속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대적이 멸망당하고 그들에겐 구원이 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다. 왜 이처럼 믿을 수 없는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일까? 믿음은 인간 상식과 합리성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말씀인데 이 말씀을 하나님이 하셨기에 그대로 이루시라라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유대인들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하나님이라 그리스도라" 라는 거짓말로 신성모독을 하여 공개처형을 당해 죽는데 어떻게 그의 죽음이 죽음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를 없애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는가?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는가? 한다. 그런데 그의 죽으심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사로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2:14-15)"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또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란 자가 사람들의 비웃음속에 십자가에서 가장 처참한 저주의 죽음을 당하고 죽었는데 인류의 죄를 위해 죽은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 말인가?
그런데 이사야는 그의 죽음이 우리 죄 때문이었다고 밝혀주고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신앙으로 일관하고 있는 그 시대에 "처녀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으리라"는 믿을 수 없는 말씀을 주셨듯이 오늘날도 " 주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죄와 죽음의 저주로부터 구원받는다"라는 믿을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자!
주여! 이 아침에도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임마누엘이 되리라"라는 세상 상식으로는 믿을 수 없는 말씀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는 믿음으로 시작하게 하옵소서!
또 예수님의 죽음은 나의 죗값을 치루신 대속의 죽음이요, 죽음의 두려움으로 통치하는 마귀를 멸하신 능력의 죽음이었음을 믿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자유를 누리는 하늘에 속한자로 감사 찬양하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