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웨에트 샤웨아탐 이쉐마아 웨요쉬엠)”(시145:19).
세상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와 연결되었다. 결국 사람의 삶의 결과는,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고 삶의 모두를 맡기었는가 하는 신앙에 달려 있다. 물론 욥처럼 까닭없는 고난을 당하면서 겪는 삶의 무게는 힘들다. 하지만 그 무거움으로 인해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살아간다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나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배가(倍加)되는 인생의 복을 받는 보상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웨하시드 베콜 마아사이오)”(시145:17). 이 시편은 알파벳 시편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며 <다윗의 찬송시>로서 우리 인간의 찬양의 이유와 다윗 왕의 찬양하는 삶의 결론을 이야기 한다. “(다윗의 찬송시)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와아바라카 쉼메카 레오람 와에드)”(시145:1).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우케보드 하다르 말쿠토)”(시145:11-12).
시편 145편은 이스라엘 예배에 있어서 가을 추수와 신년 축제의 노래로 본다. 지난해의 감사 축제를 즐기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포도주와 올리브 농사 수확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시라고 본다(모빙켈). 이 시편은 왕 즉위와 매년 왕이 강림하는 의식을 통해 종교적 체험과 영원한 축제의 중요성의 체험적 현재와 그 가치의 질을 깨닫게 된다. 이는 영원한 왕국의 사상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기리고 노래한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말쿠테카 말쿠트 콜올람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시145:13). 이러한 영원한 나라의 합리적인 일반주의(원칙)와 그 성격을 바로 하나님이 항상 그의 백성을 모든 악한 세력에서 보호하신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코르아이오 레콜 아쉐르 이크라우후 베에메트)”(시145:18).
이 시편 145편은 두운에 맞추어 그 운율의 특성을 보여주며 알파벳 교훈시는 히브리시의 평행법과 더불어 기억하고 암기하기 좋게 구성하여 교훈적인 성격을 나타낸다(시 9-10; 25; 34; 37; 111; 112; 119; 145편). 이 시편이 찬양시로서 ‘송축하라(바라카, 축복)’라는 말을 5회 사용하며 찬양하고 있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테힐라트 아도나이 예다베르 피)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위바레크)”(시145:21). 이 시편 145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면서 눈(약한 자음)의 두운(첫단어)이 생략되면서 알파벳 시를 구성하고 있다. 결국 찬양으로 인도하는 삶은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다스림에 있다는 사실을 이 찬양시편 145편은 말하고 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가돌 아도나이 우메훌랄 메오드 웨릭둘라토 에인 헤케르)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시145:3-4). 하나님은 지극한 사랑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을, 또 모든 생물까지도 인도하시는 분임을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으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소메크 아도나이 레콜 하노펠림 웨조케프 레콜 하케푸핌)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시145:14-16). 시편 145편은 시편 5권(107-150편)의 알파벳 토라(교훈)시로서 중심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찬양의 중심이 <다윗의 찬송시> 이 시편이 있고, 또 이 시편 145편은 제3 다윗 시집(시108-110, 138-145편)에 속하면서 마지막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146-149편)에서 그 서론으로서 역할을 하며, 그 구성에 중심에 서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말씀(토라)만이 생명의 길로 가는 유일한 길잡이라는 사실을 시편 1-2 서론에서부터 결론부에서 알파벳 시편을 중심으로 핵심, 척추 시편으로서 그 역할을 하며 마지막에 이 시편 145편으로 그 토라 찬양을 끝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암묵적인 토라의 나라, 토라의 왕국의 왕으로서 다윗이 찬양하는 삶은 바로 감사의 삶. 곧 ‘토라에서 토다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토다 라바 야웨’(은혜 감사가 충만하신 여호와)는 시편의 주춧돌인 시편 1, 19B, 119편을 통해 경전적인 권위를 세우는 구조 골격의 역할을 한다(김이곤).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레호디아 리브네 하아담 게부로타이오 우케보드 하다르 말쿠토)”(시145:12). 토라를 통한 감사의 찬양과 감사(토다)의 세계로 알게 하는 하나님의 통치와 나라는 이러한 교훈적 찬양시를 통해 저절로 그리고 자체적으로 찬양하게 한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이다(하다르 케보드 호데카 웨디베레 니펠레오케이카 아시하)”(시145:5). 이처럼 토라의 암송이 바로 찬양하는 하나님의 세계를 음미하고 존귀하게 할 수 있음을 시편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찬양의 세계를 살아간 한국 선교사들 중에 초기에, 포사이드가 있다. 포사이드(W. H. Forsythe, 1873-1918, 보위렴) 선교사는 한국의 다미안과 같은 성자 선교사였다. 그는 미국 켄터키 주 해로스 버그에 태어나서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1898년 루이빌 의과 대학을 졸업한다. 그 후 그는 인턴 과정을 마친 후 쿠바에서 벌어진 미국과 스페인 전쟁 때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그는 이 전쟁 후에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전라북도 전주에 고아원을 운영하며 순회 의료 선교를 하였다. 그는 동학의 저항 때 상처를 당한 사람을 치료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집에 갔다가 ‘귀가 잘리고 두개골이 깨져서 얼굴과 목에 큰 상처를 입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전주로 이동되어서 거기서 치료를 받고 미국으로 귀국하였다가 2년 후에 다시 한국에 선교하러 목포의 의료 선교사로 오게 된다.
이 포사이드가 나병 환자를 치료하고 그녀를 말에 태워서 오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최흥종 목사가 개종하는 역사를 가지게 된다. 그는 1909년 4월 포사이드 선교사는 급성 폐렴에 걸린 오웬 선교사를 치료하기 위해 광주로 가는 길목에서 신음하던 나병환자를 자신의 말에 태우고 치료하고 돌본 감동적인 모습을 통해 최흥종을 감동시키게 된 것이다. 또 강도당한 ‘이경호’를 치료하러 갔다고 변을 당해 죽을 뻔 했던 사건을 통해 이 소식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포사이드 박사가 상처를 입은 한 달 뒤, 상당수의 고위층과 부유층의 이 씨 문중 사람들과 집안의 가장들이 큰 길에서 가마에 내려서 예배드리며 또 외국 사람 집에 가는 것을 보고 이것이 그 도시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중략)이 사건이 본이 되어 교회에 나오는 것이 더 이상 체면이 깎이는 일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기적은 강도에게 린치를 당한 이경호의 서자인 이보한이 자원해서 교회에 나온 것이다. 그는 부친이 포사이드 선교사에게 진 마음의 빚과 테이트 선교사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자신을 대신하여 교회에 나갈 사람을 찾을 때, 결국 자신이 교회에 나가겠다고 선뜻 자원하였다. 포사이드 선교사의 감화를 받은 이보한은 전주 교회에 나와 전킨 선교사의 지도 아래 성경과 영어를 배웠으며 예수를 믿은지 1년 만에 전주 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가 되었다. 포사이드 선교사는 5년(1904-1911)의 짧은 선교를 하였지만 한국 선교사의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오웬 선교사를 도우려하다가 불쌍한 나환자를 치료 하며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돌본 보위렴 선교사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한 최흥종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땅 1000평을 광주 선교부, 나환자 치료소를 세우는데 기여했고 지극히 작은 자들인 나환자들과 걸인들, 결핵 환자의 벗으로 살았던 것이다.
이처럼 칼침을 당하고 용서한 사건과 나환자 여인을 자신의 말에 태우고 말고삐를 잡고 오십 리 길을 걸어간 사건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과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도록 오늘도 감동을 주고 있다. 그가 짧은 나이에 한국 선교사를 마치고 소천했지만, 그의 뒷자리를 서서평 선교사가 이어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했던 것은 놀라운 것이다. 이는 선교사들의 분여(分餘), 곧 하나님 사역을 나눠서 하는 것으로서 자기의 몫을 충분히 하였다. 그의 하나님 나라의 봉사는 한국의 복음화의 큰 역할이 되었다. 이는 조선을 기독교 나라로 바꾸어 가는 거룩한 사랑의 행진이 계속되게 하였고 이는 그 전주곡에 불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