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섭 선교사】 물이 넘치는데, 왜 이토록 목이 마를까?

  • 입력 2025.07.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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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섭 선교사 / 현)감리교 목사, 필리핀 민다나오 선교사, 전)필리핀국제대학 교수, 현)사단법인 국제희망나눔네트워크 필리핀 지부장, 현)본헤럴드 객원기자
오준섭 선교사 / 현)감리교 목사, 필리핀 민다나오 선교사, 전)필리핀국제대학 교수, 현)사단법인 국제희망나눔네트워크 필리핀 지부장, 현)본헤럴드 객원기자

며칠째 하늘은 쉼 없이 울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하늘은 요즘 유난히 슬퍼 보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를 만큼 비는 멈출 줄 모르고 쏟아지고, 우리의 삶은 조금씩 차오르는 물을 이기지 못하고 잠기고 있습니다.

마닐라를 비롯한 수많은 지역이 침수되었습니다. 길은 강이 되었고, 마당은 연못이 되었으며, 집은 배가 되어 흔들리고 있습니다. 마당에 자라던 채소는 떠내려갔고, 학교는 물에 잠겨 며칠째 학생들을 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장화를 신을 수 없어 맨발로 물 위를 걷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이젠 안쓰럽다는 말조차 무색해질 정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많은 물 속에서도 정작 ‘마실 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곳, 필리핀은 물로 가득한데, 가득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목마릅니다.

“선교사님, 마실 물이 없어요.”

“아이들이 설사를 멈추질 않아요.”

이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고열에 시달리고, 약국에서 사 온 해열제를 삼킬 물조차 구하지 못해 고개를 떨구는 어머니들을 보며, 제 가슴도 함께 무너져 내립니다.

지구의 70%가 물인데, 그 많은 물이 왜 이토록 마실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는 걸까요?

맑은 빗물이 땅을 적시지만, 정작 아이들의 목은 마르고, 아이들의 눈빛은 갈라진 논바닥처럼 메말라 갑니다. 이처럼 지나치게 많은 것은 때로, 정작 필요한 것을 가리지 못하게 합니다.

넘쳐흐르는 물이 오히려 깨끗한 물을 가려버리는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오늘도 한 모금의 생명, 한 모금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비가 오면 풍요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가 오면 땅이 숨을 쉬고, 생명이 자란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비가 오면 두려움이 먼저 찾아옵니다. 물살이 언제 집을 덮칠지 모르고, 흙탕물이 언제 아이들의 발등을 삼킬지 몰라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비를 멈춰 주세요.”

“하나님, 제발 마실 물을 주세요.”

하늘에선 물이 넘쳐 흐르는데, 땅 위의 사람들은 목이 타들어 갑니다. 이 기막힌 역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분이시니까요.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시니까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장 37절)

이 말씀 한 구절 붙들고, 오늘도 우리는 빗속에서, 물속에서, 한 모금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주님, 이 땅의 목마름을 채워 주세요. 물이 넘치는데, 생명이 없습니다. 물이 넘치는데, 평안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저 ‘마실 수 있는 물’처럼, 누군가에게 생명이 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게 하소서.

이 침수된 도시에서, 오늘도 생명의 샘을 간구하는 작은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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