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섭 선교사】 내 나이에 뭘 할 수 있을까?

  • 입력 2025.08.06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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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섭 선교사 / 현)감리교 목사, 필리핀 민다나오 선교사, 전)필리핀국제대학 교수, 현)사단법인 국제희망나눔네트워크 필리핀 지부장, 현)본헤럴드 객원기자
오준섭 선교사 / 현)감리교 목사, 필리핀 민다나오 선교사, 전)필리핀국제대학 교수, 현)사단법인 국제희망나눔네트워크 필리핀 지부장, 현)본헤럴드 객원기자

저는 처음 선교지에 발을 디뎠을 때, 3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열정 하나로 필리핀의 작은 마을들을 누비며, 태권도복을 입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사역에 임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가진 젊음과 체력이 곧 사명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으로 하는 사역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한국에 계신 한 성도님이 조심스레 물으셨습니다.

“목사님, 왜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고생하세요? 한국에서 목회하셔도 충분히 잘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그 물음 앞에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한국의 또래들과 격차가 벌어지는 것 같고, 사역도, 삶도 녹록지 않은 이 땅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깊은 고뇌 속에, 제 마음은 흔들려만 갔습니다.

팬데믹 이후 필리핀 사역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겨우 2년, 이곳 민다나오에서의 삶은 아직도 낯설고 새롭습니다. 이전의 모든 기반은 사라졌고,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하는 부담감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저는 ‘나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되었습니다. 그 단어를 곱씹게 된 이유는 많은 선배 선교사님들이 저희 가정을 보며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젋은 선교사가 이곳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나?, 나이가 어떻게 되나?, 장기 선교사로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의 중요성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세상은 종종 나이로 사람을 규정합니다. 어떤 시기는 젊어서 안 되고, 어떤 시기는 늙어서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계는 사람과 전혀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르심을 받았고, 모세는 80세에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나이는 사명이 멈추는 이유가 아니라, 사명이 시작되는 새로운 계절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어리고 늙음, 즉 연령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이 자리에, 이 사명을 다시 붙잡게 된 것도 하나님의 타이밍 안에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경험과 상황, 그리고 믿음은 오히려 이 사역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눈앞에 있는 사역만 보였다면, 이제는 사람의 마음을 더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예전에는 열정으로 뛰어들었다면, 이제는 기도와 기다림으로 품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몇 살이냐’를 묻지 않으십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를 물으십니다. 나이는 단지 시간이 흐른 증거일 뿐,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증명이 결코 아닙니다. 

혹시 지금, “내 나이에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쓰실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오히려 지금의 당신을 더 깊이 사용하시려 합니다.

“너는 몇 살이냐?”가 아니라 “너는 지금도 나를 믿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도 부르심 속에 그 사명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 우리의 대답이 늦지 않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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