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대한민국이 세상에 남긴 가장 찬란한 문화유산 중 하나입니다. 불과 반세기 남짓한 시간에 전 세계 200여 개 나라로 퍼져 나갔고, 이제는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 잡으며 세계인의 무술이 되었습니다. 검은 띠를 두른 수련생들의 수만 봐도, 그 양적 성장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문득 선교지에서 아이들을 바라볼 때, 제 마음 속에 이런 물음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성장과 숫자만을 자랑할 것인가? 우리가 진정 길러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국이 태권도를 세계에 보급하는 일은 마치 황무지에 씨앗을 심는 것과 같았습니다. 씨앗은 반드시 뿌려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 태권도는 더 이상 씨앗을 심는 단계가 아닙니다. 이제는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통해 또 다른 생명을 키워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숙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숙은 단순히 기술이 늘고 대회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태권도를 수련한 이들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삶 속에서 의와 정의를 살아내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온전한 태권도인, 곧 온전한 사람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필리핀 민다나오 땅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작은 마을, 가난한 아이들이 모인 교회나, 마당에서 발차기를 가르치지만, 제가 심고 싶은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태권도를 배우러 온 아이들이 훈련을 마치고 함께 예배드릴 때, 그들의 맑은 눈빛 속에서 저는 깨닫습니다. 태권도는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러나 선교지에서도, 태권도계에서도 늘 유혹이 있습니다. ‘나의 왕국’을 세우고 싶어지는 마음 말입니다.
내 이름을 알리고, 내 영향력을 키우는 일은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합니다. 결국 내 손이 떠나면 그 나라는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내가 나를 비우고 제자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게 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오늘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가 내일 또 다른 아이들을 세운다면, 그때 비로소 백년대계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이며, 태권도가 가야 할 길입니다.
“나의 왕국을 세우면 한 세대에 불과하지만, 나를 비우고 그들이 주인이 되게 하면 백년대계가 된다.”
저는 선교지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제 이름이 빛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빛나야 한다는 것을요. 제 역할은 왕좌에 앉아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수많은 아이들이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품어주는 밤하늘이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태권도 역시 이제는 숫자의 성과를 잠시 내려놓고, 질적 성숙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 태권도의 중심으로서 단순한 기술의 원류가 아니라, 정신과 철학의 본산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제자들을 세우고, 그들이 또 다른 제자를 세우는 선순환의 역사를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태권도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며, 동시에 선교지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태권도가 단순한 발차기와 손기술을 넘어, 사람을 세우는 길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