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28)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40)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어찌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랴 그가 어찌 전능자를 기뻐하겠느냐 항상 하나님께 부르짖겠느냐”(27:9-10).

오늘의 시대를 가리켜 불확실한 시대, 불안과 두려움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재앙의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 주위에서 불안한 소식들이 전하게 되고 있다. 또 우리도 그 두려움의 코로나19, 델타 바이러스 변이가 급습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에 떨게 한다. 이러한 시대에는 자고(自顧)로 회개하며 주님께 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하는가? 들어야 한다. 욥기 27에서 욥은 자신의 내면에 하는 말을 깊이 생각하며 독백을 늘어놓는다. 세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변론을 하던 욥은, 이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다. 긴 독백을 하며 31장까지 무려 5장에 걸쳐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인에게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사실과 자신의 순전함을 주장한다.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투마티)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27:5).

고난 뒤에 있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 주님은 큰 일과 기이한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리라”(9:10). 이 전염병의 시대, 재앙의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기대하며 그의 기적을 바라며 이 어려운 시대를 이겨내는 일, 그 기도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세계는 전염병보다도 더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화재(火災)가 끊이지 않고 홍수가 범람을 하고 있다. 만약에 지구의 온도가 1.5도가 올라가면 폭염으로 지구는 뜨거워지면서 더욱 걷잡을 수 없는 환경 변화와 어려움이 온다고 한다. 이를 기후학자들은 예견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려움이 물 같이 그에게 닥칠 것이요 폭풍이 밤에 그를 앗아갈 것이며 동풍이 그를 들어 올리리니 그는 사라질 것이며 그의 처소에서 그를 몰아내리라”(27:20-21). 이러한 환난의 때에는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이웃과 관계에서 말과 행동에 실수 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며 욥처럼 고백해야 한다.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27:4,6). 의인 욥은 대적자들로 인해 불평하거나 또 그들로 인해 못마땅한 표정으로 인생을 살지 않았다. 다만 기도하기를 원수와 불의한 자, 불경건한 자가 소망이 없을 것을 알고 다음과 같이 위로를 삼았다. “나의 원수는 악인 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 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불경건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실 때에는 무슨 희망이 있으랴”(27:7, 8). 믿음으로 앞날을 보는 욥은, 미래의 되어 질 일에 대하여 말한다.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그가 비록 은을 티끌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부자로 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27:15-17, 19).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가지기를 바란다. 이러한 지혜는 바로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가장 많았던 것은 아닌가?

아펜젤러 부부 사이에 자녀들이 넷이 있었다. 엘리스와 헨리, 아이다, 메리 등 네 자녀였다.

아펜젤러 선교사 가족
아펜젤러 선교사 가족

엘리스(1885-1950)는 아펜젤러 부부의 첫째 딸로 16세에 아버지가 해상에서 사고를 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선교사로 결단하고 1915년 내한하여 이화학당 교사가 되었다. 엘리스는 이화학당 6대학장이 되었고 모금활동을 통해 신촌에 5만여 평 부지를 마련하였고 그 후에도 이화여자 대학교의 기초를 놓았다. 엘리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이화여대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한국에 태어나 한국에서 죽은 그녀의 묘비명에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왼쪽,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오른쪽, 헨리 닷지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
왼쪽,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오른쪽, 헨리 닷지 아펜젤러(Henry Dodge Appenzeller 1889-1953)

둘째 헨리 닷지(1889-1953)는 아펜젤러의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비보를 들었을 때가 12살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헨리 닷지는 어렵게 고학을 하며 자라다가 군복무를 지원했지만 떨어져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후에 아버지의 뒤를 따라 신학의 길을 가고 선교사로 안수를 받고 19179월 내한한다. 인천에서 3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였고, 1920년 배재학당에 5대 학장이 되었다. 그는 일제에 어려움을 당했지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으며 기독교 정신으로 배재 학당의 기초를 다졌다. 오늘날 교가가 되는 노래,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이 노래는 1920년대 헨리 닷지가 작사했다. 이렇듯 아펜젤러 선교사는 일찍 소천하였지만 그 자녀들이 부모의 뒤를 이어 한국 선교를 하며 고귀한 사역을 한 것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도 또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또 노래합시다. 주의 구원의 노래를 부릅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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