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용 교수】 하나님 섭리사관을 통해 패배주의적 식민사관을 극복

  • 입력 2022.04.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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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사관으로 본 韓日近代史” , 박호용 교수의 한일근대사 강의 (5)

1. 섭리사관을 이어가 보자. 섭리사관이란 역사를 인간의 역사를 넘어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눈’(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역사는 짧은 눈’, 즉 단기적 안목으로 보기보다는 긴 눈’, 즉 장기적 안목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역사를 짧은 눈으로 보는 것과 긴 눈으로 보는 것은 상당히 다를 수 있고, 심지어는 정반대일 경우가 많다. 섭리사관은 역사를 하나님의 눈, 긴 눈으로 보도록 이끈다.

가령 짧은 눈으로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이겼으나 긴 눈으로 보면 빌라도는 영원한 패자이고, 예수는 영원한 승자이다. 또한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한일강제병합은 짧은 눈으로 보면 일본이 이기고 한국이 패한 역사이지만 긴 눈으로 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 즉 경륜적 섭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 관점을 넘어 복음적 관점에서 보면 일본이 패하고 한국이 승리한 역사이기도 하다.

한일근대사를 한일 양국 간의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적 시각, 즉 단지 일본이 이기고 한국이 진 승리와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셨다고 한다면, 그럴 경우 일본이 이긴 것도 한국이 진 것도 아니다. 한일강제병합이 있었던 1910년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이 이기고 한국이 진 것 같으나, 35년 후인 1945년에 일본은 연합국에 의해 패망했고 한국은 해방을 맞았다. , 하나님을 주어로 한 섭리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은 한일 간에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섭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주어를 인간(조선인, 일본인)에서 하나님으로 바꿀 때 조선의 최후를 일제의 식민사관에 내포되어 있는 패배주의적 관점, 즉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부정적 시각을 극복할 수 있다. ‘조선의 최후를 하나님의 원대한 역사 경륜이라는 섭리적 시각으로 볼 때 거기에는 한민족을 새 언약 백성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깃들어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참된 길이다.

 

2.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섭리사관은 철저히 예수적이고 성서적인 섭리사관이다. 여기서 성서적(예수적)이란 역사를 주관하시는 삼위일체적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적 섭리사관을 말한다. 그리고 한일근대사 속에서 이것을 한 평생의 삶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이 바로 시인 윤동주(1918~45)이고 김교신 선생(1901~45)이었다. 그런데 우리 민족사에서 섭리사관을 얘기할 때 흔히들 먼저 함석헌 선생(1901~89)을 언급한다. 그래서 먼저 그의 섭리사관이 무엇이며, 성경이 말하는 성서적(기독교적) 섭리사관에 속하는 것인지를 비평적으로 검토해 보려고 한다. 그런 연후에 시인 윤동주와 김교신 선생의 섭리사관을 다루고자 한다.

연대 대학원 신학과를 졸업(Th.M.)한 후에 장신대 신대원(M. Div.) 과정을 다니던 1988년 가을에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한길사)를 사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난 첫 소감은 함 선생의 민족사랑을 절절히 느꼈으며, 이스라엘의 역사가 고난의 역사이듯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풀어가면서, 그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였다. 그런데 먼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난 사도 바울이 사랑장(고전 13)에서 노래한 말씀으로 내 생각을 피력하고자 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3. 함석헌 선생은 김교신 선생과 더불어 3.1운동 이후 일본에 유학을 가서 일본의 기독교 선각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밑에서 성경을 공부하였다. 이때 함께 공부했던 동지들(송두용, 정상훈, 유석동, 양인성)은 귀국하여 19277, 6인이 성서조선을 창간하였는데, 이 월간지는 19423월 제158호로 폐간되었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1965)는 원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대폭 수정하면서 제목을 바꾼 것이다. 이 책은 본래 19332월부터 193512월까지 성서조선에 실은 글을 모은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상황에서 함석헌 선생은 내란과 외세의 침략을 포함하여 100회 이상의 전쟁을 치리고, 50번 넘게 외세에 무력하게 무릎을 꿇었던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보았다. 그러면서도 우리 민족에게는 세상의 고통과 불의를 치유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는 독특한 사명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 글이 그 제목(‘성서[기독교]적 입장’)처럼 일제 식민지 상황에서 고난의 역사를 살고 있는 한민족에 대해 유일신(삼위일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그런 역사를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필자는 의구심이 든다.

그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 선생(1890-1981)은 동양 종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대사상가로서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다원주의적 세계관 속에 있었던 사람이다.

함석헌 선생은 스승 다석 선생의 뒤를 따라 종교다원주의(syncretism)의 길로 갔다. 그리하여 1961년에 개정판을 낼 때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간판을 바꾸어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고난의 역사라는 근본 생각은 변할 리가 없지만 내게는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가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요, 역사철학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함석헌은 이렇게 선언했다. “일천 구백 오십 삼년 칠월 사일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비웃는다 겁낼 줄 아느냐. 못될까 걱정이로다.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더 위대하다대선언을 하였다. 그는 진리가 기독교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나아가 그는 내가 믿는 종교만이 옳고 다른 사람이 믿는 종교는 틀렸다는 배타주의를 철저히 거부하였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종교요, 동양 종교는 인간을 주어로 하는 종교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진리(사상)가 아니다. 그래서 당시에 종교다원주의의 용어인 하느님용어를 거부하고 철저히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유일신(삼위일체) 신앙을 지킨 김교신의 섭리사관은 성서적(기독교적) 섭리사관이고, 함석헌의 섭리사관은 종교다원주의적 섭리사관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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