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게는 낯선 인사치레, “밥 한번 먹자!”

15여 년 전, 여러 나라에서 온 몇몇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한국어교재가 많지 않아 주교재 외에 그날그날 한두 가지 주제를 정하여 프리토킹으로 수업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학생이 선생님, 한국인들은 약속을 잘 안 지켜요.”라면서 친구들이 밥 한번 먹자해놓고 여태껏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순간 난 풋! 하고 웃음이 났지만 우리의 입에 붙은 과 관련된 표현들이 외국인에게는 얼마나 낯선 문화이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날 이후 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표현으로 수업을 하는 데만 수개월을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인사문화

'밥 한번 먹자'

예로부터 한국은 농경사회로서 쌀과 같은 곡물로 만든 밥을 주식으로 해왔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처럼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한국인의 삶의 근간이며 생존과 생계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한국의 식문화 전체를 대표하는 은 글자 그대로의 보다는 전체의 끼니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식사하는 상을 밥상이라고 칭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또한 식당에서 반찬을 추가하면 돈을 내지 않지만 공깃밥을 추가할 때는 돈을 내야 한다. 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에만 그 값을 매긴다는 것이다.

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도 그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어 화자의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변이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밥값하다, 밥줄을 끊다, 밥맛이야,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밥 먹듯이 하다, 찬밥신세, 눈칫밥, 밥팅, 콩밥 먹이다, 죽도 밥도 안되다, 밥이 안 넘어간다, 밥그릇 싸움, 밥 빌어먹다, 밥은 먹고 산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밥만 축내다, 남의 밥도 석 달이다 등등...

이처럼 은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생활에서부터 우리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인사 역시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면 밥 먹었니?’ 헤어질 때는 언제 밥 한번 먹자부모가 자식에게도 밥 잘 챙겨 먹어라친근함을 나타낼 때 밥 좀 사 주세요고마움을 표시할 때도 다음에 밥 한번 살게요라고 말한다.

이렇듯 한국인에게 있어 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음식 그 이상으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 아니어도 밥을 함께 먹으면 우리는 이 아닌 우리가 된다. 한국인이 자꾸 밥 먹었냐고 묻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을 가족처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인에게 밥은 식사 이상의

관계와 공감의 매개체

그런데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의 다양한 모습이 외국인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밥 한번 먹자는 통상적인 사회적 언어로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인사치레임을 잘 안다. 그 말이 지켜지지 않는 빈말일지라도 한국인은 무심코 이해한다.

하지만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문화를 익히고 있는 외국인이 한국인의 정서와 정체성이 담긴 의 여러 의미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구글번역기조차도 의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언어는 그 자체에 그 사회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속에 담긴 문화까지 습득하고 흡수함을 의미한다.

15여 년 전 나의 한국어 수업을 되돌아보면, ‘이라는 주제로 외국인이 배우는 한국문법과 한국인이 실제로 쓰는 한국어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많은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말빚을 지지 않기 위해 밥 한번참 많이도 함께 먹었다.

이제는 TV프로그램이나 유명 가수들의 노래에서도 회자되고 공식적인 인사말이 되어버린,

밥 한번 먹자!”

오늘은 한국인의 이 친근하고 따뜻한 마음을 노래에 실어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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