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의 축복, 가족 지원, SECTION Ⅲ, 시편 147:3

이미지 중 제호 : 효당 김훈곤 서예가
이미지 중 제호 : 효당 김훈곤 서예가

고령 때문이 아닐지라도 가족 중에 갑자기 장애를 만난 분들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와 질병으로 인해 뼈, 신경, 근육 등의 신체적 손상으로 인한 뇌병변 장애, 척수 및 척추 장애와 상지절단 및 하지마비 등을 포함하는 중증의 근골격 장애는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한시적이거나 어쩌면 영구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고나 질병을 만난 환자 자신도 엄청난 충격을 받을 뿐 아니라 그의 가족 또한 회복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일시적으로 간병하는 경우는 다행이지만 중증 환자인 경우에는 오랜 간병을 제공해야 합니다. 중증 환자의 경우에는 사고 혹은 질병이 발생한 시점부터 기본적인 간병관리가 필요합니다. 신변처리나 식사, 이동, 침상 생활 지원 등 전혀 예상치 못한 간병은 환자와 보호자 양쪽에 심리적 충격을 안기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문화적 영향으로 가족 간병을 선호하기도 하고, 워낙 비싼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겨워 배우자나 자녀가 간병을 맡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준비나 교육이 전혀 없이 간병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합니다. 고령자가 아닌 사고나 질병 때문에 간병을 받는 이들은 대부분 30-60세의 현장에서 일하는 경제활동 인구에 속하기 때문에 주 돌봄 자는 환자의 배우자인 여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 돌봄 자는 환자의 돌봄뿐 아니라 경제적인 부담과 자녀 양육, 게다가 살아계신 양 부모의 부양책임까지 떠맡게 되기 때문에 심리적 압박이 가중됩니다.

돌봄 상황에 처한 가족의 스트레스는 사고나 질병 판정의 순간에 한꺼번에 노출되기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고통의 지각 정도가 심각해집니다. 이것을 돌봄 부담(care burden)이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돌봄 스트레스, 부양 스트레스, 간병 부담감 정도로 부르기도 합니다. 돌봄 부담은 가족 부양자에게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전반적 영역의 돌봄으로 인해 주 돌봄 자는 관절염, 허리 디스크 등 다양한 신체적 질병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주 돌봄 자가 제2의 환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간병인들은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고 싶은 욕구는 있으나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환자와 함께 하며 환자의 간병을 해야 하므로 제대로 휴식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으며, 수면장애나 소화 장애, 심리적 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큰 사고나 중증 질병, 치매 등으로 간병하는 경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족 돌봄 자는 우울, 외로움, 두려움, 분노, 고립감, 삶의 질 저하 등의 부정적 심리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주 돌봄 자의 심리, 정서적 지지는 환자의 정서와 재활 동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간병인의 신체적, 심리적 기능이 저하되면 양질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돌봄 부담은 다시 환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돌봄 부담은 이혼과 가정의 해체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간병인의 심리는 남은 가족들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교회는 교회 안에서 만나는 환자뿐 아니라 주 돌봄 자인 성도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필수적입니다. 이런 현실을 이해하고 계속되는 간병 굴레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가족들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1. 평범한 주부에서 전업 간병인으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급작스럽게 배우자의 간병인 역할을 맡게 된 돌봄 자들은 간병에 대한 지식도 없고 병원에서 체계적인 간병교육을 받은 적도 없어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돌봄 자들은 평소에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의학 용어, 24시간 내내 신경을 써야 하는 체위 변경이나 소대변처리 등이 모두 낯설고 어려운 일입니다. 배우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성도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스스로 노력할 때 점차 간병활동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간병 뿐 아니라 영양을 고려한 환자 식사를 준비하는 일과 다른 가족들을 위해 평소에 해 오던 온갖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신체적 피로감은 심각해집니다.

 

2. 환자에 매여 있는 간병인

환자의 신체 기능 상태나 자립정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간병인들은 대부분 환자의 돌봄에 묶여 주 7일 매일 24시간 간병체제를 유지해야 하며,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쉬거나 잠을 잘 수도 없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도 어렵습니다. 환자가 수면하는 시간 외에는 계속해서 환자의 돌봄과 요구를 듣고 응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눈앞에 항상 돌봄 자가 있기를 원해 전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답답해하는 돌봄 자도 많습니다. 자신을 새 장 안에 갇혀 있는 새라고 자조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한 환자를 찾아오는 지인들을 접대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렵고, 환자를 그냥 보일 수 없기에 목욕하거나 단장해 주어야 하는 신경 쓰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환자 건강 체크를 위한 병원 이동은 간병인에게 넘기 힘든 매우 큰 산으로 다가오는 부담입니다.

 

3. 가족 돌봄이라는 심리적 족쇄

간병하는 가족에게 돌봄은 발목에 채워진 족쇄 같은 것입니다. 환자가 다른 사람의 간병을 거부하고 오직 가족에게만 돌봄을 요구하는 경우 가족은 꼼짝할 수 없이 돌봄에 묶여야 합니다. 어느 시기가 지나면 외부의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환자가 불편해하면 그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환자가 움직이거나 활동은 어려워도 어느 정도 의식이 있고 대화 소통이 가능하다면 돌봄 자는 외출이 더욱 쉽지 않습니다. 환자가 소외감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환자를 혼자 두기 불안하고 걱정과 미안함에 마음 편하지 못하고, 때로는 잠시 외출이라 할지라도 바깥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4. 동굴 속에 갇힌 간병인

환자에 대한 돌봄의 기간이 길어지고, 간병인의 노화의 시작은 간병에 따른 신체적 부담을 야기 합니다. 척수손상 환자는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휠체어 이동, 목욕, 배변 빛 배뇨 때라든지, 생활 전반에 걸쳐 배우자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욕창 방지를 위해 주기적으로 체위변경을 해줘야 하고, 배뇨 및 배변 시에도 도움이 필요하므로 몸의 전체 또는 일부를 들어 올리거나 목욕을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간병인들은 어깨, 허리, 무릎 등의 신체 손상을 겪고 통증을 겪을 수 있습니다. 24시간 내내 환자 돌봄에 신경 쓰느라 양질의 수면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 돌봄자들은 대체로 40대나 50대 나이에 갑작스럽게 돌봄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이 시기는 여성갱년기와 노화로 인해 골다공증과 같은 합병증이나 여러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배우자 치료를 위해 병원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지만, 경제적 부담과 시간 제약이 있어 정작 자신을 돌보기는 어려운 상황일 수 있습니다.

 

5. 현실적 문제로 인한 체념

간병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환자를 돌보는 신체적 부담보다 오히려 정신적 부담을 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신체 기능의 손상과 일상적인 생활을 독립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우울, 불안, 짜증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환자들은 신체기능의 저하와 그에 따른 일상생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부정적 감정을 타인이 아닌 돌봄 자에게 여과 없이 분출하게 되고, 이전에 하지 않았던 잔소리를 하거나 자신의 욕구만 챙기는 등 예전과 달라진 모습도 간병 가족에게는 상처가 됩니다. 간병인은 환자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강하여 환자의 부정적 감정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간병인은 항상 우울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간병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자포자기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환자의 악화되는 질병 상태와 비슷하게 자신의 삶도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없고 간병의 기쁨이나 감사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간병인은 환자의 상태를 보면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에 체념하기 쉽습니다.

 

가족 돌봄이라는 아름다운 일도

정신적 부담이 지속되면

현실을 체념하기 쉽습니다

 

6. 가족들이 주는 상처

간병인은 다른 가족들이 자신의 간병생활을 이해하고 때로는 격려와 도움을 주는 지지자 역할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가족들이 자신의 생활로 인해, 혹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주 돌봄 자에게만 환자를 맡기고 외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봄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줄 수 있는 자원으로 기능해야 할 가족이 오히려 간병인에게 스트레스 원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간병인들은 환자의 가족 간병자로 다른 가족으로부터 관심과 정서적 지지를 원했으나, 방문은커녕 전화도 없는 것에 서운함을 느끼거나, 급기야 서로 연락조차 안하는 관계가 되기도 했고, 수년간 배우자를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간병인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에게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7.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상실감

간병인들은 환자 간병을 시작하기 전에는 자신만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직업을 갖고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회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사고나 중증 질병을 이유로 간병 일을 자원한 때부터는 주변에서 잊힌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전의 직업은 물론이고, 자신의 취미나 감동을 주는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므로 오는 상실감이 큽니다. 환자가 호전되지 않는 한 다시 예전의 활동을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직장으로 복귀하려는 마음도 크고 본인뿐 아니라 주변에서 권하지만, 환자 돌봄으로 인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간병인들은 취미활동이나 지인과의 만남 등 외부활동을 제한하면서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기 쉽습니다. 이는 환자 돌봄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동년배들이 본인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것과 달리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있는 본인의 상황에 위축되어 스스로 외부활동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어느 정도 치유받기를 원하지만 실상 만남 이후에 치유가 아니라 상처를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사회 활동을 줄이게 되고 본인 인생은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간병의 굴레는 쉽게 해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돌봄 가족들의 상처는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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