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 (47)

1.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문체(어휘)의 차이로 말한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에서는 양서의 숫자의 차이를 말하고자 한다. 두 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이중주(二重奏)처럼, 구약과 신약, 모세(성막)와 다윗(성전), 메노라와 다윗의 별, 바다와 성전은 짝을 이루는 이중주이다. 전자는 북왕국을 대표하고, 후자는 남왕국을 대표한다. 북왕국 전승인 요한복음과 남왕국 전승인 요한계시록은 각각 전자와 후자를 대표한다. 이는 숫자 사용에 있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완전수인 숫자 7을 제외하고, 북왕국 전승인 요한복음은 모세오경처럼 홀수(5)를 강조하고(3,5,13,17,25,153 ), 남왕국 전승인 요한계시록은 네모난 성전처럼 짝수(4)를 강조한다(4,12,14,24,28,144,666,1,000,1,600,144,000 ).

먼저, 숫자 7에 대해 살펴보자. 숫자 7은 완전수로써 양서가 공히 많이 사용하지만, 사용방식이 전혀 다르다. 요한복음은 주로 은폐기법을 사용하는 데 반해, 계시록은 철저히 노출기법을 사용한다. 이미 숫자상징코드에서 자세히 밝혔지만 요한복음은 숫자 7(기수와 서수)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가령, 일곱 표적, 일곱 에고 에이미, 일곱 신앙고백 등) 서수로 4:52에서 한 번(일곱 시) 사용하는 것 외에는 숫자 7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전부 은폐시키고 있다.

반면에 계시록은 직접 말하는 방식(노출기법)으로 숫자 7을 기수인 일곱(54)과 서수인 일곱 번째(6)를 합쳐 60회나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완전수 7을 강조한다. 먼저 기수를 살펴보자. 일곱 교회(1:4,11,20[2]), 일곱 영(1:4; 3:1; 4:5; 5:6), 일곱 별(1:16,20[2]; 2:1; 3:1), 일곱 촛대(1:12,20[2]; 2:1), 일곱 등불(3:5), 일곱 인(5:1,5; 6:1), 일곱 뿔(5:6), 일곱 눈(5:6), 일곱 천사(8:2,6; 15:1,6,7,8; 16:1; 17:1; 21:9), 일곱 나팔(8:2,6), 일곱 우레(10:3,4[2]), 일곱 왕관(12:3), 일곱 재앙(15:1,6,8; 21:9), 일곱 대접(15:7; 16:1; 17:1; 21:9), 일곱 머리(13:1; 17:3,7,9), 일곱 산(17:9), 일곱 왕(17:10,11), 칠천(11:13) .

다음으로, 서수를 살펴보자. 일곱째 인(8:1), 일곱째 천사(8:6; 10:7; 11:15; 16:17), 일곱째(21:20) . 숫자 7에 대한 직접 화법 이외에 분할기법에 의한 간접 화법을 사용한 예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7개의 사건들을 한 단위로 하는 환상그룹이 7개나 되며, 전체를 7부로 나눌 수 있으며, 7()을 한막()으로 하는 7막의 드라마로 되어 있고, 7삽경군(揷景群)이 있다(7:1-17; 10:1-11; 11:1-14; 12:1-17; 13:1-18; 14:1-20; 17-18). 또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7(2:7,11,17,29; 3:6,13,22), 영광송(송영)7(1:4-8; 4:1-5:14; 7:7-17; 11:15-19; 14:1-5; 15:1-8; 19:1-10) .

기타 어휘 7(1:3; 14:13; 16:15; 19:9; 20:6; 22:7,14),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임금어휘 7(5:9; 7:9; 10:11; 11:9; 13:7; 14:6; 17:15),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5:12),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7:12),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6:15) 등등.

meno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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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는 당시의 대표적 교회로써 지도상으로 보면 마치 일곱 촛대’(메노라)처럼 되어 있다. 성경이 7일 창조로 시작하여 7이란 숫자를 기본 구조로 하는 계시록으로 끝을 맺음은 우연의 일치일까? 계시록이 완전수 7이란 숫자를 빈번하게 사용한 데는 이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 안에서 일어남을 확신하는 저자의 태도를 반영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7회 나타나는 어휘(3:2; 7:50; 9:4; 11:10; 13:30; 19:39; 21:3)를 제외하면 숫자 7이 철저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어휘(1:4-9)를 비롯하여 일곱 표적, 일곱 에고 에이미의 비유적 용법, 일곱 신앙고백, 성경(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 등등. 반면에 완전수인 숫자 7이 계시록에서는 꼭 긍정적인 의미나 호의적인 대상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나 적대적인 대상에도 사용되고 있다. 가령, 계시록에서 7(12:1,3; 13:13,14; 15:1; 16:14; 19:20) 나오는 표적(σημει ̑ον)을 적그리스도에게 사용하는가 하면, 큰 붉은 용의 머리가 일곱(12:3), 짐승의 머리가 일곱(13:1), 여자가 앉은 산이 일곱(17:9)이 그 실례이다. 이는 숫자 7이 긍정적 의미와 호의적 대상에만 사용되고 있는 요한복음과 대조를 이룬다.

특히 주목할 것은 요한이 의도적으로 사용한 숫자(횟수) 17 이외에 1325가 있다. 숫자 13은 예수와 열두 제자를 합한 숫자로써 하나님의 열세 가지 속성(34:6-7 참조)이나 열세 가지 성서해석방법론과 관련하여 초대 유대교 사회에서는 길상(吉祥)의 숫자이다. 숫자 13은 예루살렘(1:19; 2:13,23; 4:20,21,45; 5:1,2; 7:25; 10:22; 11:18,55; 12:12)과 인자(1:51; 3:13,14; 5:27; 6:27,53,62; 8:28; 9:35; 12:23,34[2]; 13:31), 왕으로서의 예수(‘’ 8(6:15;12:15; 18:37[2], 19:12,14,15[2]), 이스라엘의 왕 2(1:49; 12:13), 유대인의 왕 6(18:33,39; 19:3,19,21[2]) 등 도합 16회 나온다. 이 중에서 3(1:49; 6:15; 12:15)를 제외한 13회가 예루살렘과 관련해서만 사용)에서 나타난다. 이 세 어휘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인자예수는 곧 만왕의 왕 또는 유대인의 왕이신 종말론적 메시아(그리스도)’임을 암시한다.

또한 숫자 25(5×5)진리’(1:14, 17; 3:21; 4:23, 24; 5:33; 8:32[2], 40, 44[2], 45, 46; 14:6, 17; 15:26; 16:7, 13[2]; 17:17[2], 19; 18:37[2], 38)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 1:51; 3:3, 5, 11; 5:19, 24, 25; 6:26, 32, 47, 53; 8:34, 51, 58; 10:1, 7; 12:24; 13:16, 20, 21, 38; 14:12; 16:20, 23; 21:18)에서 사용한 숫자이다. 모세를 강조하는 북왕국 전승(다윗은 한 구절[7:42]에 불과한 반면, 모세는 12구절에 걸쳐 나타남)에서 숫자 5의 반복(5×5)은 모세(5) × 모세(5)새 모세 예수’(5×525)를 의미한다고 할 때, 이는 유대교(모세)에 대한 기독교(예수)의 우월성(우위성)을 나타낸다.

한편, 홀수를 강조하는 요한복음에서 숫자 6(짝수)은 완전수 7에서 하나가 모자란 수(7-1=6)의 의미, 즉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상태의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가령 가나의 혼인잔치(2:7)에서 여섯 항아리,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만남(4:18)에서 여섯 남편, 그리고 마귀(사탄)의 역할을 한 가룟 유다(6, 6:71; 12:4; 13:2; 18:2,3,5)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에 숫자 6은 계시록에서 꼭 부정적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생물들이여섯 날개를 가진 것이 그 실례이다(5:8). 계시록에서 숫자 6666(13:18)에서도 볼 수 있다. 상징적으로 볼 때 불완전한 숫자 6(7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이 세 개가 모인 것은 마귀의 수, 불완전의 수, 인본주의의 수이다. ‘777이 하나님의 삼위일체 수라면, ‘666은 마귀의 삼위일체 수. 그것은 실패에 실패에 실패를 나타낸다. 그것은 불완전의 삼위일체다.

 

2. 특히 계시록은 짝수, 특히 숫자 14를 강조한다. 숫자 1212의 배수는 60회 가량 나타나며, 그 숫자는 대부분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남왕국 전승에 속하는 계시록은 유다 지파(7:5)와 다윗(5:5; 22:16)을 강조하는 전통을 보여주는데, 숫자 14는 다윗(דוד)의 세 문자의 합수(14=

4+6+4)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그래서 계시록에는 다윗의 별과 관련하여 어휘가 14회 나온다(1:16,20[2]; 2:1,28; 3:1; 6:13; 8:10,11,12; 9:1; 12:1,4; 22:16). 또한 계시록에서 예수명칭은 14(1:1,2,5,9[2],12; 12:17; 14:12; 17:6; 19:10[2]; 20:4; 22:16,

20,21) 나타난다. 이는 예수께서 유대 지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것을 암시한다. 또한 예수와의 조화를 위해서 ’(πνεu'μα) 어휘를 14회 사용한다.

계시록의 저자는 짝수인 14뿐만 아니라 여러 짝수를 상징적 의미로 즐겨 쓴다. 본질과 실체를 나타내는 숫자 4는 네 모퉁이(7:1; 20:8)와 네 바람(7:1)으로 묘사된 이 세상을 가리킨다. 네 생물(4:6)을 비롯하여 창조된 이 세계는 넷으로 구분되는데, 5:13에 보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4중 찬양을 드린다. 하나님의 칭호와 관련된 숫자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그 중 세세토록 사시는 이칭호가 4(4:9,10; 10:6; 15:7) 나온다. 이는 창조자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 세계를 영원히 지배하신다는 의미에서 숫자 4를 사용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숫자 1234의 곱수로 창조의 완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는 사방 네모난 우주를 상징한다. 창세기 설화에서 12천궁(zodiac)12족장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더 나아가 구약의 메시아 언약을 받은 백성은 하나의 영적인 세계를 이루는 실체로 12지파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동일한 개념에 근거하여 신약의 언약에 의한 백성도 영적인 이스라엘 12지파로 이루어진다고 묘사된다. 이들은 처음에는 12사도에 의해 대표되었으나, 요한이 환상 가운데 그들을 보았을 때는 1212배수로 된 144천이라는 신비한 숫자로 나타난다(7:4; 14:1,3).

또한 전 세계를 포함하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로서의 교회가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으로 나타나는데, 그 성벽의 기초가 12사도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21:14). 또한 열둘은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는 데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래에 열거한 숫자들은 계시록에서 사용된 다양한 숫자들이다. 이 가운데 완전수 7을 제외한 숫자 대부분이 짝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요한복음과 계시록에 나타난 숫자 사용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1) ½ (긴장된 한 순간): 반 시간(8:1). (일부분): 삼분의 일(8:7,8,10,11,12; 12:4). ¼(보다 적은 일부분): 사분의 일(6:8). 1 (절대수): 전능자(1:8).

(2) 2 (증인의 수, 19:15): 두 증인(11:3),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11:4), 두 선지자(11:10). (3) 3 (하늘의 수, 부활의 수, ‘더 이상은 없다는 뜻의 완전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4:8), 영광과 존귀와 감사(권능)(4:9;11), , , (8:13), 세 재앙인 불과 연기와 유황(9:18), 세 더러운 영인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16:13),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18:2), 구원과 영광과 능력(19:1).

(4) 3½(성도의 증거 및 환난의 기간, 완전수 7의 절반은 곧 짧은 기간을 상징, 7:25, 9:27, 12:7에서 유래): 사흘 반(11:9,11), 한 때 두 때 반 때(12:14). 42(3½, 11:2; 13:5). 1,260(, 12:6).

(5) 4 (세상의 수, 땅의 수, 동서남북 사방): 네 생물(4:6; 5:8; 14:3), 네 천사(7:1; 9:14,15), 네 모퉁이(7:1), 네 뿔(9:13), 네모난 성(21:16), “성령으로”(1:10; 4:2; 17;3; 21:10).

(6) 5 (제한된 재앙의 기간, 메뚜기의 생존기간): 다섯 달(9:5).

(7) 6 (부족의 수, 사탄의 수, 적그리스도의 수, 완전수인 7에서 1이 부족): 666(13:18).521) (8) 7 (완전수, 성수[347, 天+地=완전]): 계시록에서 60회 나타남.

(9) 8 (새로운 국면의 시작을 일주기로 볼 때 8은 다음 주기의 시작이 됨): 여덟째 왕(17:11).

(10) 10 (또 하나의 완전수[5 210], 게마트리아에서 5×252와 상호교환된다[, 오병이어]. 세상 군왕의 세력, 세상만수[6410]): 십 일(2:10), 열 뿔(12:3; 13:1; 17:3,7,12,16), 열 왕관(13:1). 열 왕(17:12).

(11) 12(3×412, 천지합수(天地合數), 완전수, 이스라엘의 수): 열두 별의 관(12:1), 열두 문(21:12,21), 열두 천사(21:12), 열두 지파(21:12), 열두 기초석(21:14), 열두 사도(21:14), 열두 이름(21:14), 열두 진주(21:21), 열두 가지 열매(22:2). 12,000스다디온(12×1,000, 성도들을 용납할 만한 넓이, 21:16). 144규빗(12×12, 성도들의 성의 크기, 21:17). 144,000(144×1,000, 구원받은 자의 수의 많음, 7:4; 14:1,3).

(12) 24(1212, 신국의 증인(2×1224): 24장로(4:4,10; 5:8; 19:4).

(13) 1,000(10×10×10, 세상에서의 오랜 기간): 천년(20:2,4,5,6,7).

(14) 1,600스다디온(4×4×100, 세상의 넓은 면적, 14:20).

(15) 만만이요 천천(다수, 5:11). 이만 만(이억, 2×10,000×10,000, 멸망 받을 자의 수(9:16).

3. 끝으로, 양서의 숫자의 차이와 관련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첫 절’(1:1; 1:1)에 대해 살펴보자. 모세오경의 히브리어 책명은 각각 그 책의 첫 절(1:1)에서 따왔다. 창세기는 베레쉬트’(“태초에”), 출애굽기는 쉐모트’(“이름들”), 레위기는 와이크라’(“불렀다”), 민수기는 베미드바르’(“광야에서”), 신명기는 핫데바림’(“말씀들”)이다. 아울러 공관복음서의 첫 절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1:1; 1:1).

특히 장르상 묵시문서에 속하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오경의 첫 절처럼, 첫 절에 자신들이 말하고자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놓았다. 요한복음의 첫 절은 17개의 헬라어 단어로 되어 있다(’ΕΝ ρχῇ ἦν λóγος καὶ ὁ λóγος ν πρς τν θóεν καθες ν λóγος). 이 구절에서 하나님에 해당하는 데오스(θες)’에 관사 호(ὁ)가 생략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여기의 무관사에 대해 로고스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그 로고스가 유일한 존재는 아님(아버지의 신성과는 구별된 단순히 신적인이라는 더 약한 의미)을 나타낸다는 주장이 있다. 또는 문법적 측면에서 보면 신약의 250개의 주격 술어 명사(predicative nominatives)에 관한 한 연구에서 동사 뒤에 올 때는 90퍼센트가 관사가 붙지만, 여기서처럼 동사 앞에 올 때는 87퍼센트에 달하는 경우에 관사가 붙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요한이 숫자 17십자가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간단한문제이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숫자 17(십자가 숫자)에 맞추기 위해 관사를 호(ὁ)를 생략한 것이다. 이는 키아즘 구조로 되어 있는 21:1이 또한 17개의 헬라어 단어로 되어 있음이 그 증거이다(μετταυτα φανέρωσεν αυτν πλιν ὁ ’ιησους τοις μαθηταις έπι της θαλσσης της τιβεριδος φανέρωσεν δοτως). 숫자 17은 의도를 가지고 쓰지 않는 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숫자이다. 요한복음에서 첫 장(1)과 끝 장(21)을 제외한 어디에도 첫 절이 17 단어로 된 장은 없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숫자 17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계시록은 첫 절이 28개의 단어로 되어 있다(Ἀποκάλυψις ησoυ ̑ χριστoυ ̑ ν δωκεν ατῷ ὁ θες δεξαι τoι ̑ς δολοις ατoυ ̑ δeι ̑ γενέσθαι ν τάχει, καὶ ἐσήμανεν ποστείλας διτoυ ̑γγέλου ατoυ ̑ τδολατoυ ̑ ωάννῃ), 여기서 숫자 28도 의도를 가지지 않으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숫자이다(요한복음에서는 숫자 28을 찾아볼 수 없다). “요한복음 이해의 열쇠가 숫자 17에 있다면, 요한계시록 이해의 열쇠는 숫자 28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먼저, 계시록 첫 절(1:1)에 나타난 숫자 28을 인수분해 하면 1414이고 7×4이다. 숫자 14다윗과 관계된 숫자로서 게마트리아에서 어떤 것을 두 번 거듭 사용하면 강조 용법이다. 다윗을 강조하는 남왕국 전승의 계시록(3:7; 5:5; 22:16)에서 다윗(14) + 다윗(14)새 다윗 예수 그리스도’(28)를 의미한다. 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어휘 중의 하나인 그리스도 예수에 사용된 “(죽임 당한) 어린양(ἀρνίον)”28회 나온다(1[땅에서 올라온 짐승 또는 거짓 선지자를 언급하는 13;11]를 제외한 28회가 모두 예수 칭호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숫자 28(7×4)은 완전수 7과 온 세상(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숫자(4)의 곱수로, 어린양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데 그 범위가 온 우주만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숫자 28은 일곱 영(7)4(1:4; 3:1; 4:5; 5:6) 나오는 것(7×4)을 비롯하여, 계시록의 본론(2-21)에 숫자 7(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4(교회, , 나팔, 대접), 중요한 어휘인 네(4) 집합명사(“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7(5:9; 7:9 10:11; 11:19; 13:7; 14:6; 17:15), 주님을 경배하는 ‘24장로와 4생물’(5:6,8; 19:4)의 합수(244)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요한복음 1:1에 나타난 숫자 17에 대해 살펴보자. 숫자 1에서 10까지 두 개의 완전수는 710이다. 이 두 숫자의 합수(7+10)17이고, 곱수(7×10)70이다(46:27; 24:9 ). 그런데 숫자 10은 구약(율법, 십계명)을 대표하는 숫자이고, 숫자 7은 신약(교회, 은혜)을 대표하는 숫자이다. 십자가의 두 축인 세로축과 가로축은 각각 구약(10)과 신약(7)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숫자로 표현하면 17이 된다.

숫자 17은 창세기에서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십자가의 비밀을 간직한 숫자이다. 가령 아브라함의 수명 175세는 인수분해하면 7×5×5로서, 이는 숫자 17(7+5+5)에 해당한다(게마트리아에서 곱하기와 더하기는 상호호환된다). 네 족장을 비롯한 모세와 다윗의 수명이 모두 숫자 17과 관계되어 있다(더 자세한 설명은 제32강인 숫자상징코드를 참조). 그리고 숫자 17은 제자도의 압권인 큰물고기 153(21:11)에서도 나타난다(153=17×3×3). 요한복음의 저자는 신약성경 저자 가운데 숫자 17을 십자가에 적용한 유일한 저자이다.

한편, 하나님이 인류 역사에 보여주신 최고의 암호상징은 구약의 다윗의 별’, 신약의 십자가이다. 그런데 십자가의 세로축은 다윗의 별의 삼각형(), 십자가의 가로축은 다윗의 별의 역삼각형()을 나타낸다면, 십자가는 곧 다윗의 별의 축약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성경 전체에 적용하면 첫 창조기사(1:1-2:3)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10(3,6,9,11,14,20,24,26,28,29) 나타나며, 7일간의 창조는 정확히 다윗의 별형상(1-4, 2-5, 3-6 그리고 중앙에 7)을 하고 있다. 첫 창조기사의 압축파일인 1:17단어(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다윗의 별’(7)에 대한 상징코드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로고스찬가(1:1-18)의 압축파일인 1:117단어로 되어 있는데, 이는 십자가’(17)에 대한 상징코드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창세기 1:1(태초에)다윗의 별을 성취한 것이 요한복음 1:1(태초에)에 나타난 십자가. 즉 성경 전체의 마지막 결론은 10(세로)7(가로)의 이중주인 십자가’(17)에 있다

숫자 17(‘십자가’)은 말씀(신구약성경)다 이루었다’(19:30)는 의미에서 모든 것의 완성적 의미()를 지닌다. 시작: “태초에 다윗의 별’(7)이 있었다”(1:1). : “태초에 십자가’(17)가 있었다”(1:1). 숫자 사용에 있어서 다윗’(14) 또는 다윗의 별’(7)을 강조하는 남왕국 전승의 계시록은 북왕국 전승의 요한복음이 사용한 숫자 17(십자가)에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은 성경 전체의 마지막 책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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