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기도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온 설교자

  • 입력 2020.11.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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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18)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설교자여, 청중을 하나님 면전에 세우라

목회자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인성도 중요하고 목회를 위한 실질적인자질들도 중요하지만 목회 전반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그루터기요 가늠자인 말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룬다. 말씀은 칼이지만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역으로 메신저를 휘두르는 칼이다. 메신저는 말씀을 유능하게 활용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말씀에 최적 상태로 활용되는 존재다. 말씀은 언어의 옷을 입는다. 설교자로서 말씀을 풀이할 때는 학자의 영이 충만해야 하고 진리를 선포할 때는 예언자의 영이 끓어올라야 하며 청중들의 삶을 위한 적용에서는 성령의 감동을 힘입어야 한다.

영적 요소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실제적인 요소들을 등한시해선 안 된다. 언어의 선택도 신중해야 하고 매번의 설교가 하나님의 메시지다워야 한다. 중언부언, 허장성세, 언어유희, 성령의 역사를 의지한다며 준비 없이 강단에 오르는 설교자는 성령을 모독하는 일이다. 절제된 시간 안에 영혼의 생사를 다루는 메신저답게 설교자는 해야 할 말을 담대히 전하고 청중들을 하나님의 면전에 세워야 한다. 그들이 말씀을 통해 보는 것은 인간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의 원천이신 하나님이어야 한다. 말이 어눌함은 후천적인 노력과 학습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보고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라! 실로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

말씀과 기도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온 설교자

설교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신학교에서의 교육은 기초를 다질 뿐 훈련은 평생에 걸쳐 진행된다. 누구든 ‘이제는 됐다’라고 느낄 여유가 없다. 수백, 수천 번 설교를 하는 가운데 얼마의 진보를 이룬다. 그런데 수십 년을 애써 왔음에도 여전히 어렵다는 느낌이 지속된다면 메신저로서의 자질을 넘어 소명 확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말씀과 기도의 기본 훈련을 통해 비범한 인격으로 변화시켜 탁월하게 사용하신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설교에 부담을 느끼고 자신감을 상실한다면 당신이 설교자로 부름 받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방식으로 훈련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기본 훈련은 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목사 안수증이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세상에서 공인된 과정에 불과하다. 실제 훈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본인이 배우고 익혀 터득하는 길뿐이다. 물론 그런 훈련 없이도 설교자의 명성을 쌓을 수 있다.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어 청중을 사로잡는 언변이나 언어 사용의 기술이 남다를 수 있다. 그렇게 울리고 웃길 수 있지만 그것이 설교의 알맹이는 아니다. 기본 훈련이지만 영적으로 혹독할 수밖에 없는 말씀과 기도의 가파른 고갯길을 지나지 않고서는 영혼을 얻는 설교자로선 부적합하다. 경건 서적과 주석 책을 많이 보는 것보다 성경 자체를 탐독해야 한다. 백독, 천독도 불사해야 한다. 샘을 자주 파고 깊숙이 파면 생수를 얻는다.

성경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눈을 키우라

성경을 알아가는 방법은 여럿 있다. 어느 방법이 좋은지는 개인의 성향이나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주제별로 접근할 수도 있고 각 책별로 다가갈 수도 있다. 혹은 교리별, 사건별, 내용별, 인물별로 깊숙이 들여다본다. 어떤 방도가 낫고 효율적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대상이 다르기에 방법마다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방식 이후에 다른 방식을 연이어 적용하거나 능력과 시간이 되면 동시에 두 방식을 겸용하면서 부족한 곳을 서로 보충하며 진행하면 통시적으로 성경에 익숙해질 수 있다. 인물별 성경공부를 예로 들겠다.

성경의 인물들에 정통하라! 그들의 가계와 관계와 개인적 습성과 그를 둘러싼 중요한 사건들을 내 몸의 한 부분으로 흡수시켜라! 한꺼번에 수십 명을 다루려 하지 말고 한두 사람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연구하라! 예를 들어 아모스와 호세아는 매우 대조적이다. 사역도 그렇고 메시지도 그렇고 삶도 그러하다. 이 둘을 선정했으면 우선 아모스서와 호세아서를 숙지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읽는다. 백 번쯤 읽으면 전체적인 내용이 눈을 감아도 망막에 떠오를 것이다. 내용이 떠오르면 장면도 상상으로 클로즈업된다. 묵상의 열매까지 얹으면 아모스와 호세아에 대한 기본 이해를 능히 익혔다 할 수 있다.

두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주석 한두 권을 선택해서 몇 번을 읽으며 메모한다. 단지 두 인물이지만 두 권의 책에 나오는 배경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 이스라엘에 비견되는 오늘의 인간 군상들, 죄와 공의의 문제, 반역과 불순종, 경고와 권면, 회심과 구원 등 여타 성경에 나타나는 중요한 이슈들에 접할 수 있다. 한두 달이면 이 작업의 기초 습득을 마칠 수 있다. 이 수준만 되어도 아모스와 호세아 이해능력 부문에서 당신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좀 더 채찍질을 가하면 머지않아 당신은 달인에 버금가는 상태에 이른다. 인물 중심으로 성경의 주요 인물들을 섭렵하는 방법은 재미있고 덜 지겹다.

내 안에 책이 있고 책 안에 내가 있는 ‘상호 임재’의 경험

사건 중심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주제 중심으로 성경을 꿰뚫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인적인 선호도와 능력에 따라 취사선택하면 된다. 능력이 되면 이 모든 방법들을 병행해서 성경 통달의 길을 닦는다. 유명한 학자들 중에는 성경의 한두 장 텍스트를 붙들고 평생 씨름하는 이들도 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그것을 자신의 필생 사역으로 알고 학자로서의 사명이라 여긴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쉽게 사역자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처절함과 치열한 정신이 없다. 그러면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하나님 앞은 고사하고 솔직히 자신에게조차 부끄러워서야 되겠는가?

성경에 실제로 통달함은 매우 실용적인 목표이다. 전체를 원만히 숙지하기 전이라도 부분적으로 깊숙이 접근하는 것은 멀리만 느껴지는 통달에 친숙해지기 위함이다. 한두 권 통달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철석같은 의지와 충분한 시간만 할애하면 된다. 선택된 책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며 반복해서 익히되 뼈에 새기고 마음에 인이 박히도록 몰입한다. 내 안에 책이 있고 책 안에 내가 있는 ‘상호 임재’ 경험이 성경 숙지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언젠가 그럴 만한 때를 기다리지 말고 오늘 당장 시도해보라! 평소 관심 있던 내용 중에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한 권씩 선정하되 이런 훈련 방식이 처음이라면 비교적 짧은 책을 택하라 권하고 싶다. 정리하고 노트해서 컴퓨터에 저장시키고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업데이트해가면 나중 최종 정리가 수월해지고 시간도 훨씬 단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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