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와 과부, 결핵환자와 나병환자의 벗 나애시덕 선교사

  • 입력 2021.10.07 19:54
  • 수정 2021.12.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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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35)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47)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나의 날은 베틀의 북(아레그)보다 빠르니(칼루) 소망(티크와) 없이 보내는구나”(7:6).

욥은 인생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다고 한다. 씨줄과 날줄을 짜는 베틀이 빠르게 오가며 천을 짜게 된다. 그렇게 인생의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베틀에 비유한다. 더욱이 신속히 가는 세월의 흐름에 있어서 소망이 없이 흘려보낸다고 고백한다. 이는 고난과 고통이 심한 상태를 이른다. 오늘날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된다. 팬데믹의 전염병 상태가 2년여 간, 경제적 심리적 공황 상태로 만들어 사람들이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희망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서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을까?

욥은 비극적 상황을 계속 고백한다. “내 생명이 한낱 바람(루아흐)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토브)을 보지 못하리이다”(7:7). 오늘은 행복, 축복을 보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재앙의 날들이 이제 너무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나를 본 자의 눈(에인)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8). 고난으로 이제 실존과 존재 자체가 없어질 형편에 놓였다고 욥은 비극적 상태를 말한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 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 구나”(7:3-4). 욥의 처절한 고통은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이며 밤새 뒤척이는 심리적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 전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욥기 7장은 6장과 더불어 엘리바스의 인과응보의 논리로 욥의 고통을 해석한다. 욥은 엘리바스의 주장에 변론을 하며 자신의 고통은 어떤 죄악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곧 자신은 의롭고 진실하다고 말한다. 욥은 자신의 고통을 바라보며 인생은 허무하다고 탄식한다(7:1-10). 또한 욥은 덧없는 인생을 하나님은 중요히 보시며 자신을 향해 계속 징계하시는가하고 물으며 비탄에 찬 질문을 한다(7:11-21). 결국 욥은 하나님을 향해 인생의 약점을 절규하는 중에 구원의 희망과 그 빛을 보게 된다. “아침마다 권징하시며(티프케데누)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티브하네누)”(18).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를 단련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의 탄식이 너무 커서 차라리 생명을 거두어 가시기를 탄원한다.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피쉐이)범죄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아오니)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쉬하르타니, 아침까지 나를 찾을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21).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욥기를 보며, 자신의 고난을 이해하고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생명의 길을 잘보고 그 생명을 전하며 살았던 분들이 선교사들이다.

에스더 레어드(Esther J Laird, 나애시덕, 1901-1968)25세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원주와 대전을 중심으로 40년간 선교를 하였던 사랑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원주 여자관을 설립하여 야학교, 소녀반, 부녀반 등에서 한글, 성경, 일본어, 수학, 음악, 지리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원예와 재봉, 노래 등을 가르쳤다. 그녀는 194011월에 일제에 의해 추방될 때 까지 사랑의 교육과 빈민구제, 요양원, 탁아소, 계몽운동, 청소년과 부녀자 교육 등 생활 계몽 사업을 벌였다. 그녀는 나비처럼 분주하게 사랑을 베풀었던 선교사였다. 그래서 원주 사람들이 사랑을 널리 베풀고 덕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의 나애시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에스더는 전쟁미망인을 위한 호의의 집’(굿윌 하우스)을 짓고, 나병환자의 자녀도 돌보고 불우학생을 위한 장학 사업도 하며 가족계획 상담과 업무 진행하였다. 그녀는 도탄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 따뜻한 예수 사랑을 전한 빛의 천사였다. 오늘 우리도 이 어려운 시절에 참 빛과 사랑의 밀알이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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