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박사】 토마스 선교사를 통한 한국 성결교단의 부흥

  • 입력 2022.02.1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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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51)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63)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미토라테카) 놀라운 것을(니프라오트) 보게 하소서”(119:18).

세상은 점점 더 아우성소리가 커지면서 난리다. 대선 정국과 맞물러 그 혼돈은 가중되리라 본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본질에 집중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 하나님의 세계를 보아야 할 것이다. 일일 전염병 확진자가 5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죽음의 그늘과 흑암의 세력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현실이다. 시편 119편은 알파벳 시편으로 말씀(토라)시편의 핵심을 이야기 하며 시편의 150편 세계의 중심을 말하고 있다. 세 번째, 네 번째 김멜과 달렛 글자의 세계를 통해 말씀의 세계를 말한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 떠돌이와 같은 인생과 영혼의 눌림과 그 심리적 압박 속에 살아가는 시인의 삶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요 즐거움이요 응답이라고 한다. 생명과 같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가져야 하리라

나에게 주의 법도(피쿠데이카)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하비네니, 이해하게)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베니프레오테이카) 작은 소리로 읊조리이다(아시하, 묵상하다)”(27). 이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며 읊조리는 것은 바로 중요한 생명의 말씀 흡입 작업이다. 세상과 권력, 갑질하는 사람들의 세력을 넘어서 은혜의 바다로 나가는 것은 바로 말씀을 암송하는 일이며 묵상하는 작업이다. “고관들도(사림)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니드바루) 주의 종은 주의 율례(베후케이카)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야시아흐)”(23). 말씀의 생활화가 이 어려운 전염병 시대의 파도를 넘는 길이다. 우리의 삶의 현실이 어렵고 힘든 과정이 계속된다고 할지라도, 또 비방과 멸시가 계속되고 영혼이 눌리고 수치를 당하는 현실일지라도 우리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힘을 받고 역경을 극복하고 주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주의 종을 후대하여(게몰) 살게 하소서(에헤예)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왜에스메라)”(17). “내가 성실한(에무나)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쉬위티)”(30). “주께서 내 마음(리비)을 넓히시면(타르히브)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아루츠)”(32). 이 종말론적 상황에서 우리가 믿고 나갈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는 삶이다. 마음의 근심과 걱정, 상황이 힘들게 할 때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할 것이다. “내 영혼(나프쉬)이 진토(레아파르)에 붙었사오니(다베카) 주의 말씀대로(키데바레카)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하예니)”(25).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다. 이를 잘 깨닫고 타문화권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한 분들이 바로 선교사였다.

존 토마스(John Thomas, 1868-1940) 선교사는 1919320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초대 감독이며 경성신학교(현 서울신대) 초대 교장이었다. 그는 강경성결교회 건축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방문하였다. 토마스 목사는 교회 근처 옥녀봉에서 만세 운동이 한창인 것을 목격하고 한국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내려와 강경교회 터를 측량하고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달려들어 무차별 구타하고 스물아홉 군데 골절상을 입게 하고 강제 투옥을 시킨다. 이 일로 영국과 일본이 외교 문제가 되어 영국의 승리로 일본이 존 토마스 선교사에게 당시 돈 5만 불의 보상금을 지불하게 된다. 이후 존 토마스 목사는 미국으로 가게 되도 보상금의 일부를 헌금하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어 1923년 봉헌하게 된다.

존 토마스 선교사 부부와 일제에 받은 배상금으로 1924년 설립된 동양선교회 강경예배당
존 토마스 선교사 부부와 일제에 받은 배상금으로 1924년 설립된 동양선교회 강경예배당

존 토마스 선교사는 미국 만국성결교회에서 한국성결교회로 파송하였다. 그는 교단장이자 선교사, 순회 전도사, 찬양사역자, 세계 전도자로서 복음전도자 사명을 감당했던 분이다. 그는 서울신대, 성결대, 나사렛대 및 한국의 성결교단 신학과 목회 사역, 선교의 초석을 놓은 분으로서 4중 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제창하고 성경적인 성결신학을 보여준 초기 선교사였다. 토마스가 191010월 초대 감독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도 얼마 동안은 이전의 성경 공부반 형식을 지속한다. 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가르치다가 무교정 전도관(현 무교동)에서 성서학원을 설립하고 초대원장이 되었다. 이 날이 1911313일이었으며 서울신대는 이 날을 경성성서학원의 공식적인 설립일로 기념한다. 이처럼 한 대학의 설립자로서 서서 성결교회와 대학을 시작한 공로자 되었고, 토마스 부인은 음악 교육, 부흥찬송 교육을 하며 학생들의 정서에 도움을 부며 시대를 일깨워갈 수 있게 하였다. 한국 교회의 복음의 영향력은 점점 확대되어 가게 하였다. 이처럼 복음의 붙잡힌 한 선교사로 인해 한반도는 거대한 복음의 황금 어장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존 토마스 선교사처럼 어둠속에 헤매는 영혼들에게 빛의 복음을 들고 가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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