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인텨뷰] 토론토 말씀의 교회 허천회 박사의 '신학과 목회'

  • 입력 2022.04.22 01:48
  • 수정 2025.04.0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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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영적 지도자 양성

허천회 박사(우), 최원영목사(좌)
허천회 박사(우), 최원영목사(좌)

토론토 말씀의 교회 허천회 목사가 6개월 안식년을 맞이하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허 목사는 루터 칼빈 웨슬리를 연구한 학자이며 이민교회를 개척하여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고 있다. 평생 책 읽기를 실천하며 3년마다 무게감 있는 저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본헤럴드 대표 최원영목사와 함께 더 감사운동 임승훈목사가 동행 취재했다.

허천회 목사, 토론토 말씀의 교회 담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토론토대학교 낙스신학대학(Th.M.Th.D) 동 대학 겸임교수, 웨슬리 신학 강의.  저서로는 [예수운동은 청년메시아 운동이다] ,[리더 리더], [리더수업],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 등
허천회 목사, 토론토 말씀의 교회 담임,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토론토대학교 낙스신학대학(Th.M.Th.D) 동 대학 겸임교수, 웨슬리 신학 강의.  저서로는 [예수운동은 청년메시아 운동이다] ,[리더 리더], [리더수업],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 등

Q1. 신학을 하게 된 동기


중학교 2학년 때 하나님을 강하게 만났다. 어렵고 힘들게 살던 시절이라 "목회자가 되어 힘들게 고학하는 학생들의 지지대가 되어 주는 리더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누군가의 지지대가 되려면 먼저 실력 있는 목사가 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어느새 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Q2. 서울신대 신학과 졸업 후 장신대 신대원에서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군목으로 입대하기 전 대학원을 진학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서울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했기에 대학원은 분위기가 다른 곳에서 하고 싶었다. 장신대에서 신대원 3년은 학문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배움의 시간이었다. 또한 좋은 인재들과 공부하는 기쁨이 매우 컸다. 신대원 동기 140명이 졸업을 했는데, 모든 졸업생이 전임 사역지를 가는데 교인 500명 이상 되는 교회로 이동했다. 그때만 해도 성결교회는 교세가 약한 편이었다. 이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Q3. 군목생활에 기억이 남는 것이 있다면


86년도 군 입대하여 전방에서 3년간 군목으로 복무를 했다. 군 선교는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고, 열정적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그 기간 동안 연대 교회를 1개 건축했고, 4개 교회를 수리했다. 영락교회에서 헌금을 지원 받아 교회를 건축하였다.

허천회목사와 아내 한계경목사
허천회목사와 아내 한혜경목사

Q4.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로 유학을 가게된 동기는, 학위  논문  주제는...


아내와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캐나다로 유학 가는 계기가 되었다. 아내는 캐나다 교포 1.5세 이다.

장신에서 폴 틸리히 인간론으로 논문을 썼다. 폴 틸리히를 공부하러 유학 갔는데, 폴 틸리히 전공 교수가 없어서, 늘 마음에 무거운 숙제로 남아 있었던 조직신학 분야의 기독론인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게 되었다. 아메리칸 문화가 예수를 문화적으로 독점하고 장악하는 것은 예수의 기독론에 해가 된다고 보았다.

장신대 이형기 교수는 루터와 칼빈 전문가이다. 전공자에게 루터와 칼빈을 배움으로 인해 신학의 지평이 넓어졌다. 이 교수는 너는 성결교회이니 웨슬리를 연구하라고 조언을 받았다. 학부에서 웨슬리에 대해 배운 것이 거의 없었다. 그때부터 웨슬리를 스스로 공부하면서 웨슬리 신학과 신앙의 위대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낙스 칼리지에 입학 서류를 제출할 때 장신대 졸업장으로 유학 갔다. 유학 가서 공부를 마쳤는데, 성결교회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토론토 대학에도 없고, 낙스 칼리지에도 없었다. 북미에서 성결교회는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내 마음에 성결교 신학교를 미주에 세워야겠다는 비전을 가졌다. 방법이 세 가지였다. 첫째는 땅을 구입해서 신학교 건립하는 것, 둘째는 기존 신학교를 구입하는 것, 셋째는 기존신학교에 들어가서 성결 신학을 세우는 것이다. 첫째와 두 번째 방법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낙스 칼리지(KNOX COLLEGE)에 상준 신학(Sangjoon Hall of Theology)을 설립하게 되었다. 졸업하면 토론토 대학 학위증을 받는다.

Q5. 목회하면서 학문을 병행했는데 힘들지 않았나


우리 부부는 공통점이 많다. 성결교회 부부 목사, 부부 박사, 토론토 대학 조직신학 부부 교수이다. 토론토 대학에서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학부 다닐 때 마음에 다짐한 것이 있다. 나는 박사학위 받은 후 목회하겠다는 결단과 목회하면서 동시에 신학교에서 강의하겠다는 꿈을 가졌다. 이 꿈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결정과 판단이 옳았다고 본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교회가 왜 망가졌는가?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현장에서 느낀 것이 있다. 바로 신학교와 교회의 분리이다. 신학교에서 목회를 모르는 교수가 목회후보생을 양성하고 있다.

이런 서구의 모습을 보면서 비전을 품은 것이 있다.신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신학교에서 풀타임 신학 교수를 세우면 과도한 재정 부담으로 인해 좋은 교육을 하기에 상당한 부담감이 있다. 신학교 교수는 교회에서 사례비 50%, 신학교에서 50% 월급을 준다면 재정적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학교 대부분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풀타임 교수 봉급을 지불하는데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이 처해있다. 어려움을 해결하는 차선책으로 타 학과를 설립한다. 돌려막기식의 방법은 곧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교수에게 주는 경비를 줄이는 것만이 방법이다. 강의한 만큼만 사례비만 주면 된다. 목회를 하면서 전문교수가 한과목만 가르치면 그 만큼 인재풀이 많아지고, 신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목회와 교수를 병행하는 인재를 활용한다면 길게 보면 기독교를 튼튼하게 세우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Q6. 본인에게 웨슬리는 어떤 존재인가?


성결교회 목사로서 성결교회를 모르기에 웨슬리 연구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요 자각(自覺)이라고 본다.

칼빈주의 특징은 칼빈에 갇혀 버렸고, 루터주의는 루터에게 갇혀 버렸다. 존 웨슬리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와 칼빈으로부터 200년 후에 태어난 사람이다. 루터와 칼빈이 가톨릭을 개혁했다면, 존 웨슬리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을 개혁한 사람이다. 또한 미국 신학의 뿌리이며 현대신학의 선구자이다.

웨슬리는 종교 신학을 극복하고, 현대신학을 연결했다. 성결인들이 웨슬리신학을 철저히 공부하면 장로교 신학을 뛰어 넘는다. 웨슬리 신학을 공부하면 현대신학이 쉬워진다. 유학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Q7. 내게 학문이 먼저인가? 목회가 우선인가?


저의 장점은 신학을 이야기하면서 목회를 말한다. 왜냐하면 학문과 목회를 병행하기 때문이다.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할 때 목회자들로부터 공감력이 있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한국교회 목사들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설교 의존도가 너무 높다. 한주에 적어도 5-10번의 설교를 한다. 많은 부분 부교역자들과 역할 분담으로 시간 확보를 하라.

둘째, 한국교회 목사들이 너무 많이 논다. "목회자들의 계속 교육이 절실하다. 전문서석 읽는 일을 멈추면 안된다.  지방회나 총회, 그리고 개인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일이다" 

셋째, 나는 공부하는 시간을 정한다. 저의 도서관은 길거리이다. 아무 곳에서나 앉을 자리만 있으면 공부한다. 오전에는 항상 공부한다, 하루 4시간씩 책 보는 것을 30년 지키고 있다.

군목 생활 중 5개 교회를 목회했다. 연대교회와 대대교회 5개 교회를 목회했다. 늘 목이 아팠다. 이렇게 뛰어다니다 보면 책을 한권도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 드렸다. “3년 동안 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책을 내겠습니다.”

군대 3년의 결과물로 나눔사에서 출판된 책이 《깊이와 넓이의 삶을 위하여》이다. 당시 철학책을 읽고 묵상하고 짧게 쓴 에세이다. 군목생활하면서 감사하게도 철학사를 다 읽었다. 칼 막스 전집 20권을 독파했다. 3년이 학문의 터전을 만들고 사상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현역 군인으로 첫 번째 책을 출판한 후, 3년에 한 번씩 책을 30년간 출판을 이어오고 있다.

Q8.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면,

회를 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가치는 무엇인가?


첫째는 이민목회가 좋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고, 목회자가 대접을 받기 보다는 할 일이 많아서 좋다.

이민교회 성도들은 어렵게 살면서 물질적으로 목회자를 돕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반면에 돈에 대해 정직하고 재정도 투명하니 오히려 부정이 있을 수 없으니 더 좋다. 

언론에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라면,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명예나 사익을 위해 엄청난 돈을 쓴다.  한국교회 목사들의 모습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이민교회를 하다 보니 한국교회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이민교회의 특징이 있다. 특권은 없고 의무만 있다. 그리고 돈에 대해서 깨끗하다. 한국교회가 이민교회의 목회를 배웠으면 좋겠다.

둘째는 한국에서 해외로 오시는 분들이 있어 이민목회가 혜택을 받는다. 또한 이민교회에서 잘 양육 받은 후 한국으로 오면 한국교회가 혜택을 받는다. 앞으로 성결교회는 더 많은 이민 교회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협력해야 한다. 이민목회는 복음 전도에도 좋고, 성결교회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협력은 매우 바람직하다.

셋째는 차영지 운동을 하고 있다. 차영지란 차세대 영적 지도자 운동을 말한다. 30년 전에 서양교회의 기형적인 모습을 보았다. 주일학교학생·청년도 없고, 오직 노인만 있다. 그래서 차영지 운동을 해왔다.

개척한지 19년 만에 20억 상당의 성전 부지를 구입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앞으로도 넘어야할 산이 많지만 순종할 것이다. 그리고  차영지 센터를 구입한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다. 

Q9. 자녀 목회는 잘했는가?


아들 둘이 있다. 믿음과 은혜로 잘 자라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큰 아들은 영어권 2세 목회이다. 중고등부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고, 낙스 칼리지를 수석 졸업했다. 둘째는 변호사이다. 약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으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있다.


Q10. 가장 좋아하는 말씀과 찬송가는


로마서 828절 말씀을 일생동안 마음에 새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늘 긍정적으로 산다. 나의 실수와 연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하나님이 긍휼이 여겨주셔서 감사함으로 산다.

나의 삶에 힘을 주는 메시지와 같은 찬송가가 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384)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445)이다. 이민목회 쉽지 않다. 힘들 때마다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는 찬송가이다.

 

Q11. 가장 좋아하는 인물과 책을 소개한다면,

본인의 인생에 신앙적인 멘토와 학문적 멘토가 있다면.


신학자 폴 요하네스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1886.8.20.~1965.10.22)는 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이다. 모든 신학생이 틸리히의 두 권의 책을 이해해야 만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사 강의록을 묶은 기독교 사상사(The Christian Throught)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를 반드시 신학생들은 읽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지금도 강의하고 있다. 틸리히마저 기독교 초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을 총망라하여 강의하는 과정에서 웨슬리가 빠져있다. 그래서 이번 강의에서 두 주 동안 웨슬리를 넣어 강의한다.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0.15.~1900.8.25)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0.15.~1900.8.25)

신학적인 통찰과 영감을 받은 인물은 문헌학자이며 철학자인 니체와 칼 막스를 통해서이다. 이들은 신학자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봤다. 신학이 못한 일을 한 사람이다.

신학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금욕과 절제"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결국 사람을 떠나는 수도원적인 영성을 가장 고귀한 신앙처럼 강조하게 된 것이 기독교의 오류중 하나이다.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이며 동시에 사람들 가운데서 이해되고 발전해야 한다

니체나 칼 막스는 세상 한복판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외치려고 했다.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5.5~1883.3.14), 대표저서: 자본론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5.5~1883.3.14), 대표저서: 자본론

저에게 영적 멘토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무명의 교회를 담임하다 은퇴하신 분들이다. 유명해지는 것보다 끝까지 잘 마무리하는 분들을 존경한다.

말씀의 교회
말씀의 교회

Q12. 안식년을 맞아 서울신대에서 강의한다고 들었다.

어떤 과목을 강의하는가? 모교의 커리큘럼을 살펴보았는지.


아내 한혜경 박사 몰트만의 영성과 신학을 한 학기 강의한다. 저는 철학과 신학의 만남을 강의하고 있다.

첫째, 서울신대는 웨슬리 신학을 더욱 적극적으로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를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웨슬리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웨슬리 신학과 사중복음 사이에 균형이 깨졌다. 성결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이 사중복음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사중 복음의 뿌리가 되는 웨슬리 신학에 대한 이해 없이 사중복음을 이해할 수 있나? 둘째, 우리의 신학적 정체성을 사중복음에 둠으로써 신학적 지식과 사고가 너무 좁게 제한되는 것을 정말 원하는가? 

4중 복음을 신학적인 정체성이라고 보는 목회자가 많다. 목회자는 신학을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나도 사중복음을 존중한다. 둘 중에 하나가 아니라 둘 다 공부를 해야 한다. 서울신대의 과목과 성결교 목회자들이 웨슬리신학의 정체성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둘째, 목회가 신학과 거리가 멀다. 신학교는 신학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우선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분들이 신학교에서 목회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회는 신학교를 다니면서 교회봉사하며 배우는 것이다. 결혼식, 장례식, 심방은 목회현장에서 배우는 것이다. 신학은 정확하게 배워야한다

신학생들이 목회를 배우는 것은 교회 현장이다. 교회 봉사를 의무화해야 한다. 교회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것이 안 되면 한국교회 강단은 심각한 균열이 생길 것이다.

신학은 신학교, 목회는 교회에서 가르쳐야 한다.

낙스 칼리지
낙스 칼리지

Q13. 서울신학대학교 총동문 대회 강사로 선정되었는데,

어떤 주제로 강의를 준비했는가?


첫째, 한국 성결교회를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성결교회사>를 한국어에서 영어로 아내 한혜경 박사와 함께 번역했는데, 그것이 영어로 출판된 최초의 한국 성결교회사이다.

둘째, 북미의 성결교회에서 성장한 영어권 자녀들이 갈 수 있는 성결교단 신학 대학원이 없다. 낙스 신학교 커리 과정에 상준신학을 넣었다. 10년이 넘었고, 졸업생 10명 이상이 졸업했다. 상준신학교는 필수과목으로 웨슬리 신학, 성결교회사, 성결교회헌법을 낙스 칼리지에서 가르치고 있다. 낙스 칼리지는 세계 30위권 신학교이다. 학생들에게 성결교회를 알리고 있다. 학생들이 낙스 칼리지에 유학 오면 엄청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Q14. 앞으로 하고 싶은 사역이 있다면


목회자요 신학자로서 일생동안 책을 가까이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나는 목회자들이 계속 공부하기를 원한다. 은퇴 후에 성결인들에게 교단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제가 쓴 웨슬리의 생애와 목회를 목회자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또한 재정적 과소비 신학교는 시장에서 퇴출된다. 새 시대를 선도하는 신학교 설립이다. 셋째는 차영지 운동이다. 차세대 영적 지도자 양육은 기독교의 미래를 창조하는 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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