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하시드)를 택하신 줄(히페라) 너희가 알지어다(우드우) 내가 그를 부를 때에(베카르이)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위스마)”(시 4:3).
이 세상은 아우성 소리로 난리이다. 힌남노 태풍이 그 자연의 위력을 조금 맛보게 하고 제주도와 포항을 지나 사라지면서 공포의 순간을 느끼다가 잔잔해졌다. 하지만 울산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 사건 등 그 피해가 만만치않다. 다시금 인간의 무력함을 절감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되었다. “내가 평안히(베샬롬) 눕고 자기도(에쉬케바 웨이샨) 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라베타흐 토쉬베니) 오직(레바다드) 여호와이시니이다”(시 4:8). 우리의 탄식 속에서 오직 바라며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분은 주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탄식의 한복판에서 주님을 신뢰하는 시편 기자(시 4편, 5편)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팬데믹 상황에서 부르짖는 중에 주님을 바라봐야 함을 알게 된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베치드콰테카) 나를 인도하시고(네헤니) 주의 길을 내 목전에(레파나이) 곧게 하소서(하예샤르)”(시 5:8).
인간의 삶은 자기 혼자서만 살 수 없는 형편이기에 우리는 사는 날 동안 직장과 공동체의 삶 속에 어울려 살게 된다. 이 사회생활 속에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찾게 된다. “의의 제사를(지브헤 체데크) 드리고(지브후)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우비트후)”(시 4:5).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콜 호세 바크)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레오람 예라네누)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오하베 쉐메카)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웨야에레추 베카)”(시 5:11). 우리는 대적자와 원수, 행악자, 악인들의 무리들 속에서 탄식하며 주께 부르짖고 있는 상태이다. “너희는 떨며(리게주) 범죄하지 말지어다(웨알 테헤타우) 자리에 누워(알 미쉬카베켐) 심중에 말하고(비레바브켐) 잠잠할지어다(웨도무, 셀라)”(시 4:4). “오만한 자들이(홀르림)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로 이트야췌부) 주는 모든 행악자를(콜 포아레 아웬) 미워하시며(샤네타) 거짓말하는 자들을(도베레 카자브) 멸망시키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이쉬 다밈)와 속이는 자(미르마)를 싫어하시나이다(예타에브)”(시 5:5, 6).
이러한 대적자의 문제나 자연의 재앙으로 공동체가 위협을 받을 때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불평한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엘로헤 치드키) 내가 부를 때에(베카르이) 응답하소서(아네니) 곤란 중에(바차르)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히르하베타 리 하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우세마 테필라티)”(시 4:1). “인생들아(베네 이쉬) 어느 때까지(아드 메) 나의 영광을(케보디) 바꾸어 욕되게 하며(리케리마) 헛된 일을 좋아하고(테에하분 리크) 거짓을(카자브) 구하려는가(셀라)”(시 4:2). 개인의 탄식에서 공동체의 탄식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시편 4-5편)을 보게 된다. 이 시편에서 우리는 탄식의 상황을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 바로 기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말키 웨로하이) 내가 부르짖는 소리(샤웨이)를 들으소서(하크쉬바)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키 엘레카 에트팔랄) 여호와여 아침에(보케르)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티쉬마 콜리)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보케르 에에라크 레카 와아차페)”(시 5:2-3). 결국 시인은 참회하며 주님께 나아가서 예배하게 되고 감사하고 찬양하게 된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와아니 베로브 하세데카)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아보 베테카)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에쉬타하웨 엘 헤칼 콰드쉐카) 예배하리이다(베이르아테카)”(시 5:7).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테바레크 차디크) 방패로 함같이(카치나)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라촌 타에테레누)”(시 5:12).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J) 선교사는 1872년 선교사로 먼저 파송 받는다. 이는 그 후에 존 로스가 오게 되는데,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가 1862년 중국 선교를 시작할 때에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윌리엄슨(1871년)이 산둥반도를 선교지로 삼고 선교한 것이 시발(始發)이 되었다. 매킨타이어는 존로스와 더불어 만우창에서 이응찬과 더불어 성서 번역을 하여 누가복음을 출간한 것이 첫 성서의 효시가 되었다. 매킨타이어는 존 로스와 매부 관계로 선교 동역자였다. 그는 로스를 도와 <예수성교전서>를 발간하게 된다. 이 성경은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서상륜, 이성하, 이익세 등이 번역에 참여하여 1887년 만주 성경(현재 심양)의 문광서원에 발행한 한글 신약전서이다.
매킨타이어는 존 로스가 안식년으로 영국으로 돌아간 사이에 네 차례 원어 성서와 대조해 가면서 번역을 수정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신약성서>가 완역되었을 때에 로스는 영국 성서 공회와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이를 발행하게 된다. 이 책은 한글 연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외국 선교사들의 한글 공부에 크게 기여하였다. 매킨타이어는 만주 영구에서 1879년 3월과 4월에 백홍준, 이응찬에게 각각 세례를 준다. 이것이 개신교 최초의 세례였다. 1881년 9월 심양에서 로스 선교사는 인쇄소를 차리고, 1882년에 매킨타이어,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과 함께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각각 낱권으로 출판한다. 매킨타이어 선교사는 서상륜이 장사꾼으로 1878년 열병에 걸려 죽게 되어 병원에 입원한다. 이 때 그는 병상 전도를 하게 된다. 이 때에 서상륜이 병이 나으면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하여 병이 낫자 존 로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게 되고 성경 번역을 하게 된다. 그 후에 번역 성경을 동생 서상우와 친척들에게 전했고 은혜를 받고 소래 교회를 세우게 된다. 이 교회가 한국 최초의 교회가 된 것이다. 이처럼 복음은 전도자를 통해 전해지는 것을 본다. 오늘도 우리는 복음 전도자가 되어 매킨타이어와 같이 빛의 전령이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