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교회가 위기인가? 그것은 단순히 교인 숫자가 적어지고 있는 환경적인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 안에서 성경을 배우는 일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나 위기는 말씀이 사라지는데서 시작된다. 각 교회마다 한때는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한국 교회는 주일 하루 예배드리고 설교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각 교회도 설교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설교로 겨우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를 살릴 수 없다. 예수를 알고 깨닫는 차원은 설교로 만족한다. 그것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하지만 늘 불안하다. 성경공부가 활성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성경공부가 지루하고 문자에 매달리는 지식형 공부에 머문 것이 성경 공부를 싫어하게 한 큰 요인이다. 그중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 우리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보면 대부분 문자와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하나님이 제시한 성경적인 방법을 적용하기보다는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함께 나누는 방식을 나누고 있다. 성경공부나 일반 학교 공부나 서로 다를 바가 없다, 성경을 공부하는 방식과 세상 공부하는 방식은 차별이 있다. 성경은 성경적인 방식이 있다. 그것을 사용해야 효과가 있는데 세상의 방식으로 성경을 공부하다 보니 성경의 맛을 보지 못하고 그만두는 상황이 생겼다.
왜 교회 속에 이런 방식의 성경공부가 익숙할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세상에서 사용하는 헬레니즘 철학 공부 방식을 성경공부에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나누고 삭제하고 분리하고 다시 조합하고 정리하고 요약하고 조직하면서 다양하게 성경을 구분하여 인간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정리한 것이기에 성경공부가 처음에는 쉽게 접근이 용이하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 자체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고 내가 다시 성경을 조합하는 생명을 죽이는 인본주의 방식이다. 늘 보는 성경구절만 보고 인간의 중심으로 성경을 보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나중에는 성경이 하나의 도구가 되고 가르치는 교재나 기술로서 전락하기 쉽다. 그리고 일반 책과 크게 차이가 없다. 이러다 보니 구라파에서는 성경이 일반 책과 같은 교양서요 상대적인 책으로 권위가 없다. 절대적인 책이 아닌 필요에 따라 구매하는 지식 용품처럼 성경이 인간의 필요를 채워주는 정도의 책으로 인식되면서 결국은 성경공부가 점차 사라지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경공부 방식은 대부분 이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제별로 , 교리별로. 개관 별로. 진행되는 성경공부와 제자 훈련용 교재들은 거의 헬레니즘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성경교재를 통하여 혹은 가르침과 훈련을 통하여 성경의 내용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배운다. 탁월한 가르침을 배우고 깨달음도 얻어 은혜를 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까지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각 개인으로 맡긴다. 그러다 보니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이 지식과 깨달음을 얻는 정도에 머물고 만다. 성경공부를 하지만 삶의 변화가 힘든 것은 바로 이런 근본적인 구조의 문제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간을 정하여 자기를 훈련하면 변화될 수 있다고 여기면서 말씀 자체보다 과정 이수에, 아니면 졸업장과 경험을 쌓는 것에 목표를 두다 보니 삶의 변화는 점차 멀어진다.
이것은 신학교 교육에서부터 헬레니즘 방식이 적용되기에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같은 방식이 교회 속에서 이어지다 보니 삶의 변화가 힘들게 된다. 대부분 이렇게 성경공부를 하다 보니 지속하지 못하고 과정 이수정 도로 공부하는 수준이 되고 만다. 이런 공부는 오래 할수록 지식형 신자를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런 폐단으로 인해 성경공부가 교회 속에 활성화되지 못하고 점차 사라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것은 모두 헬레니즘 방식을 따른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방식의 한계에서 오는 현상이다.
헬레니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성경공부를 처음부터 평생 하려는 생각이 거의 없다. 마치 운전면허증처럼 단기간에 마스터하거나 속성 코스로 배우는 성경공부에 관심이 있지 죽는 순간까지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예 관심이 없다. 매일 밥을 먹듯이 평생 동안 성경을 배우고 삶에 적용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 아닌 지식을 얻고 그것을 사용하는 형태를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10년 이상 공부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성경을 공부한다. 또 성경 자체보다는 성경을 가지고 목적을 이루는 마음자세가 전제되고 있다. 신앙 방식이 헬레니즘에 익숙하기에 성경공부도 이런 방식을 자연스럽게 취한다. 그리고 빨리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미 인본주의 방식이 몸에 밴 상황에서 이런 현상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이렇게 성경을 공부한 유럽교회는 지금 성경공부가 거의 사라졌고 흥미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 한국교회도 이런 흐름 속에 그 뒤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 성경공부 갱신은 필요하고 하루빨리 방식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미래 한국교회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다음 세대가 성경을 모르면 교회는 무너지고 신앙은 한순간에 추락하게 된다, 대부분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나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은 이런 구조적인 방식의 문제에 큰 관심이 없다. 이런 사람은 잘 정리된 책에 눈길을 주거나 화려하게 만들어진 교재와 잘 가르치는 교사에 의해 성경공부가 좌우된다. 하지만 거기에 함정이 있는 줄 대부분 눈치 채지 못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미리 토크 성경공부 설루션은 필자가 30년 넘게 교회 현장에서 성경을 가르쳐본 경험과 성경연구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체험과 자료들. 그리고 300여 권 성경공부 교재와 관련 책들을 펴내면서 종합적으로 정리된 것이다. 수많은 실패와 성공적인 실험을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정리된 내용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방식을 따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을 넘어서야 성경 한국, 성경교회가 될 수 있다.
필자는 그동안 성경공부 사역을 30년 동안 해오면서 요즈음처럼 마음이 답답한 적이 없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육적인 힘이 예전 갖지 않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동안의 일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공부와 펴낸 성경공부 교재에 호응하면서 열심을 내었던 지난 30년의 시간이 있었다. 필자로서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성경공부가 거의 사리지는 위기를 느끼면서 미래의 한국교회가 많이 걱정이 되지만 작은 힘으로는 어떻게 더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그저 기도 할 뿐이다.
이제는 이런 교회의 성경공부 취약성과 부재를 알고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 등이 성경을 가지고 성경공부로 당당하게 교회를 다가서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특히 다음 세대와 젊은이들이 성경을 모르는 현실은 더 슬프게 한다. 직장에서 동료들을 보아도 믿는 청년들이 30명에 1-2명도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나름대로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보지만 작은 저의 힘으로는 여의치 않다. 바울이 골육인 유대인의 구원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여 견디기 어려운 그런 심정과도 같다. 아마 이것은 평생 성경공부 사역을 해온 필자에게는 특별히 더 느끼는 현상일 수 있다.
하나님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슬프고 아련하다. 최근 통계를 보면 그동안 경쟁력이 있다고 했던 장로회 신학대학원도 신학생 지원율이 1.3대로 떨어져 곧 미달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경고등이 깜박거리고 있는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에베소 교회처럼 첫사랑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한국교회가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그 위기를 자초한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서 그것을 고처야 회복이 가능하다. 고장 난 원인 지점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것만 고치다가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병의 진단이 중요합니다. 한국교회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바른 진단이 필요하다. 정밀한 진단 없는 그럴싸한 처방은 오히려 더 악화를 가져온다. 본질에 다가설수록 해결은 보인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방안들을 찾아서 세미나를 통하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일시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유행처럼 사라지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부흥을 위해 인간이 고안한 2.3차 자료이기에 본질적인 힘이 약하다. 본질보다는 형태와 방법에 사람들이 모이고 그것을 실천하기에 동기부여는 가능할지라도 그것으로 승부를 걸고 목숨을 거는 제자가 나오기는 어렵다. 왜 그럴까? 그것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은 그 자체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과 표적과 일을 믿는 일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자체에 집중하고 그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듯이 지금 우리 교회도 누구도 손을 대거나 조작이 불가능한 원자료 자체를 살려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다.
지금은 부흥의 시기가 아닌 위기 상황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핵심에 들어가 거기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것은 성경에 관한 신학이나 프로그램이나 설명이 아닌 직접 성경을 만나고 그 속에서 능력을 체험하는 방향으로 한국교회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말씀이 역사하도록 이제는 우리의 시간을 드리는 일만 남았다. 순수한 말씀 자체를 성도들이 먹고 느끼고 경험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요 설교자인 스펄전의 말은 의미가 있다
“야산의 맹수, 사자는 변증이 필요 없다. 사자는 풀어놓으면 된다”
사자를 설명하지 말고 우리에서 사자를 풀어 다니게 하라 그러면 사자가 무엇인지 사자가 가장 잘 알려 줄 것이다. 성경 자체가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것을 살려내는 방안을 찾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주님이 마지막 제자들에게 부탁한 지상명령은 가서 모든 민족으로 주님이 분부한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켜 제자를 삼는 일이었다.(마 28: 19-20) 이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며 교회가 목숨을 걸어야 할 핵심 모토다. 이것을 최초 예루살렘 교회는 그대로 지켰다. 거기서 양육된 일곱 제자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성경에 소개된 스데반, 빌립. 바나바 등을 보면 모두 성경에 능통했다. 철저히 성경공부로 훈련된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구약성경을 완전히 소화한 사람들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시작된 교회 부흥은 오랫동안 성경공부로 철저히 무장된 한 사람 바울을 통하여 이방 지역인 소아시아와 유럽에 전파되면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다. 누가는 이때 일어난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을 이렇게 요약하여 정리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이처럼 지금까지 교회는 성경을 깊게 공부하면서 제자가 세워졌고 그 제자들을 통하여 교회 부흥이 일어났다. 이것은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적으로 보아도 변하지 않는 교훈이다. 역사적으로 영적 부흥이 일어났던 경우를 보면 모두가 그 시작점이 이런 소그룹으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일어났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그것을 스스로 적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하여 교회의 부흥과 갱신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 말씀에 열정을 가진 사람과 그룹에 의하여 교회 역사는 달라졌다. 그 기점은 성경이었고 성경을 스스로 공부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모임이었다. 기도운동은 언제나 말씀 운동 속에서 촉발된 것이지 기도 자체가 먼저로 나타나지 않았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소그룹 속에서 말씀의 소통하며 이루어지는 성경 공부모임이 교회 부흥의 핵심이었다. 가장 힘 있는 성경공부는 가공되지 않는 원자료인 성경을 그대로 믿고 성경 자체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다시 성경공부다. 이것을 얼마나 한국교회 속에 부흥하게 하는가에 따라 한국교회 미래가 있다. 설교로는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성경공부를 평생 공부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한다. 믿음에 굳게 서는 일은 바로 성경공부를 통해서 가능하다. 이일에 목숨을 거는 목회자와 교사들이. 부모들이 많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 성경공부에 대한 성경적 좋은 방법을 더 알고 싶거나 배우기를 원하는 분은 “미리토크 성경공부“(이대희 지음. 예즈덤)를 문의하세요
( 02-403-0196 예즈덤 성경교육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