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 목사】 육신의 밥, 쌀과 영혼의 밥, 말씀에 담긴 하나님 신비(2)

  • 입력 2024.07.23 15:55
  • 수정 2024.07.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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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밥은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다.

밥은 인간이 만들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늘의 비와 공기와 땅을 통하여 먹을 것이 만들어진다. 인간이 수고하지만 대부분은 하나님이 주신다. 우리는 늘 그것에 감사하면서 먹고 마셔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영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밥은 한 차원 높게 올라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하기 전에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셨다. 40일 동안 금식한 후에 받은 첫 번째 시험은 밥에 대한 시험이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사단의 유혹에 사람은 떡만 필요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산다고 말씀하셨다. 밥 속에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다. 육적인 물질이지만 그 속에는 영적인 의미도 담겨져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보이는 물질의 밥만 보면 이미 타락한 것이다. 하나님의 손길을 밥을 통해서 얻지 못하면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과 떡을 하나로 보고 살아야 함을 말한다. 말씀과 떡이 분리되는 것이 아닌 서로 하나로 된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다. 그 만나는 자체로 먹을 음식이지만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영적인 의미가 함께 포한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떡으로서 만나를 이해하고 불평했다. 만나는 광야에서만 주어진 것으로 음식과 말씀이 함께 포함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밥을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여 하늘 양식도 같이 섭취해야 함을 말한다. 밥과 말씀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찬을 제자들에게 베풀 때도 떡과 포도주를 자신의 몸과 피로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밥상에서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밥을 만나처럼 하늘로 내려온 것임을 고백하면서 식물을 먹어야 한다. 밥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면 그 밥상은 아주 의미가 있는 창조의 시간이다. 몸과 영이 하나로 연결되는 통합의 자리다.

밥상에서 말씀도 같이 먹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에서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5천 명의 사람들은 떡과 물고기만 보고 그것에만 만족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것을 광야에서 주신 것은 하늘 양식을 보여준 사건이다. 단순히 떡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이 곧 산 떡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떡으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것이 영생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주시는 영적 양식으로 믿었다. 오늘날 우리가 매일 밥상에 가족이 보여 밥상머리를 하는 것은 그 안에 담겨진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이 전제된 사건이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밥상의 의미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날마다 광야 식탁을 대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를 살고 있다. 이것을 가족이 고백하고 나누는 시간이 바로 밥상머리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그동안 이런 밥상의 영적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밥상을 육신의 음식을 먹는 것으로 의미를 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음식에 노예가 되고 배를 신으로 삼고 오히려 밥의 종이 되는 모습을 본다.

결국 신앙은 밥과 하나님의 싸움이다. 이것을 이분법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밥을 이해하면서 밥상머리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밥상은 인간적인 즐거움을 얻기 위해 모인 곳이 아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천국 잔치가 함께 포함된 곳이며 영원함을 사모하는 곳이다.

 

다섯째, 밥은 단순한 삶을 말한다.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이것이 밥의 정신이다. 인간에게 하루 양식만 담을 수 있는 위장을 주셨다. 하루 이상을 뱃속에 담지 못하게 창조하셨다. 신기하지 않는가? 밥을 욕심의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다. 하루에 세끼를 먹지만 한 공기 이상 못 먹는다. 이것은 먹는 밥으로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하게 작은 위장을 가졌다. 늘 하루 분량의 밥을 먹고 살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의 역심을 원천적으로 제거하셨다. 한번 위가 차면 어떤 것으로도 먹을 수 없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먹는 밥에 너무 인생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폭식을 하면 그 때부터 인간의 몸은 병들게 된다. 그것은 단순하게 살라는 것이다. 갖고 싶은 것도 위 크기를 넘어서지 못한다. 여기서 인생의 행복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자족하는 비결을 배운다.

 

여섯째, 밥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예수님은 밥을 통하여 자신이 산 떡이요 영생의 말씀인 것을 말씀하셨다. 밥은 복음을 드러내는데 아주 유익한 비유요 상징이다. 예수님은 밥을 통하여 복음의 베시지를 전하셨다. 특히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먹는 음식을 통하여 자신이 곧 피와 살이라고 말하면서 음식을 신비의 영역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교회는 모일 때 마다 식사를 나눈다. 그것은 거룩한 식사로 성도들의 한 몸 된 공동체를 이야기 한다. 밥은 예수님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게 한다.

밥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공동체를 경험하게 한다.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초대교회가 늘 행했던 모습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교회 속에 중요한 핵심이 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그분을 더 알아가는데 유익한 도구다.

 

초대교회는 식탁 공동체에서도

예수님을 기념했다.

 

일곱째, 밥은 말씀을 이해하는 좋은 비유다.

음식 먹기(, 고기, , )-영양

성경은 영혼의 음식이다. 성경을 보면 말씀을 음식(, 고기, , )에 비유를 한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를 가진 존재이기에 언제나 양식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육체는 떡이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말씀을 먹는다는 의미이다. 지식적으로 성경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따분하고 공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생명의 떡을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먹는다고 생각하면 성경 읽기가 달라질 것이다.

밥을 먹듯이 성경도 매일 먹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밥을 한 끼라도 먹지 않으면 당장 어떻게 되는 줄 생각하고 불안해한다. 만약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하면 쇠약해지고 오래가면 죽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밥 먹는 일을 하루 중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가끔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시내에서 점심 식사를 할 때가 있다. 점심 시간이 12시에서 1시 사이인데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 되면 거리로 우르르 밀려 나온다. 어떤 식당에는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사람들이 밀려 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맛있는 식당에 모여드는가? 점심 한때를 위해서이다. 한 끼라도 안 먹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생각에서 점심은 어김없이 찾아 먹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우리는 영혼의 밥을 그렇게 매끼 챙겨 먹는가? 그렇지 못하다.

성경을 읽는 일은 곧 영혼의 밥을 매식하는 일이다. 영혼의 밥을 먹는 매일 성경 읽기를 한번 거른다고 해서 부담이 되는가? 꼭 챙겨 먹는가? 그렇지 못하다. 한 달 동안 성경을 먹지 않아도 영혼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배고픔도 없다. 왜 그럴까? 영혼이 죽어 있는 상태거나 잠자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하루도 성경 말씀을 듣거나 보지 않으면 못 배기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 것은 영혼의 감각이 죽어서 그렇다. 죽은 사람은 배고프지 않는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배고프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살아 있는 사람은 성경을 먹고 싶어진다.

배를 채워야 힘이 나듯이

말씀을 채운 속사람이 살아 난다.

성경통독이라는 말도 책을 읽는 의미의 뉘앙스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읽는 것이 부담스럽고 공부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성경통독을 성경을 통째로 먹기라고 명명하면 어떨까? 책을 읽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처럼 성경을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것처럼 생각한다. 성경 읽기가 필수적인 것이기 보다는 선택사항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성경을 영혼의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서이다. 사람에게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문제다 . 먹는 것이 없으면 당장 굶어 죽게 된다. 먹는 것은 사람에게 필수적인 일이다. 그래서 그 시간을 하루 중에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삼는다. 성경을 읽을 때 이처럼 영혼의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성경 읽는 것이 결코 선택사항이 될 수 없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밥을 거르는 것과 같다. 밥을 안 먹으면 몸이 쇠약해지듯이 성경을 읽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아주 연약해진다. 영혼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닌 말씀을 살아간다. 성경을 지속적으로 읽는 사람은 믿음에 시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을 멀리하면 우리의 영혼은 어느 날 외부에서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한 순간에 온 몸으로 퍼져 병이 들게 된다. 신앙 생활하다가 시험 드는 경우가 이와 같다. 평소에 건강한 몸을 가꾸면 여간한 바이러스도 능히 퇴치할 수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영혼의 상태가 건강하면 주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다.

음식은 여러 종류가 있다.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한 것이 있다. 죽은 어린아이에게, 부드러운 것은 연약한 사람에게, 단단한 것은 건강한 사람에게 필요하다. 자기의 상황에 따라 먹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도 초신자와 믿음이 있는 사람과 차이가 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성경의 이해도가 달라진다. 억지로 성경을 풀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읽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부터라도 성경이 재미있으려면 성경을 밥을 먹고 고기를 먹고 꿀을 먹고 젖을 먹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원한 음식이며 신령한 음식이다. 육신의 음식을 먹는 것 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좋은 잔칫상에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우리는 즐겨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성경 읽는 시간이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없을까?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벧전2:2)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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