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대희 목사,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모든 성경 (tota scriptura)’이다

  • 입력 2024.11.1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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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7주년 기념 인터뷰 (1)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모든 성경 (tota scriptura)이다

들어가면서

한국교회를 말씀으로 새롭게 세우는 일을 위해 2024년 6월부터 시작한 예즈덤 말씀사경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을 이루었던 한국교회 선교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한국교회를 세우는 기초로 제시한 사경회를 다시 이어 한국교회의 부흥을 소망하는 말씀공동체 모임입니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오후 2시에서 5시30분까지 과천소망교회 로고스홀(담임: 장현승 목사}에서 진행됩니다.

이 말씀 모임은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와 과천소망교회가 공동주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5회째는 종교개혁 507주년 기념하여 신학자 김동수 교수(평택대) 홍순원 교수(협성대)와 목회자 장승익 목사(예수마을교회 함께하는 담임). 장현승 목사(과천소망교회 담임)과 이대희 목사(에즈덤성경교육연구소)가 함께 했습니다.

본헤럴드는 예즈덤말씀사경회를 진행하고 있는 이대희 목사(예즈덤말씀성경교육연구소 소장)를 만나 종교개혁 507주년을 보내며 다시 종교개혁을 생각한다면 무엇을 갱신해야 할까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매 주 마지막 주 금요일 과천소망교회에서 열리는 말씀사경회 장면
매 주 마지막 주 금요일 과천소망교회에서 열리는 말씀사경회 장면

 

윤홍식 목사:

목사님. 안녕하세요.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면서 그 해결 방안을 다양하게 제시합니다.

목사님이 생각하는 한국교회를 갱신하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일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이대희 목사:

개혁교회가 모토로 삼고 있는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은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모두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이 ”오직“이란 말입니다. 절대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것은 신앙생활 원리를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오직( sola)’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tota)’ 신앙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오직’은 자칫 오해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직 의미 하나로는 실천까지 나가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오직’ 이란 이름으로 자기만 옳다고 고집하며 교파가 무수히 많아지고 이단과 사이비가 계속 나타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두 ‘오직’이란 이름으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교회가 분열하고 자기주장과 교리가 우선이라고 여기며 다툼과 분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한결 같이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고집하며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 사역을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오직’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일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오직이라는 의미를 다시 정리해야 그동안 ‘오직’ 의 이름으로 자기주장의 보증을 서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직'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기합리화

 

윤홍식 목사:

생각해 보니 그런 문제가 있었네요. 오직이라는 구호가 잘못된 신앙을 강조하는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오직은 ‘절대성’인데 이것은 자기만족을 보증하는 상대성으로 악용한다는 말씀이네요. 생각해 보니 심각한 문제네요. 왜 그동안 우리는 그 의미를 제시하지 못했을까요. 모든(토타)란 말은 생소하게 느껴지거든요 일종의 숨은 함정이 들어 있다는 말이군요.

 

이대희 목사:

맞아요. 우리 대부분의 교회는 오직을 강조합니다. ‘오직 성경’을 말하면 정도를 가는 것으로 생각하죠, 그런데 오직이라는 말을 내가 주장하는 것이 ‘오직 성경’이라고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오직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닌데 실제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직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이단이나 사이비가 더 사용하는 말입니다. 신천지 같은 경우에 요한계시록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말하면서 요한계시록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직 성경’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과 교회를 미혹합니다. 절대성을 상대화 시키는 아이러니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신천지의 이런 주장이 성도에게 용납이되느냐 하면 신천지가 말하는 절대를 상대화 하는 경향이 많이 있기에 쉽게 그것에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을 이기려면 ‘오직 성경’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교회가 정확하게 알고 정리해야 합니다. 이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단 사이비뿐만 아니라 교단 분열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윤홍식 목사:

아... 이것은 매우 중요한 내용인데 제가 생각하기에 대부분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회가 ‘모든(토타)’를 잘 인식하지 못 하기에 그렇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이것의 성경적인 근거를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대희 목사:

제가 대부분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산다고 하셨나요?” 마태복음 4장 4절의 내용을 물어 보면 한결같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삽니다”라고 답합니다.

 

윤홍식 목사:

제가 보아도 맞는 대답인 것 같은데요 그 외 다른 구절이 있나요?

 

이대희 목사

있지요, 그것이 무엇이냐고 말하면 답을 잘 못합니다. 제가 성경구절을 세 개를 소개하죠. 신명기 28장 1절, 딤후3:16절과 마태복음 28:20을 보면 그 답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성경을 찾아 읽고 답을 해보세요.

 

윤홍식 목사:

그게 뭘까요? 힌트를 주세요.

 

이대희 목사:

모두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입니다. 모두 우리가 잘 알고 암송하는 구절입니다. 제가 많은 분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 보면 거의 답을 못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공통적인 단어를 찾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성경 읽기가 늘 보고 싶은 구절과 단어만 보지 다른 것은 스쳐 지나가죠. 그러나 보니 수식어나 접속사와 시제 등에는 관심이 없고 보아도 잘 안보입니다. 이것은 평소의 성경 읽는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전체로 읽기 다 내가보고 싶은 것만 읽는 습성이 우리에게 만연되어 있습니다.

긍금하죠? 그 답은 ‘모든’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마태복음 4장 4절 이후에 나오는 예수님의 두 번째 시험을 보면 아주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윤홍식 목사:

종교개혁 507주년을 지나며, 우리 시대 다시 종교개혁을 생각한다면 무엇을 갱신해야 할까요?

 

이대희 목사: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은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모두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이 ‘오직’이란 말입니다. 절대성을 강조한 것을 신앙생활 원리를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오직’은 자기의 주장이나 신념을 굳히는 도구가 되는 등 자칫 오해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종교개혁 507주년을 맞이하면서 ‘오직’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실천까지 나아갈 때 ‘오직’ 이 오늘 새롭게 됩니다. ‘오직’의 더 깊은 본질은 무엇일까? 이것을 찾아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이 종교개혁을 다시 개혁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왜냐하면 ‘오직’으로 달려온 유럽의 개신 교회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을 다시 묵상하여 보완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 문제점이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는 헬레니즘의 상대주의와 인본주의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이것에 미혹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선택해서 대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구절과 성경을 택하는 신앙 방식이 결국은 교회를 위기에 처하게 하고 유럽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미혹의 영입니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창세기 3장에 뱀이 인간을 미혹한데서 시작됩니다.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말씀을 부분적으로 선택하거나 더하고 빼는 죄를 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유럽의 헬레니즘 영향이 교회에도 미쳐 결국 인본주의로 가는 모습은 헬레니즘을 닮았습니다. 지식에 머문 기독교 신앙은 헬레니즘에 영향을 받아 인본주의신앙이 되었습니다.

 

윤홍식 목사;

‘오직’을 자기를 위한 것이 되면 신앙이 변질된다는 이야기이군요.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대희 목사:

당시 로마교회가 성경이 아닌 전통을 중시한 것을 거부하고 근원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면 이제 원리인 성경을 어떻게 실천하는가하는 방법의 갱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의 결론으로 말씀을 듣고 깨닫는데서 이제는 행하는데 까지 나가야 함을 강조하셨듯이 오직 성경과 오직 그리스도와 오직 은혜를 깨닫는데 멈추지 말고 그것을 행하는 살아있는 복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종교개혁 이후에 유럽교회는 성경을 배우고 깨닫는 지식에 머물고 실천에는 미약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반절의 미완의 개혁이었고 그것을 보완하지 못함으로 교회가 죽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교회가 성경지식에 머문 것은 철학적 종교로 기독교가 변질된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정신을 이어받아 더 구체적으로 성경의 본질을 묵상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고착된 사변신앙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신앙으로 나가야 한국교회가 살수 있습니다. 이것이 날마다 갱신하는 교회입니다

 

윤홍식 목사: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데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이대희 목사: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말씀만이 유일한 삶의 기준임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기준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준이란 성경의 기준을 말합니다. 중세 로마 카톨릭이 부패한 것은 성경과 교회 전통이 첨가되고 교황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그것을 개혁한 것이 “오직 성경”을 주장한 개혁가들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성경 이외의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학교 안에서 조차 성경을 찾아보기 어렵고 다른 과목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성경 66권 자체를 배우는 시간 보다 성경을 설명하는 학문과 기타 다른 과목을 배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신학교는 선택 과목으로 100개 이상이 됩니다. 이제는 오직 말씀으로는 안 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것이 포함되어야 그것이 복음이 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성경 한권으로 충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꾸 새로운 뭔가를 첨가하고 싶은 유혹에 이끌립니다. 다른 프로그램이나 학문으로 부족한 부분을 대체 하려고 합니다. 교회 안에도 심리학. 영성학, 복지학, 실용학, 자기계발, 경영학, 성공학, 과학과 기술, 신비주의 등이 성경을 몰아내고 중심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지식에 이끌립니다. 인간의 부족함을 이런 것으로 대체 하려고 하는 거죠.

 

윤홍식 목사:

‘오직 성경’을 잘못 적용하는 위험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이대희 목사:

왜 이런 현상이 심해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성경의 절대성인 ‘오직 성경 (sola scriptura)’의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의 정신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66권의 모든 말씀이 곧 자신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그동안 한국교회는 ‘오직 성경’을 믿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은 상대주의 세계속에서 절대적인 기준인 성경을 강조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지켜온 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으로만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을 말하면서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성경을 골라서 그것을 절대화 하고 그 나머지는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오직 성경”은 성경의 정신을 온전히 표현해주지 못합니다. 오직 성경을 강조하다 보니 자기가 선호하는 성경구절만 강조하고 절대화하면서 그것이 교리주의로 나갔고 결국 성경과 배치되는 삶의 양태까지 발전했어요. 자기가 보는 성경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정죄하고 배척하면서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지요.

지금 한국교회에 분열이 많고 교파가 많고 갈등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가 한몫합니다. 요즈음 따라 한국교회에 갈등이 많고 서로 하나 되지 못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 일이 많아졌을까요? 그것은 그동안 ‘오직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결과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기 기준으로 삼는다지만, 한 가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만 취사선택하고 그것도 내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근거로 했다고 하는 점이죠.

이대희 목사는 지난 30년 간 성경 66권을 전체로 가르치고있다.
이대희 목사는 지난 30년 간 성경 66권을 전체로 가르치고있다.

 

윤홍식 목사:

지금 한국교회가 시급히 갱신해야할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대희 목사:

한국교회가 조심해야 할 신앙의 모습은 성경을 골라보는 흐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 중심으로 신앙생활 방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이제는 이것을 경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은 있지만 그것이 중심이 되면 성경을 가지고 자기가 주인이 되는 또 다른 문제를 낳게 됩니다. 마치 바리새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을 모르면서도 성경을 아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자칫 성경 몇 구절을 가지고 평생 신앙생활하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편식하면 영적 암에 걸리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런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보고 싶은 설교. 듣고 싶은 설교. 읽고 싶은 성경만 보고 자기 기준으로 성경을 보면 삶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영적 교만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은 자칫 성경만 인용하면 그것이 곧 성경적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오해가 있습니다. 이단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은 자신들의 주장이 더 성경적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 방법은 관계된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직 성경으로 착각하게 하는 점이 문제죠.

 

윤홍식 목사: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지식으로 생각하다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좋은 비유가 없나요?

 

이대희 목사: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듣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루마리를 받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통째로 먹는 단계입니다. 그럴 때 음식이 몸에 힘을 줍니다. 쓴 것은 버리고 단것만 먹는다면 그것은 음식을 제대로 먹는 방법이 아입니다. 맛은 밥을 받아먹고 나서 느낍니다. 행동이 먼저이죠. 하지만 기존의 헬레니즘 성경공부 방식은 깨달아야 행동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제시하는 미리토크 성경 공부는 먼저 믿음을 갖고 공기를 마시고 공기를 느끼고 생명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음식을 받아먹고 맛을 음미하고 씹을수록 맛이 더하는 것과 같다. 성경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내용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되어도 그것을 그대로 믿고 공부하면 그것이 후에 믿어입니다. 이런 점에서 말씀으로 아멘으로 받는 것은 아주 중요한 영역입니다

개혁교회의 정신을 가진 한국 교회는 그동안 ‘오직 성경’을 믿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은 상대주의 세계속에서 절대적인 기준인 성경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지켜온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으로만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을 말하면서 결국은 내가 좋아하는 성경을 골라서 그것을 절대화하고 그 나머지는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경’만으로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본래 정신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오직 성경을 강조하다 보니 자기가 선호하는 성경 구절만 강조하고 절대화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결국 그것은 교리주의로 나가게 했고 나중에는 성경과 배치되는 삶의 양태까지 발전했습니다. 자기가 보는 성경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정죄하고 배척하면서 교회 안에 분열과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오직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의 해석을 절대화 하는 현상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속에 분열이 많고 교파가 많고 갈등이 많은 것은 이것이 한 몫 합니다. 요즈음 따라 한국교회에 갈등이 많고 서로 하나 되지 못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 일이 많아졌나요? 그것은 그동안 “오직 성경”이 만들어 낸 잘못된 성경 이해의 결과입니다. 성경을 자기 기준으로 삼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취사선택한다는 점입니다. 전체로서 성경을 보지 못하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성경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헬레니즘 방식의 강연과 강의가 아닌 헤브라이즘 방식의 말씀 사경회 장면
헬레니즘 방식의 강연과 강의가 아닌 헤브라이즘 방식의 말씀 사경회 장면

 

윤홍식 목사:

이것은 주로 이단과 사이비가 취하는 방식이 아닌가요?

 

이대희 목사;

맞아요. 그들의 구호는 오직 성경입니다. 포교할 때도 오직 성경 한 권만 사용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선물을 전도 도구를 사용하여 전도를 하지만 그들은 오직 성경만으로 전도를 합니다. 언뜻 보면 그들이 진리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입니다. 평신도 입장에서 보면 성경을 바르게 알려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이단들은 성경을 알고 싶은 고민을 가진 사람에게 미혹하고 있으며,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 그 미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성경을 골라본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해 보는 잘못을 행합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해석은 억지로 끼워 맞추거나 아전인수식 해석, 시도때도 없이 계속되는 변개 등 수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체로 보지 않고 필요한 것들만 뽑아 읽은 한계죠.

정통교회도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신앙 양태는 성경을 골라보는 모습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성경구절 중심의 신앙생활 방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이제는 성경을 축소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성경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성경을 가지고 자기가 주인이 되는 일입니다. 그게 교주를 위해 성경을 해석한 이단들의 결과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이전에 성경을 가장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이것은 오는 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성경을 모르면서도 마치 성경을 아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신앙개념과 성경 몇 구절을 가지고 평생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윤홍식 목사:

지금은 개인 방송과 유튜브가 보편적인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이대희 목사: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어디서나 가까이하는 유익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설교를 듣고 싶은 설교. 읽고 싶은 성경만 보고 자기 기준으로 성경을 보는거죠. 자기 취향에 맞는 설교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삶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영적 교만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오래된 성도들과 중직자들과 또한 목회자들까지도 이런 착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 전체의 의미가 아닌 일부의 의미로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양 전하며, 점점 그렇게 굳어지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에 또 하나 포함되어야 할 한쪽 날개는 ‘전체로서 성경(tota scriptura)’입니다. 성경을 말할 때 어느 한 권을 강조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고 아주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강조하면서 자칫 성경을 보안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자기의 지식과 신학적 성향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모든 말씀’을 의미합니다. 딤후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마 4:4)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언제나 성경 전체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선택하여 보는 순간 그것은 자기 성경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을 다 읽고 공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신약만 보고 구약을 무시한다든지, 요한계시록처럼 어느 부분만 유독 강조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영적 교만은 이런 상태에 이르면 생깁니다. 하지만 전체로서 성경을 믿고 공부하는 마음을 가지면 감히 성경을 안다고 말할 수 없고 평생공부 해야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66권의 성경을 제대로 한번 연구하지 않고 개론적인 책을 배운 것으로 성경을 안다고 하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 한국의 신학교는 성경을 전체를 가르치지 않고 신학교를 졸업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들조차 일부분의 성경이나 신학에서는 전문가지만 성경을 전체로 준비하지 못하고 목회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로서 성경을 보지 못하면 누구도 말씀 앞에서 겸손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이라도 한국 교회는 ‘모든 성경’ 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시간을 정해서 성경을 읽고 성경연구에 매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윤홍식 목사:

오늘은 우리의 신앙이 ‘오직’의 신앙을 넘어 ‘모든과 전체’의 신앙으로 지경을 넓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주세요.

 

이대희 목사:

‘토타’는 성경 전체라는 의미다. 토타는 성경 전체를 이해하도록 돕는 과정이며 성경 전체를 대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깨달은 말씀이 전체 성경 속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으로 다시 설명하는 곳입니다. 토타는 성경 해석의 검증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경 해석과 깨달음은 토타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성경 66권의 전체 내용을 알아야 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내가 말씀을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공감했다면 이제 그것이 전체적으로 합당한지를 살펴야 합니다. 읽기와 묵상만으로는 자칫 자기주관적인 말씀으로 머물 수 있기에 그것이 전체의 성경에 합당한지 역사적 동선과 다른 성경과 모순된 점이 없는지 서로 관계성을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고 본질을 보게 됩니다. 내가 깨달은 말씀이 성경 66권의 전체속에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볼 때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옵니다. 성경의 역사와 교회공동체를 통하여 객관화시킴으로 잘못된 지식에 미혹되지 않습니다.

모든(tota)은 자기를 죽이는 시간입니다. 신앙은 죽어야 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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