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태규 목사】 ‘여주’, ‘여’기 ‘주’님이 계시다

  • 입력 2025.02.2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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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이 '여주'는 '여기에 주님이 계시다'라는 뜻이라고 했다는데, 나에게 있어 2006년도는 여주와 친해진 한 해였다. 1월에는 여주서지방 사경회에 초청되어갔고, 같은 해 8월에는 여주동지방 연합성회에 초청받아 복음을 전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속담이 있는데, '여주' 또한 지명의 원래 뜻보다는 해석이 좋다.

내게 있어 여주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은 청안교회에서 목회하셨다. 지교회로 삼교교회, 처리교회, 흔암교회에서도 인도하셨고, 가끔 강을 건너 철야 기도회를 인도하고 오셨던 강천교회 또한 잊지 못하는 곳이다. 기억이 생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했기 때문이다. 쌀이 없어서 아침마다 수제비를 먹었는데 그때 질려서 난 지금도 수제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날 학교엘 같이 가기 위해 친구네 집에 갔다. 그 친구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인데 그 집 또한 수제비를 먹고 있었다. 순간 ‘'목'자 들어가는 집은 다 수제비를 먹는구나’고 생각했다.

이런 기억은 훗날 신학교에 들어갈 때 갈등을 주는 원인이 되었다. 가난에 시달렸던 나는 꽤나 주저하였다. 성경에 까마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던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 우리 아버지에게도 역사하셨다고 들었다. 어느 날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시던 아버지는 어두운 비포장 길을 자전거로 가고 계셨는데, 앞서 지나가 년 군용 트럭이 쌀 한 가마를 흘리고 가는 바람에 그것을 주워다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여주' 하면 잊을 수 없는 것은 여주대교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완공되었는데 그 당시 개통식까지 구경하였다. 요즘도 가끔 그 위를 자동차로 달리노라면 감회가 새롭다.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여주대교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여주대교

여주는 동지방과 서지방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참으로 화목한 분위기였다. 위의 어른부터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돋보였다. 큰 교회들은 자기주장만을 내세우지 않고 연합하려는 모습이었다. 선배 목사님 들과 후배 목사님들은 순한 양같이 부드럽고 밝았다. 막 군대 전입한 사병들이 군기가 들어 긴장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편안하면서도 각자 맡은 일을 알아서 해 나가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이 지방에서 가장 오래 목회하셨다는 김린 목사님(북내중앙교회)은 투철한 사명감으로 머슴처럼 헌신하는 모습이었다. 나보다 몇 살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탁구를 얼마나 잘 치시는지 내가 보기 좋게 졌다. 나는 3게임 치고 나니 숨이 가쁘고 힘이 쫙 빠졌는데 김 목사님은 20 게임 정도를 쳐도 거뜬하다고 하셨다.

교회마다 역사가 깊다는 점도 자랑할 만하다. 아버님이 목회하셨던 청안교회가 1898년 4월 15일에 창립되었고, 북내중앙교회는 1898 년 9월 2일에 창립되었다. 최근에 개척한 몇 교회를 제외한 삼군교회, 삼교교회, 강천교회 등 다수의 교회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나는 요즘 역사를 매우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 교회 부흥이야 지역에 따라 다르고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역사만 금은 사람이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청안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이 청안교회 역사를 중심으로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계셨다. 혹시 보탬이 될까 하여 아버님의 추모집인 『주의 종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네』를 드렸다. 이 책에는 지난날 청안교회의 건물 사진이 있고, 또 자녀가 많아 등 목사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유영돌 목사님의 글이 실려 있다. 아마도 논문을 준비하는 이 목사님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책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장수의 삶을 사시는 분들이 과거의 아버님을 회상하며 나를 찾아오셨다. 특히 삼교교회 장로님들이 매우 반가워하셨고, 시흥 포리에서 함께 하셨다던 이효재 목사님(여흥교회)과 이철우 목사님(여주동부)도 아버지를 기억하시며 반가워들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일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라 고 하셨는데, 부족한 글이나마 영원한 추억 속에 남겨 두고자 몇 자 적어 보았다. 하나님께서 여주지방을 축복해 주시고, 더욱 화목하고 발전하는 지방이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드린다.

 

글에 나오는 교회 담임자 이름은 글을 쓴 2006년 당시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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