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되면 3.1절과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민족 대표 33명, 그리고 유관순 열사가 생각난다. 고 박정희 대통령 하면 새마을운동과 고속 도로가 생각난다. 내게는 매년 사순절이 되면 항상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신학생 신분으로 1979년도 말에 개척 교회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 같은 반 신학생 동기였던 친구 몇 명이 전도를 돕기 위해 우리 교회를 찾아왔다. 지금은 오래 되어 생각이 잘 안 나는데 그럼에도 지금까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전에 남양주 수동교회를 담임했던 박명순 목사다. 이름만 보면 여성적인 분위기라 부드러운 성격일 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성격이 약간 급하고 말하는 것이 조금 거칠게 느껴지다 보니 내성적이었던 나와는 성격이 맞지 않아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던진 한마디 말에 큰 감동을 받았는데, 이 일로 인해 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그 말은 마치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어조처럼 들렸는데, 바로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야!"라는 말이었다.
지난 주 교계 신문을 보니 “3.1절 기념행사 한산, KNCC 예배 안 드려, 기독교에 푸대접받는 88주년 3.1절”이라는 문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3.1절이 역사적으로만 중요할 뿐 사회적으로는 현실감을 잃어버린 듯하다는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나 아니면 다 남이라고 할 만큼 써늘해져 있음을 느낀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사람이 죽어도 내 감기만큼도 관심을 안 갖는 분위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사회는 각박해지고 개인주의는 더욱 팽배해지는 이즈음, 그때 들었던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야!"라는 말이 더욱 새록새록 생각난다.
그 무렵 처가 쪽의 친척 가운데 생일을 맞이한 분이 있어서 고기로 저녁을 푸짐하게 잘 먹고 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저명한 목사님이 쓰신 「사순절에 생각한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는, 사순절은 중세기 이후부터 교회가 지켜 왔고 주로 참회 기도와 극기를 바탕으로 육식을 금하였고 결혼을 비롯한 행사도 지양하였다고 쓰여 있었다. 정직한 신앙의 자세를 견지하고 이 기간에 고난의 길로 행하신 주님과 동행하기로 했다고 하면서 이 기간을 무엇보다도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다. 그런데 나는 고기나 실컷 먹고 왔으니 후회가 되었다. 마치 나를 나무라는 듯하여 가책을 많이 느꼈다.
그 옛날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라고 책망하셨는데, 그 모습이 남의 모습이 아닌 내 모습임을 느끼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나는 오래 전 그 친구가 말한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야”라는 말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아직은 그래도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공간이 남아 있는 거 같아 위로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는 아직 제 맛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쓸 만한 인재들이 돈, 명예, 여자 등의 탐욕에 걸려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강력한 영적 공동체인 수도 공간을 마련하여 영의 힘을 무한대로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여야 한다는 어느 목사님의 말씀에 새로운 각오를 가져 본다.
사순절 기간을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선물로 주신 참된 기회로 삼아 철저한 자기반성과 과감한 정신으로 모두가 새로 태어나고, 조용한 변화의 새바람이 자신과 교회 더 나아가 온 사회에 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