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알켄 베라케카 엘로힘 레올람)”(시45:2).
여름 장마철을 맞아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말미암아 활동하기 힘든 계절이다. 그래도 폭염의 무더위는 잠재우듯 시원하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주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가야 하리라.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시45:3). 이 시편 45편은 왕의 결혼식 노래로서 사랑 노래이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교훈), 사랑의 노래, 인도자(영장)를 따라 소산님(백합화 곡조)에 맞춘 것”이라는 표제어가 있다. 이는 세속적인 백합화 곡조의 노래로서 젊은 왕을 높이며 그의 콘서트, 두로 여왕의 축하식의 찬양 노래로 보인다.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시45:12). 또 이는 왕의 결혼식에 궁정 시인의 작곡과 축하연의 노래로 불리어진 것 같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베노트 메라킴 베야크로테이카 니쩨바 쉐갈 라이미네카 베케템 오피르)”(시45:8-9).
시온의 왕정 축제와 관련해서 부르던 노래와 언어적 유사성이 있으며 북왕국의 왕에게 바쳐진 노래로서 보인다. 아합 왕이나 예후, 여러보암 2세의 이름이 제시되고 심지어 유다왕 솔로몬이나 여호람, 심지어 아리스도 불루스 1세와 프톨레미 왕의 이름이 거론된다. 이 예술적 노래, 시는 축제의 기쁨과 휘황찬란한 궁정 의식을 보이며 고대 동양의 왕들의 거대한 노래와 궁정 의식을 살필 수 있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도르 와도르 알켄 아밈 예소두카 레올람 와에드)”(시45:17). 이 노래의 시는 많은 색채의 꽃들과 다양한 축제와 연관된 모티브와 사상들, 결혼식 축하와 연관된 장면들이 있고 정확히 시편의 반복적 시들의 축제 틀에서 재현되고 있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와길 테보에이나 베헤칼 멜렉)”(시45: 13-15).
이 왕정 시편에서는 메시아 시편, 왕중에 왕으로서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상, 이메지(Image)와 사상의 편린을 살필 수 있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기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히브리서 1:8-9). 시편 45편 6-7절을 인용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보다 높은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히브리서 1:14). 고대 교회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알레고리적 해석은 높은 영적인 해석, 진지한 도덕적 종교적 의무감에서 가능하다. 이는 이미 이 시편이 계속하여 고대 궁정 스타일의 외부 의복이나 세상적 영역, 종교적인 곳의 최고의 지역의 세속적인 것을 통해 제기되어 비취어진 개념을 보여준다.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헤쩨이카 쉐누님 암밈 타헤테이카 이페루 베레브 오예비 하멜렉)”(시45:4-5). 이 왕의 결혼식 시편은 아가서의 혼인식 노래와 유사하며 고대 왕들의 화려한 결혼의 모티브를 연상하며 알레고리적(우화적), 영적 해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머리되심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서 1:17-18, 2:1). 왕이자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고난 받는 형제들의 구속을 위해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셔서 우리를 속량하실 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시다.
시편 45편 1절은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라고 표현하듯 궁정 서기관, 관리의 활동과 영향력이 높은 사람의 모습을 보인다. 2-9절은 왕의 혼인식 장면에서 왕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통치자의 나타남과 아름다움을 보이며 은혜로운 시적 표현을 통해 찬양한다. 이는 다윗과 솔로몬의 찬양받으심과 유사하다. 3-5절은 축복을 통해 강력한 전쟁의 승리와 젊은 위엄과 왕성한 에너지, 통치자의 결정의 영향, 영웅적 행위와 전쟁의 애국적 용맹함, 모든 전쟁의 정책에 있어 도덕적 책임감,자기 억제감 등을 보인다(시45:4-5). 진리, 온유, 공의, 왕의 위엄, 오른손의 놀라운 일, 화살, 만민의 왕들의 굴복 등을 통해 승리의 장수, 축복의 말씀을 보인다. 6-7절은 평화의 왕의 이미지로서 강력한 위대한 왕의 전사를 나타내며 신왕 사상을 보인다. 의의 통치자와 영속적 왕의 통치로서 아합과 이세벨과 반대된 개념을 보여준다. 8-9절은 휘황찬란한 왕의 모습, 궁정의 화려하고 진귀한 상아 제품, 금은 보석과 통치자의 의로운 오른 손의 통치와 그 명예 등을 표현하며 참으로 매력적인 고귀함, 우아함을 표현한다. 10-11절은 시적인 왕의 신부적인 표현과 두로의 딸, 12-15절은 수고스런 권고, 두로 딸의 향수, 왕비 고향의 그리움을 망각함을 통해 왕에게 충성하는 것 등 표현하며 새로운 고향, 그녀의 젊은 사랑의 충정을 표현하며 그 기쁨을 말한다. 16-17절은 시인의 노래가 어린이의 축복과 신부의 고대 사랑의 새로운 삶과 왕에 드리는 축도, 새로운 고향, 아들과 자신의 형통의 강한 유대가 새롭게 새 나라와 왕에게 대한 충성과 통치자의 강화와 안전감을 보장하는 새 윤리와 노래를 통해 다윗 왕정의 견고한 세움을 노래한다. 시편 45편은 메시아 시편으로서 시편기자의 신약 후기 메시아 개념에 영향을 준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시45:10-11). 이러한 귀족적이며 왕정 생활, 왕 결혼식의 화려함이 지배하는 영적 세계의 찬란함과 고풍스럽고, 또 궁정적인 화려함의 세계를 살아간 초기 한국 선교사가 있다.
그레이엄 리(Graham Lee, 1861-1916) 선교사는 한국에서 20년간 선교 활동한다. 그는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의 중요 인물로서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사무엘 모펫 선교사와 더불어 양대 기둥이 되어 길선주 목사를 세우며 함께 교회 부흥을 이끈 거목이었다. 그레이엄 리는 미국 일리노이주 록 아일랜드에서 1861년 태어나 레이크 퍼리스트 아카데미, 프린스턴 대학교,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으로 선교사 파송을 받아 와서 안창호 등 독립협회 평양지회를 설립한다. 그는 평양 지역을 신발이 다 닳도록 다니며 복음을 전도하며 장대현 성령 운동과 한국 교회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만약 교회가 한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회를 선용한다면 한국은 근대에 기독교화된 첫 민족이 될 것이다”(1907년 평양 대부흥회를 직접 목격한 존모트의 고백). 평양 선교의 기적은 하나님의 작품이지만 그 무대의 주역은 그레이엄 리 선교사였다.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처럼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평양 선교의 지대한 공헌을 한 선교사도 드물다.
그는 사무엘 마펫과 함께 평양 선교부를 개설하고 장대현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했다. 그레이엄 리는 평양 전역에 많은 교회를 분립하여 세웠고 평양 선교의 기적을 창출했다. 1907년 1월 장대현 교회에서 열린 평안남도 사경회 때 평양 대부흥을 견인한 삶이 그레이엄 리였다. 만약에 그레이엄 선교사가 없었다면 평양 선교의 기적과 평양 대부흥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1907년 한국을 방문한 아웃룩(선교 잡지) 기자 윌리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필자가 미국을 떠나온 후 만났던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선망하는 한 삶, 그의 여러 면이 어떤 다른 사람보다 더 탐날 가치가 있는 듯한 그 사람은 평양의 그레이엄 리다.... 수백 명이 그를 자신들의 영적 아버지라 부른다. 그는 교회를 세우고 민족을 세우는 일을 함차게 돕고 있는 중이다.” 또 다른 글에서는 이렇게 쓴다. “한국 평양의 그레이엄 리가 신었던 신발보다 더 닳아빠진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레이엄 리는 성령이 이끄는 사역을 사모했고 기도했고 실천했다. 1902년 그는 학생 선교자원 운동 국제 대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교 사역의 시작 때부터 사역을 수행함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을 가장 적절한 자리에 위치시켜야 한다. ...성령 하나님이 전 사역을 지배하게 하셔야 한다.” 그레이엄 리가 얼마나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을 최우선 자리에 올려놓고 사역했는가를 보여준다. 1892년 내한한 그레이엄 리 선교사는 무어, 밀러, 스왈른 부부와 함께 한국 선교사로 들어온다. 1894년 그레이엄 리는 결혼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부인 웹(Blanch Webb)과 함께 돌아왔다. 이때에 리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성령의 부으심을 간구하는 기도를 통해 성령의 부으심을 바란다. “모든 교회는 이 강퍅하고 유연성이 없는 토양(평양)에 이들 선교사가 선한 씨를 심을 수 있게 성령의 부으심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레이엄 리 선교사는 기도의 능력을 믿었다. 그 결과 성령이 이끄는 선교지 평양은 해마다 기적이 창출되었다. 이 기적은 오늘날도 한반도 전역에 또다시 동토의 땅 평양에 복음의 소식이 퍼져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고대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