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연속칼럼】 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1)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코로나 팬데믹보다 두려운 말씀 부재 팬데믹

기독교를 종교의 범주에 두고 생각할 때 기독교처럼 말씀을 중히 여기는 종교도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주장할 뿐 아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심을 천명한다. 예배에서도 말씀을 다루는 설교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말씀을 다루는 말씀 사역자들에게는 보장된 존엄성과 함께 엄중한 책임이 부과되어 있다. 말씀에 대한 진지한 연구는 물론이요 바른 해석과 적절한 전달에 이르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오늘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은 다름 아닌 말씀과 연관된 혼란들이다. 다양한 신학적 견해에 따른 해석의 난맥상, 이단까지 곁들여 그럴듯한 해석으로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파고드는데 교회는 기독교의 초창기 때처럼 말씀에 통달한 해석자들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씀을 싸고 있는 껍질들을 벗겨 말씀의 속살이 지닌 맛을 제대로 익히려면 깊은 연구를 넘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말씀을 전문적으로 다루도록 공인된 설교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고 말씀 해석에 대한 방법론도 다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각성시키고 변화를 일으키는 말씀을 대하기가 쉽지 않다. 분명 지난 시대에는 탁월한 말씀의 종들이 있어 하늘의 진리를 땅에 전해주었는데 지금은 그러지를 못하다. 인위적인 해석으로 각색된 유사 복음이 강단을 오래도록 유린하는 사이에 변질된 복음, 뒤틀린 진리에 익숙해진 영혼들은 진리의 감별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세상이 처해 있는 팬데믹 상황이 위기가 아니라 말씀 부재의 영적 현실이 재앙임을 누가 알 것인가? 세상이 몇 천 번 뒤집어져도 교회는 땅에 떨어진 말씀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정치, 경제, 문화가 정도를 걸어도 교회가 말씀의 진리에 서서 바른 복음을 올곧게 전하지 않는다면 밝은 세상일수록 지옥의 앞마당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대면과 비대면의 경계선상에서 예배의 위기를 경고하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정작 심혈을 기울여 분투할 것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대각성의 날갯짓이다.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의 말씀 부재의 역설

말씀은 사람의 마음과 이 세상 역사 속에서 역사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은 그가 정하신 우주의 법칙을 따라 만물을 유지하고 인간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중심축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기 백성을 만나시고 인류 구원의 대업을 섭리하신다. 시대정신은 예부터 말씀을 기다려왔지만 시류(時流)가 그 기대감을 짓부수었다. 영원을 사모하는 인간 영혼은 존재의 기반인 말씀을 기다리지만 뿌리 깊은 죄성이 말씀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축이 되신 말씀을 바라보기보다는 세상의 주변에 마음이 미혹되어 말씀을 대면하지 못했다. 세상 풍조의 급변에 따라 사람들은 말씀을 외면했고 말씀은 역사할 틈조차 가지지 못했다. 시간에 얽매인 인간의 생명은 들려오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다 속절없이 죽어갔다.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에서 창조의 절정이었던 인간 영혼이 말씀 부재로 망케 됨은 침울한 역설이다.

시대마다 소리가 되고 징조가 되어 외쳤던 말씀의 종들이 있었다. 그들이 생존한 동안에는 세상에 소수이나마 거룩한 백성들이 세워져 어둔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빛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예언자들의 외침이 우리의 기억 속에 희미해지고 말씀의 영광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이 땅은 말씀에 허기지고 목이 갈한 생령들로 아비규환이다.

물이 풍성한 바다에서 목마름으로 죽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물이라고 다 마실 물은 아니다. 진리의 소리가 많지만 정작 생명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음성은 듣기 어렵다. 거짓 교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씀의 영이 상당 부분이나 혼탁해졌다. 말씀의 영을 새롭게 해야 한다. 떠나간 하나님의 영을 모셔 와야 한다. 말씀 사역을 포기하고 자기의 전리(田里)로 귀향한 레위 사람들 곧 말씀 종사자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말씀으로 오신 주님과 말씀 전파 위임

말씀 사역자들이 말씀을 버리면 말씀은 시대의 품을 떠난다. 참 말씀의 종들이 강단에 서기를 꺼려하면 이미 그 시대는 암울에 휩싸인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할 예언자의 목소리가 400년간이나 끊어졌던 때가 있다. 예언자의 목소리가 단절되었던 이 시기는 중세의 천년 암흑기에 비길 만한 절대 절망 그 자체였다. 메시아의 오실 때가 이르자 선구자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되어 나타났다. 오랜 가뭄 끝의 단비처럼 세례요한이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자 말씀에 목말라하던 군중들이 사막의 은거지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소리는 하늘의 목소리를 내었고 사람들은 땅에 엎드렸다. 회개(Repentance)와 갱신(Renewal), 회복(Restoration)과 부흥(Revival)의 역사가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말씀의 오실 길을 예비했다. 오래지 않아 하나님의 아들이 그 말씀으로 세상에 강림하셨다. 말씀 자체(The Word)이신 주님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친히 말씀을 전하셨고(spoken word) 이스라엘과 교회를 잇는 구원사를 중심으로 쓰여진 말씀(written word)인 성경을 남겨주셨다.

주님이 교회에 말씀 전파의 사명을 위임하고 난 이후로 숱한 말씀의 종들이 세워졌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시대를 깨우는 말씀의 종들을 일으켜 세우셨다. 하나님은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주시고 그 말씀을 이루어가셨다. 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할지라도 말씀이 끊어진 적은 없었다. 소자의 작은 외침이라도 있었다. 포효하는 설교자들의 말씀이 뭇 심령들을 뒤흔들 때 말씀은 영광의 보좌에 있었다.

그런데 인간의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말씀의 영광이 사라졌다. 영광의 말씀이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엘리 시대처럼 이상이 흔치 않은 시대에 우리는 있다. 천국에서부터 울려 퍼진 말씀을 듣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는 노랫말처럼 말씀의 풍요 속에서 진리의 궁핍을 경험한다. 말씀에서 권능이 빠져나갔다. 권세 있는 말씀이 자취를 감추었다. 황금의 입술이 사라졌다.

알맹이가 빠진 능력 없는 말씀

말씀이 없으면 사람들은 흩어지고 말씀이 있으면 사람들은 몰려든다. 진리의 음성에 고갈된 사람들은 언제나 말씀이 외쳐지는 곳을 찾는다. 이단 사설이 난무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교회에 진리의 말씀이 약해진 증거다. 이단의 가르침은 진리를 사모하는 영혼들에게 강한 매력으로 다가선다. 그들은 자신감과 확신으로 어둠의 가르침을 전한다. 미혹의 영이 그들을 돕고 진리에 서지 못한 영혼들을 낚아챈다. 이단의 숙련된 말쟁이들은 거짓을 진실처럼 담대하고 확신에 차서 전하는데 정통을 주장하는 이들이 진리를 전함에 이 눈치 저 눈치 살핀다면 수치스런 일이다.

교회는 강적과의 영적 전투에 임하기 전에 스스로를 재정비해야 한다. 사탄은 웬만한 통달자를 무색케 할 만큼 성경 자체에 정통한 존재임을 꼭 기억해야 한다. 진리의 수호자로서 외적 방벽을 보다 튼튼히 하고 내구성도 키워야 한다. 스스로 흔들림 없는 진리 위에 터를 잡고 말씀의 권능을 힘입어 거짓에 휘둘리는 영혼들을 붙들어주어야 한다. 스스로 강해짐이 없고는 다른 이들의 곤고한 영혼을 세워주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말씀 속으로 파고들어 깊이 묵상하며 실제로 말씀이 마음과 생각을 온통 지배하도록 말씀으로 충만되어야 옳다.

얼마나 많은 말씀들이 강단에서 쏟아지고 있는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사람들의 마음에 동요가 없다. 마음을 두드리기는 하는데 영혼을 뒤흔들지 못한다. 말씀을 전하는 본인부터 말씀의 영광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엘리야의 외투 조각을 집어 들었지만 엘리야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능력은 묵비권을 행사한다. 능력이 사라진 말씀은 사람의 말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귀를 간질이고 마음을 현혹시키는 것은 다만 말씀의 껍데기다. 알맹이가 빠져버렸다. 사람들은 말씀의 알맹이를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한다.

말씀이 거처 삼을 둥지가 되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립다. 말씀이 울려 퍼질 때에 흑암이 빛으로 채워지고 공허가 충만으로 변화하는 창조의 기적을 보고 싶다. 말씀이 외쳐질 때 바닷물이 물러가고 산천이 진동했던 두려운 현장에 서고 싶다. 홍수의 거친 물결을 잠재우며 산악조차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했던 여호와의 소리가 듣고 싶다. 황금의 입술이 아니어도 좋다. 어눌한 입술일지라도 영광의 말씀을 실어 나르는 도구가 되고프다.

권능의 말씀에 부닥치기 원한다. 그 말씀에 두드려 맞고 태움 받을지라도 권세 있는 말씀의 영광을 접하고 싶다. 말씀의 능력이 임하여 한 순간 천지가 진동하는 두려움을 감지하기 원한다. 말쟁이들이 진리를 볼품없게 만들고 설교자의 영광이 폐허의 잿더미로 화해 버린 오늘의 강단에 말씀의 영광이 불씨로 되살아나기를 갈구한다. 허공을 치는 주먹질이나 울리는 꽹과리 같은 말씀 선포의 낮 간지러움에서 벗어나 우레 같은 울림으로 하늘과 땅을 뒤집어버리기 원한다.

심장의 식어버린 피를 뜨겁게 하고 폐부를 찔러댈 날카로움을 이 영혼이 먼저 경험하고 싶다. 진리의 파동이 천지사방으로 퍼져가는 우레와 같은 말씀에 이 자그마한 귀가 멀고 싶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말씀의 광채, 그 마지막 빛줄기 하나를 붙들고 싶다. 말씀의 오로라에 휘감기고 싶다. 말씀과 부딪혀 영혼이 천 조각 만 조각이 난다 하여도 말씀의 영광 한 줄기를 접할 수만 있다면 그리 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지고의 복임을 새삼 깨닫는다.

이 땅에 거하는 말씀 사역자는 고개 들어야 한다. 태초부터 계신 이는 말씀이시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셨던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말씀에서 하나님을 뵙지 못하면 하나님을 보아도 알 길이 없다. 보좌에 앉아 계신 영광의 하나님을 앙망하듯 땅에 전해진 말씀을 갈망해야 한다. 우리에게 전해진 성경 말씀에 집중하고 몰입해야 한다. 말씀이 거처 삼을만한 둥지가 되어야 한다.

말씀이 속에서 알을 낳고 생명을 이어가도록 심령을 진리로 채워야 한다. 끊긴 말씀의 고리를 다시 연결하여 오고 오는 세대에 진리의 함성을 내지를 광야의 소리들이 되기 위해 빈들로 달려가고 높은 산을 오르며 골짜기에 엎뎌야 한다. 말씀 암송은 오늘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 복된 길이다. 복음 전파의 테두리 안에서 다채롭게 말씀 사역에 이바지하는 말씀 사역자들에게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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