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국교회 내의 목회 환경이 변화되면서 이제는 교회 재정에 사례비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다른 일을 하면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 사명을 갖고 일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우리는 그분들을 ‘일하는 목회자들(일목)’이라고 부른다. 현재 페이스북 <일하는 목회자들> 그룹에는 약 8천 명의 멤버가 가입되었다.
오늘은 열한 번째 시간으로 인천시 서구 마전역 인근에서 『파란우산카페, 산새교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청년들에게 일터를 제공하는 이삼열 목사를 소개해본다.
Q1. 카페를 통한 목회 사역을 종종 보기는 하지만 목사님이 카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동기는 무엇인가?
A. 카페를 하게 된 것은 재정적으로 너무 어려워서였다. 목회를 시작할 때는 목회가 아니고서는 생각한 것이 없었다. 개척하기 위해 목회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교회들이 “헌금 할 수 없는 아이들만 있어요.”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너무 마음 아팠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세워주는 목회를 하자’는 다짐을 했고, 재정적인 부담을 떨치기 위해서 다른 직업을 알아보다가 카페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오히려 지역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됐다.
Q2. 감리교 목회자로 알고 있다. 감리교단은 한 교회에서 부부 목회가 허용되지 않아서 아는 분도 아내가 먼저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남편을 위해서 담임목회를 그만둔 경우도 봤다. 부부가 같이 사역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A. 처음엔 한 교회만 하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아내가 먼저 목회를 시작해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난 후에 내가 안수를 받았다. 아내는 푸른소망교회 담임목사로 목회를 하였고 그 후에 내가 목사 안수를 받았다. 처음에는 굳이 두 교회가 필요한가?라는 생각했다. 더구나 성도들이 아내가 목회하는 것을 보고 따른 성도들인데 그 자리를 바꿀 필요가 있는가? 하고 생각도 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분명히 목회를 할 테지만, 지금은 아내를 잘 도와서 목회를 협력한다면 목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때 즈음 방황하는 아이들이 카페에 오게 됐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술 담배에 젖어 있고 문란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어서 기존 성도들이 싫어했다. 그때 ‘아! 이때 인가보다’ 생각을 하고 뒤늦게 이 아이들과 개척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내가 목회를 잘하고 있는데 내가 거기에 끼어드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한국교회는 왜 팀 사역이 안 될까?’ 생각하면서 팀 사역을 준비했다. 나는 팀 리더는 한 명이면 됐고, 누군가는 개척교회에 재정적으로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척교회는 성도 한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교회 재정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봤다. 아내의 설교가 너무 좋은데 성도들의 눈치를 보는 것을 봤다. 그래서 재정적인 독립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일하게 됐다.
Q3. 그러면 목사님이 목회하는 산새교회와 아내 분이 목회하는 푸른소망교회가 서로 다른 역할의 교회로 세워진 것 같은데 그 다른 역할은 무엇인가?
A. 카페를 통해서 들어온 방황하는 아이들과 먹고살아야 하는데 때 마침 산속에 빈집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과 공동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우체통을 봤는데, 우체통에 새들이 있는 것을 봤다. ‘아, 산새들이 집이 없구나. 내가 이 아이들과 같이 있는데, 이 아이들에게 집을 지어준다는 심정으로 교회 이름을 산새교회라고 하자’ 생각하며 산새교회라는 이름을 짓고 목회를 했다. 아이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공부도 시켜보고, 인테리어 기술도 가르쳤다. 그러던 중에 한 아이가 손을 다쳤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만 집에 두고 나는 일을 하러 나갔는데 어느 날 이 아이들이 은행에서 절도를 했다. 아이들은 실형을 살게 됐고 결국 그 아이들을 떠나보낸 후 거기서 나오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앞에다가 다시 건물을 얻어 교회를 옮겼고 지금은 청소년이 아닌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Q4. 그렇다면 그 후에 카페 사역이 어떻게 진행됐는가?
A. 이후에 카페 사역에 더욱 집중했고 주말에 토요학교를 개설하면서 카페 손님들이 많이 등록을 했다. 기타교실, 드럼교실, 목공교실, 냅킨아트, 과학교실, 미술교실 등 7~8 가지 방이 개설됐다. 토요일은 카페 문을 닫고 지역 주민과 소통을 했다. 당시 4명의 사역자들이 함께 도왔는데 이 분들의 재능만 나눠도 지역주민들이 많이 좋아했다. 어느 날은 기타를 배우러 온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우리 사역자보다 더 기타를 잘 쳤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리를 내어 드렸다. 자연스럽게 재능기부가 생겨나는 등 주말 토요학교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 그러면서 기존의 성도님들도 봉사를 하게 됐다. 그러다가 1년 전에 코로나가 터져서 더 이상 모일 수 없게 됐다.
내가 지난 10년을 목수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고 카페를 하며 이중직 목회를 했는데, 이제는 다른 일들은 멈추고 카페에 더욱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도들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이 아니라 늘 만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로 건물 전체를 임대를 하고 지하는 목공실, 1층은 카페를 했다. 목공을 담당하는 목사님이 맡고, 카페는 카페를 담당하는 전도사님이 사역을 하면서 공동 목회가 가능해졌다. 인테리어 기술이 있다 보니 교회 근처에 카페와 파스타를 또 열었다. 그래서 교회 집사님들이나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집사님들의 남편 분들도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분들과 교제를 이루면서 공동체가 자라는 것을 봤다.
Q5. 지역에서 주로 카페나 파스타를 하는데, 지역을 변화시키는 비전은 무엇이며 목사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A. 나는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내가 지금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일을 하나?’ 그러다가 생각을 바로 잡았다. ‘굳이 우리 교회 등록하지 않아도 내가 이 카페를 찾아오는 매일매일의 손님을 나의 성도라고 생각을 한다면 나는 가장 큰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분들을 위해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면서 예수님처럼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이 목사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나중에 내가 목사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아! 역시 목사님이었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이 목회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도사 시절 하루는 『우리 동네 카페가게 아프리카 당나귀』라는 책을 쓰신 집사님께 “어떻게 하면 내가 카페를 잘할 수 있을까요?” 물어보니 그때 그 집사님이 말하기를 “누군가 전도사님을 보고 뒤늦게 전도사인 것을 알았을 때 ‘역시 전도사님였어’라고 말한다면 그 카페 잘한 것이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전도사라고 혹은 목사라고 말하지 않아도 삶에서 묻어나는 것이 바른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카페를 하면서 목회적으로 깨닫는 한 가지가 있었다. 커피의 맛은 들어올 때 손님의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맛있는 커피를 드려도 들어올 때 기분이 나쁜 상태면 맛없게 먹고, 기분이 좋은 상태면 뭐든지 맛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손님을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손님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온전히 그 오신 분들에게 집중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좋게 변화시키도록 애썼다. 그러면서 그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일을 했다.
Q6. 오늘날 교회들은 새로운 성도가 교회 찾을 때면, 성도가 가진 고유한 달란트를 몰개성 화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를테면 목소리가 좋으면 성가대, 운전을 잘하면 차량봉사, 음식을 잘하면 주방봉사 이렇게 대하는데 목사님은 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A. 그렇다. 성도를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부품화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발견하고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만드는 것이 교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에 토요학교를 하면서 악기를 배우는 분들이 악기를 배우는 기쁨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를 즐거워하고 목말라하는 것을 봤다.
Q7.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무엇을 말하나?
A. 그리스도인으로서 너희들이 성실히 삶을 살라고 말한다. 지금 현재의 카페는 청년이 인수한 것이다. 지금 이 자리는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있다. 내가 목사에 대한 정체성을 갖고 있듯이 지금 청년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낸다면, 너희들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말해준다.
Q8. 목회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A. 사도바울의 텐트메이커 사역처럼 재정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배울 것을 말하고 싶다. 물론 나도 목사로서의 사역에 필요한 말씀을 준비한다든지 기도한다든지 시간이 충분치 못함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런 문제도 점차 해결되리라 믿는다. 한 가지 부언한다면, 인테리어 기술을 추천하고 싶다. 그것은 내가 내 교회를 꾸밀 수 있으며 그렇게 자기가 직접 교회를 세운 목회자들은 그 교회를 끝까지 잘 지키는 것을 봤다.
Q9. 미래세대는 어떤 교회가 살아남게 된다고 생각하나?
A. 결국 소통하고 함께 하는 교회가 살아남는다고 본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교회. 결국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것 같다. ‘함께’의 가치가 소중하다.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할 때 그 사람의 간절한 소망이 이뤄진다. 나를 누군가에게 선물로 내어 주는 것이 바른 목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