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고치면서 다양한 삶의 현장 깊숙이 들어가 섬길 수 있어”

【편집자 주】 한국교회 내의 목회 환경이 변화되면서 이제는 교회 재정에 사례비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다른 일을 하면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적 사명을 갖고 일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우리는 그분들을 ‘일하는 목회자들(일목)’이라고 부른다. 현재 페이스북 <일하는 목회자들> 그룹에는 약 8천 명의 멤버가 가입되었다.

오늘은 열두 번째 시간으로 일산역 1번 출구에서 가까운 <섬김의교회(기감)>를 담임하며 기타 제작-수리를 통해 많은 목회자들과 선교사들, 찬양사역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아낌없이 섬기는 구인수 목사님을 소개해본다.

Q1. 목회를 해야겠다는 소명은 언제 갖게 되었나?

A. 내가 개인적인 소명을 느낀 것은 없었다. 나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7남매 모두가 목회하는 것이 꿈이셨다. 그렇게 해서 맏형이 감신대 82학번으로 목회를 시작하게 됐고 둘째 형님도 주기철 목사님 영상을 보고 감신대를 가서 목회를 하게 됐고, 셋째 형님도 목회를 하기 위해 한신대에 갔다. 그렇게 나도 자연스럽게 신학대학에 가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됐다. 사실은 신학대학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학창시절 어느 날. 아버지가 워낙 무서워서 통신표(성적표)를 고친 적이 있다. 3을 칼로 긁어 8로 살짝 고쳤는데, 고치는 과정 중에 선생님과 아버지와 연결이 되어 들켜버렸다. 한 겨울에 방에서 발가벗고 엎드려뻗쳐를 한 시간 넘게 받았다. 온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나자 이번에는 눈 덮인 마당으로 끌고 나가 마당에 있는 눈을 뒹굴면서 다 녹이라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무서워 마당에 있는 눈을 온몸으로 다 녹였다. 이제 몸은 떨리고 춥고 무서운 나머지 아버지가 좋아하는 말이 뭘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당에서 방을 향해 “아버지! 저 목회 할게요”라고 외쳤다. 그것이 나의 서원이 된 것이다. 아버지의 꿈대로 현재 우리 형제 중 6명이 목회를 하고 있다.

Q2. 목사님은 일하는 목회자로서 삶을 살게 됐는데 어떤 계기로 일하는 목회자로 살게 됐나?

A.그렇게 감신대에 입학을 하고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24살 때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안산 A감리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였다. 수련회 중간에 학생 일로 나 혼자 운전을 하고 나왔는데, 졸음운전으로 대관령 3터널 입구와 추돌하는 대형 사고가 났다. 그 사고로 병원에 2년 정도 입원을 했다. 전신마취와 척추마취 등 무릎 아래로만 13번 정도 수술을 했다. 그 후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감신대 대학원 1/4 학기였는데 병원에서는 나왔지만 몸이 불편한 나를 받아주는 교회가 없었다. 그 때 나는 마음에 서원을 했다. ‘10월까지 목회 임지가 나오면 목회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목회를 포기하겠다’ 그렇게 기적처럼 전라도 신안에 목회 자리가 났다. 그렇게 전라도 신안에서 12년을 목회했다. 그 후 외국인 목회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외국인 목회를 할 수 있는 교회로 임지를 옮겨 부목사로 1년 반 정도 있었는데 잘 맞지 않았다. 결국 목회를 잠시 쉬고 평신도로 2년 정도를 생활했다.

사역은 쉬고 있었지만 교회는 정말 가고 싶었는데, 헌금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그 때 마음에 평신도들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평신도들도 헌금에 대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당시 새벽 6시에 일을 나가 오후에 돌아오면서 정말 몸이 힘들었다. 몸이 불편한 중에도 힘들게 번 돈이지만 여기저기 금세 빠져나갔다. ‘평신도들이 어렵게 드린 헌금을 정말 가치 있게 쓰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당시 내 눈에는 헌금의 대부분이 목회자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교회공동체를 위해 균등하게 쓰는 교회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목회를 하고 싶으면 ‘헌금 없는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 헌금 없는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비량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현재 섬김의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장로님께 “헌금 없는 예배를 드리자. 교회 운영이나 내 사례비는 내가 노력해서 해결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취지는 결국 누구든지 헌금 없이 편하게 예배에 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Q3. 헌금에 자유로운 자비량 사역을 결정한 후 ‘기타고치는 일’을 사역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A.헌금에 자유로운 목회를 위해서 자비량 사역을 결정했다. 하지만 장애3급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망가진 기타를 주워왔는데 그 기타를 어렵지 않게 고쳤다. 그 때 내가 손으로 잘 할 수 있는 일이 기타 고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서울연희실용전문학교 악기제작과>에 들어가서 악기를 제작하는 기술을 익히게 됐다.

악기를 고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좋았다. 기타를 수리하면서 부터는 폭넓게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누구도 지하까지 찾아오지 않는 교회였는데, 악기를 수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기타 동호회 사람들 뿐 만 아니라 카혼을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고 그들의 삶의 애환을 나눌 수 있었다. 지하 공간이 주는 아늑함 때문이었는데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통의 수단이 되어서 기타가 참 좋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작은교회인데 다른 교회나 목회자 그리고 선교사님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참 좋았다. 재정적인 도움을 못되지만 그 분들의 악기를 수리해드리고 수리해도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는 내가 가진 다른 기타로 대신 바꿔주면서 섬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Q4. 기타를 수리하러 오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 기타를 수리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

A.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다양한 분들이 오셨다. 너무 많이 몰려와서 한 공간에서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자기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왔는데 목회자를 포함한 크리스천이 50%라면 일반인들도 50%는 됐다.

그 분들 중 어떤 여자 성도님이 어떤 불교 신자인 여자 분을 몇 년을 전도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전도해도 안됐다. 그런데 그 여자 분이 우연찮게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를 찾아 왔다. 나는 그 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 분의 망가진 기타를 정성스럽게 고쳐줬다. 그러자 그 여자 분이 전도했던 성도님을 찾아가서 “나도 예수 믿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그 여자 성도님이 감사인사를 하러 왔다. “제가 그렇게 전도해도 안 된 그 불자가 목사님의 재능기부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성도님이 “그 분과 함께 목사님 교회를 다니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저는 모으는 목회는 이제 안 합니다. 단지 가끔 와서 같이 찬양도 부르고 기도도 하는 것은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랬던 분이 여전히 자주 이곳에 와서 같이 찬양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돌아간다.

또 어떤 나이가 60대 즈음으로 보이는 분은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재산도 많았지만 늘 일에 시달리며 살아가며 지쳐있었다. 어느 날 기타를 수리하며 그 분과 시간을 보내는데, 그 분이 갑자기 자기가 지금 불면증 약을 먹는 시간이 지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 보니 마음이 너무 편하다. 이 교회는 왜 이렇게 아늑한가? 하면서 돌아갔다. 이 분은 결국 불면증 약도 안 먹고 새 직장도 잘 적응하면서 다니는 것을 보게 됐다. 이처럼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보듬으면서 나가는 것이 내 사역의 기쁨이 아닌가 싶다.

Q5. 기타 수리하는 사역을 통해 깨닫는 목회적인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앞서 말한 것처럼 모이게 하는 목회를 지양하고 싶다. 교단중심적이고 교회중심적인 교회들은 결국 한 사람을 스타로 만들고 싶어하고 자연스럽게 그 한 사람에게 모든 관심과 재원이 집중되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치 이스라엘이 사사시대를 지나고 왕을 세우고 싶어 하는 욕심처럼 오늘날 교회로 따지면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장점도 있겠지만 결국 개교회 중심적이며 담임목사 중심적인 교회는 자꾸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을 바라는 것을 보게 됐다. 신약시대 예수님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 싶어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무리를 떠나서 산, 들, 강으로 나가셨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의 사역 방법과는 다르다. 예수님은 모으신 것이 아니라 찾아가셨다. 철저히 현장 중심적인 사역을 하셨다. 나도 그런 사역을 하고 싶었다. 물론 그 분들도 우리교회로 오는 거지만, 나름대로 기타를 고치면서 그 분의 삶의 현장에 가까이 가고 싶었다.

Q6. 교회의 공간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나?

거룩한 미션을 위해서 써빙워십센타(무료쉐어공간)을 만들었다. 다양한 단체와 모임에 제공하고 있다. 각 사역팀들이 모임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도 함께 돕는 사역자들에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자가 아니라 도와주는 자로 서 있었다. 우리 교회 공간을 함께 쓰고 있는 팀들도 서로 자율적인 모임을 갖지만 어떤 한 가지 목적이 세워지면, 서로 연합하는 형태를 이룬다. 그런 의미에서 쉐어 공간이 섬김과 나눔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Q7. 목사님만의 목회를 정의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

A. 나만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움직이는 교회를 하고 있다. 우리교회 성도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분들이 자기 신앙생활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들어보면 다양하다. 목회자와의 재정적인 괴리감도 있다. 그래서 나는 찾아오는 예배보다는 움직이는 예배를 지향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끌어 모아 내 양으로 삼는 것은 지양했다. 나는 내 양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만인제사장을 지향한다. 사제중심적인 가톨릭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신교가 나왔는데, 지금은 개신교회가 더 목사중심적인 교회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예배를 드리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찾아가서 그들과 예배도 드리고 성찬도 나누고 말씀을 전할 수는 있지만 그 분들이 스스로 모일 수 있는 힘을 갖추면 나는 떠날 것이다. 나는 제도화 된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직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도적 직분의 무용론(無用論)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직분과 제도적 직분 사이의 긴장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교회가 목회직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지 말고 목회가 교회 공동체를 위한 사역으로 바르게 존재해야 한다.

Q8. 미래목회를 위한 바른 모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오래 전 40년 넘게 찬양사역을 하신 분이 한국 교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목사님, 좀 어려워도 사람 모으지 말고 돈 모으지 마세요.”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내게 확 박혔다. 생각해봤다. 사람 모으지 말고 돈 모으지 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그것은 먼저는 자비량 목회이다. 목사가 뭔가 생계로 이어지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목회가 생계와 관련되어 있으면 결국 교회도 목회도 힘들어진다. 또 하나의 방법은 서로간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순수한 후원을 받는 것이다. 자비량으로 일부 감당하고 일부는 후원을 받는 것이 미래목회에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Q9. 앞으로 목사님의 목회의 꿈과 계획은 무엇인가?

A.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자 했지만 소유하지 말고 가난하게 살고 싶다. 단순한 가난함이 아닌 검소함과 소박한 삶을 이루기 위한 가난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내가 잘사는 것을 원할 수 있겠지만,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의 마음은 물질적인 부자를 원하지 않는다고 본다. 끝으로 한마디를 더 하자면 교권을 강화하기 위한 교단주의는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개교회 중심주의도 무너져야 한다. 개교회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면 결국 주님의 뜻대로 교회가 세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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