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용 교수】 민족적 편견을 뛰어 넘는 섭리사관

  • 입력 2022.04.1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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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사관으로 본 韓日近代史” , 박호용 교수의 한일근대사 강의 (4)

1.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사관(史觀)의 중요성이었다. 역사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의 기록이라고 정의한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어난 사건(사실)을 모두 다 기록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사건(사실)을 취사선택해서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이를 전문 용어로 사관(史觀)이라고 한다. 개개의 묵주알을 사건(사실)이라고 한다면, 개개의 묵주알을 꿰어야 묵주알 목걸이(보배)가 되듯이, 개개의 사건(사실)을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꿰어야 사관을 지닌 의미 있는 역사(보배)가 된다.

일반적으로 대개의 역사는 왕조를 중심으로 한 왕조사(王朝史), 즉 정치사(政治史)이다. 필자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조선시대(1392-1910) 27대의 왕들의 계보를 외우는 것이었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이 그것이다. 그런데 근세 이후 역사의 주체를 왕이 아닌 일반 백성(민중)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를 민중사관(民衆史觀)이라고 한다.

한편,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신구약성경(그리스도교)에 기초한 구원사관(救援史觀)을 말했다. 구원사관이란 역사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한 역사를 말한다. 대표적인 학자가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 354-430)이다. 어거스틴은 인류 역사를 신구약성경이 말하는 직선적인 구원사관으로 보면서 이를 6시기로 나누어 기술하였다. 1) 아담에서 노아까지, 2)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3)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4) 다윗에서 바빌론 포로까지, 5) 바빌론 포로에서 그리스도의 탄생까지, 6)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마지막 심판까지.

 

2. 이러한 직선적인 역사는 독일관념론의 완성자인 헤겔(G.W.F. Hegel, 1770-1831)에게 이어졌다. 헤겔은 인류 역사를 이성(정신)의 발전적 역사라는 관점에서 기술하였다. 이를 유심사관(唯心史觀)이라고 한다. 그는 인류 역사를 이성의 발전에 의한 자유 확대를 위한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그리하여 고대에는 한 사람 왕만이 자유로운 시대였고, 중세에는 소수의 사람 귀족들이 자유로운 시대였다면, 근대 이후는 만인이 자유로운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헤겔의 유심사관을 유물사관(唯物史觀)의 관점으로 뒤집은 사람이 바로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K. Marx, 1818-1883)이다. 그는 역사를 이끌어가는 동력은 하나님()이나 이성(정신)이 아닌 물질’(계급)이라고 주장하였다. 계급은 물질의 유무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고, 인류 역사는 보다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한 투쟁, 계급 확대를 위한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인류 역사를 4단계, 즉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이상적인 평등사회인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을 러시아 혁명에 적용한 사람이 레닌(B. I. Lenin, 1870-1924)이고, 중국혁명에 적용한 사람이 마오쩌뚱(毛澤東, 1893-1976)이다.

한편, 역사에 있어서 창조적 소수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20세기 최고의 사학자 토인비(A. Toynbee, 1889-1975)는 인류 역사를 문명사관’(文明史觀), 즉 문명(文明)이라는 관점에서 기술하였다. 그는 역사가 직선적으로 진보한다는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자연이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순환하듯 인간이 이룩한 문명도 흥망성쇠의 과정, 즉 발생기, 성장기, 쇠퇴기, 해체기를 갖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역사관을 순환사관’(循環史觀)이라고 말한다. 이 밖에도 영웅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 영웅사관(英雄史觀), 민족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 민족사관(民族史觀) 등 많은 사관이 있다.

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보느냐, 즉 인간이 역사의 주체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체인가 하는 문제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하나님이 이끌어가거나 우연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꿈을 가진 인간들이 창조해 가는 것이다.” 이 말은 역사의 주체를 인간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성서적(그리스도적) 역사관에 의하면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성서적(그리스도적) 역사관은 인간의 의지가 주도하여 써가는 땅의 역사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의지가 개입된 하늘의 역사이기에 역사 이해(해석)을 온전케 한다. 그래서 역사(History)그분(His)의 이야기(Story)’, 하나님의 이야기’(God-story)로 보는 것이다.

가령 한일근대사를 인간(민족)이 주체가 되는 경우 한국인이 보는 관점과 일본인이 보는 관점이 다르다. 거기에는 자기 민족의 눈으로 역사를 보기에 민족적 편견이 다분히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을 주체(주어)로 한 역사, 즉 일본인과 한국인을 다 같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경우 민족적 편견을 초극(초월)하는 3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이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역사관, 섭리사관’(攝理史觀)이라고 부른다.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인간 역사를 주관해 가신다는 섭리사관도 바로 이와 같다. 섭리사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이 왕이 되어 통치하는 세상 왕국’(세상 나라) 너머에 하나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는 하나님 왕국’(하나님 나라)적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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