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1/Feb./'23

 

Proverbs . 8:15

By me kings reign, and princes decree justice.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2월이 시작되며 사랑하는 고국의 불안전한 정계와 이국인 영국의 정치 국민적 현안을 잠시 바라보며, 기도하는 자세로 그 기본적인 질문과 그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해봅니다.

 

1. 개신교의 나라라며 불러보는 영국에는 42개의 Cathedral/교구의 mother church(성공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런던에는 3(church of England)가 있으며, 연일 세계 열방에서 몰려오는 각양 모습의 많은 방문객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곳 런던의 Southwark Cathedral Westminster Abbey를 비교하면 아시듯이 W.A.는 왕립으로 각개 사회 전 분야에서 명성은 얻은 분들을 사후에 모시는 국가적 교회라고 한다면, 지금의 S.C.는 전통적으로 120/1000(지역으로 1420여년)의 역사를 아우르며 지켜온 이곳 지역에서 선망의 대상자로 물망에 오른 자들을 마치 RC에서 성인들을 선출하듯이 오래된 전통과 지역적 특색을 띈 교회로 물론 저들과 그 가족들까지도 기도로 보듬는 교회적 사역이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히 SC에는 주목받는 일국 왕 황동(노란 브론즈)의 무덤처럼 보이는 Edward Stuart Talbot(1844-1934/아래 사진)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분은 윈체스터 주교로 마지막 삶을 마쳤지만 이전에는 옥스포드 케블 칼리지의 첫 소장, 로체스터 주교 및 런던의 Southwark에 있는 {Grade I listed building, is the Cathedral Church of St Saviour and St Mary Overie (meaning "over the river on the south bank of the Thames)} 가장 오래된 고딕 교회 건물로 1905년도에 새로운 교구의 Cathedral/대성당(mother church)으로 만드는 작업을 완료했으며, 그러므로 그는 지금의 SC/서더크 교구의 첫 주교로 즉위했었다는 업적과 함께 그는 the founding diocese of S.C.로 더 나아가서는 S.C.에 위치한 Winchester Cathedral의 주교 란스롯 엔드류스(KJV 마일즈 카버다일 목사와 함께한 번역위 의장)의 무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음을 쉽게 확인 될 수가 있다.

Edward Stuart Talbot
Edward Stuart Talbot

 

2. 영국이 유럽 연합으로부터 탈퇴로 소위 정식으로 브렉시트가 된 시기(202013123시부로)는 이제 3년을 넘기며 아직도 영국은 2년여 기간의 코비드 판데믹 시기를 지나며 요즘 들어 각 계층 분야에서 더욱 힘든 시기를 경험하고 있음을 부인 할 수가 없다. 지난 3개월간 영국의 대부분의 국민들을 위한 기관들(NHS, Sch. 교사들 & 버스 철도 교통망) 및 또한 정부 기관급 리이더들까지 파업을 하며 이곳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사진).

 

국민들을 대표하며 인도하는 정치계에도 경제계에는 물론 종교계에도 새로운 움직임으로 저들 나름대로의 기세적인 날개를 펴고 있지만 계속된 파업의 연장으로 국민들을 위한 생활 안정권 보장과 그 국익에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됨은 가까운 미래에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먼 장래적으로 보면 예전 글에 표현한 것처럼 브렉시트의 결과로 영국은 유럽을 떠나서 독립적이나 이전과 지금의 영연방국들과도 연대하며 더 많은 나라들(남미, 동남아 & 한국 포함)을 얻기에 국민들을 위해서는 결국 삶이 좋아질 것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특히 장기간의 왕좌를 지키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마마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5개월이 되어가며, 자동적인 승계 서열로 된 찰스 3세의 대관식/코로네이션은 앞으로 3개월 후인 5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본식이 거행된다. 이때에 이어질 왕의 행렬(The King's Parade) 찰스 3세와 카밀라 왕비는 함께 하는 즉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다.

Coronation of Charles III and Camilla
Coronation of Charles III and Camilla

 

A. 영국 정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우리 기독인의 본분으로는 기도로 삶을 함께 나누는 자들로서 허나 순례자로, 방랑자로 속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마당에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통해서 이 나라의 장래를 주께 올려 본다. 이들은 근본적인 질문이라지만 본인이 삼십 여년 이상 몸을 담고 있는 이 나라 곧 영국 정부의 목적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면 우린 금방 알아차릴 것 같지만 이미 세속적으로 변하고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을 들어 말하지 아니 할 수가 없다. 이 나라 영국이 오래전의 전통인 기독교의 모습에서 이미 '세속적' 국가라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2022910일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찰스 3세의 즉위를 기념하는 한 낭독문 내용을 '선언함'에 있어서 우린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으시고 영광스러운 기억의 고인이 된 우리의 주권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자비하심으로 부르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 ...“하나님이시여, 왕을 구원하소서.” 그 선언이 찰스 3세를 우리의 왕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자신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동적으로 즉시 왕으로... 단지 추밀원이 그를 왕으로 승인했다고만 밝혔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성구를 인용한 것입니다. "왕들은 나를 힘입어 다스리고 방백들은 공의를 세우느니라" (잠언 8:15)

 

B.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이란?

기독 기도자는 분명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위하며 그분을 주께 올려 드릴 것입니다. 이제 찰스 3세가 준비된 의식을 위한 룸에 입장하자 그는 추밀원 의원들 앞에서 선언문과 맹세문을 낭독했습니다. 그의 선언에서 표현하길 "내 사랑하는 어머니 여왕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 그의 슬픈 의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통치는 "그 기간, 그 헌신과 헌신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는 이 위대한 유산과 이제 나에게 넘겨진 주권의 의무와 무거운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맡으면서 저는 헌법 정부를 수호하고 전 세계에 걸쳐 유럽에서 떨어진 본국 섬나라와 영연방 영역 및 영토의 사람들의 평화, 균형 및 번영을 추구하는 데 있어 제가 세운 고무적인 모범을 따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어서 이 목적을 위해 나는 내가 주권자로 부름 받은 국민들의 애정과 충성심에 의해 지지를 받을 것이며, 이러한 의무를 수행할 때 선출된 의회의 조언에 따라 인도될 것임을 압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에게 맡겨진 무거운 임무를 수행하면서, 제게 남은 인생을 바쳐 전능하신 하느님(그의 신앙으로 보아서 우리의 하나님이 아님)의 인도와 도움을 간구합니다.”

 

C. 그럼 우리 헌법안에서 기독교란 어떤 위치인가?

기독교도로의 헌법이 요구하는 기독교는 무엇인지 질문을 해 봅니다. 추밀원에서의 그의 선언에서 찰스 3세는 군주제의 목적과 그에 따른 정부의 목적에 대한 이 헌법에 존재하는 성경적 이해를 밝혔습니다. 특히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의 '평화와 균형있는 조화와 미래로의 번영을 구하는 것'입니다. , 백성들을 불필요한 전쟁이나 또는 전능 하신 자에 대한 반역으로의 길로 인도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합리적 삶의 추구로의 법 앞에 모두에게 불평등을 주재하는 것은 더욱 아니며. 백성을 섬김에 있어서 가난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는 것입니다. 기독도인들의 바른 성경적 삶에 있어서 우린 이렇게 권고합니다. 이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던 믿음의 선진들 청교도/언약도/위그노들처럼 '우리는 모든 정부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으며 그 목적은 오직 성경의 가르침 원칙에 따라 질서있는 자유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바른 정의를 그리스도 안에서 유지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물론 그것은 찰스 3세 왕이 낭독한 처음 두 가지 원칙인 평화와 조화의 원칙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고국이든 영국이든지 국민들의 삶의 질서를 위한 본보기적 정부의 리더쉽도 결국은 국민의 번영을 증진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모든 정부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으며

성경의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정의를 유지하는 사명

 

D. 성경에서 요구되는 지도자상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이에 우리가 지켜야 될 믿음으로의 바른 삶을 보여주어야 될 지도자들을 향한 성경적 역할을 중요시 할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 익숙한 지도자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지도자를 요구합니다. Exodus . 18:21 Moreover thou shalt provide out of all the people able men, such as fear God, men of truth, hating covetousness; and place such over them, to be rulers of thousands, and rulers of hundreds, rulers of fifties, and rulers of tens: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현명하게 조언을 듣는 모세의 삶을 인도하지만 이어서 성경은 그들이 유능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를 위하여 일하지 않고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전한 다윗 왕의 요점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삼하. 23:3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공의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라 하셨느니라. 우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겸손하여 여호와께 지혜를 구하리로다. 그는 참된 공의가 있는 하나님의 법에 근거한 법을 제정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러한 통치자가 그가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기억하면서 의인에게 선을 행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Romans . 13:3 For rulers are not a terror to good works, but to the evil. Wilt thou then not be afraid of the power? do that which is good, and thou shalt have praise of the same: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네게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꾼이시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한다면 두려워하라. 그가 칼을 헛되이 가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집행하는 자니라.

영국 헌법은 군주를 하나님 아래 두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마치 특효약과고 같습니다. 인간은 권력앞에 교만하기 때문이지요 곧 군주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습니다. 섬기는 자들은 물론 겸손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위정자들을 위해 또는 그들 앞에 기도로 위하며 무릎을 꿇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으로 우리 믿음의 대를 지속적으로 잇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린 권세 아래 있는 자는 권세를 가졌으니 이는 복음서의 백부장이 주 예수께 말한 바와 같이 주 자신의 권세를 인정하여: 누가복음 7:8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밑에도 군사가 있으니 내가 누구더러 가라고 하면 가겠고 또 다른 이에게 오라 하면 그가 오고 그리고 내 종에게 이것을 하라, 그러면 그가 그것을 한다고 말씀하심입니다. 여러 모습의 입들보다는 행함에 있어서는 겸손함이 키입니다. 우리 기독도인들은 그럼 누구의 권위 아래에 있나요? 우리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위치의 사람들보다 더 큰 권위/위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1)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약속하신 평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단히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안에서는 손해가 아님을 믿음으로 확인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상. 22:9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평안한 사람이라 내가 그에게 사면의 모든 대적에게서 평안을 주리니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내가 그의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평안과 안일함을 주리라. 곧 평화와 안정은 권세를 부여받은 왕이며 위정자들이 백성을 섬김으로 구해야 할 좋은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적어도 이기심 때문에 기도의 수고를 하는 기도자들의 모습이요 곧 기도의 기독도인들이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상. 29: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이 평안하기를 구하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의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아멘! 또한 천년의 비전은 평화와 평온입니다. 이는 젊음들에게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요 모두에게 곧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의 권고입니다. 미가. 4:4 그러나 그들은 저마다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입니다.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나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음이니라. 우리는 평화가 있는 곳에 있는 친우적 가족이 미리 계획하고 번영할 수 있음을 압니다. 이 평화는 또한 전능자에 대한 존경과 순종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 26:2-6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가 내 율례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때를 따라 비를 주리니 땅이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가 열매를 맺을 것이요내가 그 땅에 화평을 주리니 너희가 누울 것이며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쫓아내리니 칼이 너희 땅에 두루 다니지 아니하리라.

 

2) 바른 균형으로 조화적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조화로움은 법 앞의 화합과 평등을 말합니다. 로마인들은 시민들이 따르는 종교가 무엇이든 사적인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당시 시민들은 로마의 신들 앞에서 단결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의 공동/공통 총체적 통합의 초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헌법에서 그 연합은 성경이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아래의 군주에게서 발견이 됩니다. 왕하. 11:17 여호야다가 여호와와 왕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였으니 왕과 백성 사이에도... 대관식에는 저스틴 대주교가 마치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사독이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은 것처럼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대하십니까 아니면 하나의 종교적 행사로 끝나지 않겠는가라며 비믿음의 표현을 혹 자신에게 하고 있습니까? 분명함은 누가 왕좌에 오를 것인지를 놓고 싸우는 전쟁은 없을 것입니다. 선언자 담당 스피커는 '대영제국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은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에게만 합당하게 귀속되었습니다.'라고 완벽하게 밝혔습니다. 모두의 관계에서 곧 일치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법 앞의 평등입니다. 12:49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에게 한 법이니라. 이것이 우리가 영국 법률 시스템에 침입하는 모슬렘 샤리아에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샤리아는 또 다른 법이고 또 다른 법은 또 다른 믿음 체계에서 나옵니다. 성경은 그것을 제공하지 않으며, 당시 로마인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 17:7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스려 말하되 다른 왕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 정확히. 제자들은 요점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왕은 바로 그 만왕의 왕이신 한 분 예수 아래 계십니다. 아멘!

 

3) 마지막으로 그 번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섬기는 대상이 국민이라면 이는 마땅히 저들 삶의 윤택함을 위함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번영에 대해 말하는 곳마다 값진 모습들을 볼수가 있지만 특히 그 번영에로의 영적인 의미는 그분의 왕국을 앞당기는 의미로 더욱 좋은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소유의 사람에게서 그것을 보며, 반역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회개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칭찬합니다. 대하. 12:12 그가 스스로 겸비하니 여호와의 진노가 그에게서 돌이켜 그를 멸하지 아니하시고 유다도 형통하였더라. 유다에서 '일이 잘 풀렸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통치자들이 그 일이 일어나도록 보장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지혜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자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떤 정보의 이론은 더 큰 유기체로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유기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의 두뇌는 인간의 두뇌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알아낼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은 원하는 모든 법을 저들이 경험하는 육체로 통과시킬 수 있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항상 나타납니다. 그런 다음 실족하거나 마치 어린이의 표현처럼 드로잉 보드로 돌아갑니다. 인간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을 말씀으로 시작하신 창조주께 먼저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더 낫겠습니까? 이 일을 위해 기독도인의 바른 자세는 그룹을 짓는 것보다 기도의 무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특히 법무적 업무에 관계된 자들에 나아가 영생에 이르는 길을 묻는 대화에서 표현된 가장 큰계명을 고수하는 것과 함께 우리 지도자들에게 탐욕이 없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하라. 우리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들의 이웃인 우리를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번영시키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를 빈곤하게 만들거나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조치를 제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어리석음으로 그렇게 합니까? 우리는 '왕들과 여왕들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지혜를 구하는 것으로 돌아가야 될 것입니다.

 

3. 결론

모쪼록 찰스 3세 왕이 위로부터 온 지혜를 찾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함을 보여주며 자신은 겸손으로 단장하며 주님을 찾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정부도 똑같이 행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전 세계에 걸쳐 이 나라와 영연방 영역 및 영토들에서 삶을 영위하는 많은 백성들에게 평화, 조화 및 번영을 추구하도록 두손을 모아야 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또한 고국을 사랑하는 만큼 주님의 마음에 합한 의인을 찾으시는 그분의 눈빛을 바라보며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로 하오니 실천케 하옵소서. 우리에겐 그 왕 중의 왕 되시며, 주 중에 주님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매일같이 기도로 열심을 품고 부지런함으로 그의 나라를 위해 나아가십시다. 그분이 인도하시는 눈빛을 향하며, 할렐루야!

 

David Min/민경수 선교사, 본헤럴드 런던 리포터
David Min/민경수 선교사, 본헤럴드 런던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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