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176) 목자 없는 양(sheep without a shepherd)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목자는 양 떼나 소떼를 돌보는 자로서 성경시대에 팔레스틴(Palestine)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빌로니아, 앗수르, 이집트에서 목자는 대개 통치자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여러 직무나 특성을 겸하고 있다. 매우 오래 고대로부터 지배자들은 그들의 백성들에게 꼴을 먹여 줄수 있는 목자로 기술되었다. 함무라비를 비롯한 고대 서아시아의 많은 지배자들은 목자라고 불리었다. 로마의 로물루스 건국신화에서 로물루스는 신의 아들이면서 양치기의 우두머리다. 양치기들 사이에서 자라 리더가 된다. 팔라티노 언덕에 도시를 세웠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ROMA’라 불렀다. 플라톤은 도시국가의 통치자들을 양 떼를 돌보는 목자에 비유한다. 고대 동방에서 초기의 목자들은 신들이나 통치자에게 적용한 영예의 호칭이다. 그리스 문학에서 목자라는 용어는 왕을 나타내어 흔히 사용된다. 구약성경에서도 매우 흔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를 건너왔을 때 먼저 도착한 많은 무리들과 마주쳤다. 두 그룹의 표정이 정반대였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학수고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화색이 돌았을 것이다. 반대로 예수님은 그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겼다. 구약성경에서 목자 없는 양과 광야가 연결되어 나타난다. 마가는 이 사건을 구약성경과 연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모세처럼 그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며, 다윗처럼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제공한다.

 

1. 광야 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들

목양은 고대 사회에서 신이나 왕이 자기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베푸는 공의와 자비를 상징하였다. 구약과 후대 유대교 문헌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돌봄이나 지도자들의 돌봄을 의미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예수님은 광야에 목자 없는 양들의 목자가 되어 주셔서 왕국의 비밀을 베풀고 육신의 질병에서 자유케 하고,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처럼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배불리 먹게 하셨다. 다윗의 고백처럼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모세가 므리바에서 불순종한 연유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자격을 박탈당했다(27:12-14). 이때 모세는 후계자를 세워 달라고 간청한다. 후계자는 군사적 관용어다. 후계자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인도할 것이다. 그래서 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기 전에 군중을 100명씩 또는 50명씩 앉게 한 것은 목자, 즉 지휘관 없는 군중을 조직하고, 그들을 직사각형 식으로(6:40) 그룹별로 모이게 한다. 이는 질서 있는 형태로 그들을 먹이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또한 함축성 있게 그것은 이스라엘의 진영을 반영하고 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광야를 찾은 것은 휴식을 즐기기 위해서다. 마음 푹 놓고 쉬는 모처럼의 기회다. 그런데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탈이 나거나 불청객으로 휴가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제자들에게 이런 불상사가 찾아 왔다. 원인이 무엇인가? 여러 가지다. 휴가지에서 허리끈을 풀기도 전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불청객들이 진을 치고 있다. 얼이 빠졌을지 모른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무리들을 목자 없는 양으로 보고 불쌍히 여겼다. ‘목자 없는 양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구약성경의 비유적 표현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적보다 선한 목자, 곧 양을 먹이는 의 주제를 더 중시하고 있다.

 

약속된 종말론적 목자로서의

예수님

 

고대 팔레스틴(Palestine)의 양들은 우리에 가두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방어하도록 방치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보호, 목초지, , 은신처, 상처 받았을 때의 돌봄 등을 전적으로 목자들에게 의존하였다. 목자 없는 양의 모습은 이런 모든 혜택에서 제외된 모습이다. 목자 없는 양은 양육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버림받고 도움을 받지 못한다.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에는 양 혹은 목자의 모습이 광야와 연관되어 있다. 양들은 목자 없이 오랫동안 생존할 수 없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휴가차 광야로 왔지만 사실상 목자 없는 양을 찾으러 온 셈이 되었다. 이처럼 의존적인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방황하며 심지어 양우리를 눈앞에 두고도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기이하게 우둔한 동물인 양떼의 목자로 되어 주신다.

 

2. 목자 없는 양

목자 없는 양이라는 표현은 민수기 27:17과 에스겔 34:5에서 인용한 것이다. 구약의 두 본문은 모두 광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모세가 자신이 비록 광야에서 죽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지 않도록 후계자를 세워 줄 것을 간구하였다.

목자 없는 양의 광야 생활은 안전과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 영어의 ‘happy’발생하다를 뜻하는 ‘happen’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행복하려면 좋은 일을 경험해야 하니 틀린 말이 아니다. 인생의 광야에서 행복하려면 목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편 23편의 노래처럼 목자의 주된 임무는 양들을 음식과 물로 이끌고 위험에서 지키는 것이다.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해를 당하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백성들이 멸망해 가는 것을 개의치 않는 삯꾼 같은 목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양들이 부족함이 없도록 먹이는 참 목자이시다. 종말론적 목자로서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을 위해 음식과 식탁 친교를 제공하므로 이 이적 기사가 그리스도론적 의미로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휴가가 망쳐졌음을 직감하고 난색을 표명하였을지 모른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을 주인 없는 애완견처럼 외면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무리에게 시달렸다. 무리 때문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더 많은 휴식을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 그들을 목자 없는 양으로 맞이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친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으로부터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는다.

예수님을 향한 종교지도자들이 품은 적의와 부패한 헤롯 안디바의 선지자 요한의 살해 사이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었다. 마가는 그렇게 옳지 못한 목자들을 대신하여 새로운 목자이신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떠오르게 한다. 새 출애굽시대가 열린 것이다. 새로운 목자의 등장을 알린다.

 

3. 새 출애굽의 선한 목자

에스겔 34장의 목자상()에 대한 언급은 광야와 관련이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목자 되어 주실 것을 선언한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백성의 목자가 되는 다윗 계통의 왕에 대해 말한다. 에스겔서는 다윗 왕이 이스라엘을 치리하던 시대보다 수백 년 후에 기록된 선지서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관한 기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행할 때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왕이 되실 메시아가 와서 다스린다는 예언이다. 예언한 어린 양의 역할을 가져온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엄숙한 부분들 중의 하나다. 불성실한 목자들에 대한 비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실상 한명의 목자를 임명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비록 지금은 그들에게 참 목자가 없으나 장차 하나님께서 내 종 다윗이라는 충성스러운 한 목자의 도래를 약속한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어 주실 때 그들을 누워 있게 할 것인데, ‘내 종 다윗에 해당하는 새로운 목자가 오게 되면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라는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

오병이어의 가적이 일어난 광야는 목자이신 하나님이 내 종 다윗으로 알려진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평화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은 그 땅에서 쫓아내고, 즉 병을 고치고 그들로 빈들에서 쉼을 얻게 될 것을 이루는 성취 사건이다. 마가는 제자들이 생각한대로 자신들의 휴가가 망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스겔이 예언한 광야에서 참된 평강과 안식이 이루어졌음을 증거 한다. 다윗은 목자이면서 왕이다. 다윗은 분명히 백성들을 인도했다. 백성들은 그의 양떼였다. 목자라는 왕에 알맞은 칭호는 회피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실 다윗 왕가에 속한 미래 통치자에 대해 예언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목자 아래 한 백성이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어린 양은 다윗가의 메시야다. 예수님은 신약성경에서 여러 번 목자로 칭함을 받는다.

예레미야에서 목자는 정치적 혹은 군사적 지도자를 지칭한다. 목자들은 신실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손수 그 직책을 취하신다. 더 좋은 목자를 지명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재결합시킬 한 목자를 세우실 것이다. 메시야 혹은 다윗으로 묘사되는 목자는 스가랴 13:7에서 특히 포로시대 이후에 강조되어 있다. 죽음을 다가오는 구원의 시간에 대한 전조를 알려주는 이 구절을 스가랴 12:10과 연관 짓고 있다. 악한 목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한 목자가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로써 구원의 날이 도래한다.

 

직접 목자의 직책을

취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특히 왕이 목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잘 보살피지 않았음으로 자신이 백성을 다시 직접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이 드디어 광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그들에게 예수님이 목자가 되어 주신다. 오병이어 사건은 목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목자가 바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선한 목자이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예수님이 양을 돌보시는 일은 에스겔 34:15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돌봐 줄 것을 약속한 말씀대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목자가 되어 주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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