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175) 전도여행(Outreach)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제자들이 둘씩 여행을 떠날 때 오늘로 말하면 여비나 지도나 나침판은 물론이거니와 기본적인 품목조차 일체 지참하지 못하였다. 마가는 전도여행을 취재하면서 어떤 품목은 소지할 수 있고 없고 같은 규정보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스토리를 더 중요시한다. 양식이 없이 여행하고 돈이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빈손으로 구걸하면서 전도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을 보내신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여행하며 전도하라는 것을 암시한다. 뭐가 있느냐 없느냐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빵이 없고 돈이 없고 그렇다고 구걸할 수 없으니 하늘의 공급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행간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조건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라는 부정명령에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 규정도 있어야 하고, 형식도 갖추어야 하고, 시스템도 있어야 조직이 잘 돌아간다.

매뉴얼이 있으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의도하신 것은 우리의 손에 있고 없고에 따라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전도가 되는 것이요, 귀신이 쫓겨나는 것이요, 병이 낫는 것이다. 이렇게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우리로서는 빵이 없고 돈도 없고 옷이 없는 것이 더 빠른 길이다. 이렇게 배낭조차 없고 돈도 빵도 없으니 엘리야처럼 하나님께서 예상치 않는 방법으로 공급하신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자신의 본연의 의무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만일 본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서 잘까 하는 부차적인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원초적인 사명에서 벗어나기 싶다.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나 부드러운 옷이 아닌, 선지자 요한을 보러 가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초점을 주님께 맞추고 그분만 바라보아야 한다. 중심과 핵심을 잘 집어야 한다.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1. 여행에 필요한 소지품

전도 여행을 위해 보냄을 받는 제자들은 사도들이다. ‘사도보내심을 받는 자또는 위임받는 대리인(agent)’을 뜻한다. 유사한 히브리어는 상거래의 대리인(agent)에게도 사용되었다. 보내심을 받는 제자들은 자신을 보낸 예수님의 임무를 정확하게 대리(substitution)하는 만큼 보낸 사람의 권위를 발휘하여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칠 뿐만 아니라 보낸 자이신 예수님처럼 전도사역을 해야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렌트카를 빌리거나 관광버스를 동원하여 이동하지 않았다. 낙타를 이동수단으로 삼고 여행을 하지 않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허용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지팡이와 신고 있는 신이다. 선사 인도유럽인들은 유목민으로 천막에서 살았다. 천막은 튼튼한 나무 기둥을 땅에 단단히 꽂고 그 위에 가죽을 지붕으로 올려서 만들었다. 이때 기둥은 힘찬 발걸음, step을 딛듯이 땅에 세게 꽂아야 한다고 해서 stebh라고 불렀다. stebh는 고대 영어에서 땅에 깊숙이 꽂아 몸을 지탱하는 조그마한 기둥, 즉 지팡이인 staff가 된 것이다.

E. Power는 마가복음에 용납된 지팡이는 걸어가는 데 도움을 주는 막대기 또는 직무의 상징인 목자가 휴대하는 구부러진 막대기이지만 마태와 누가가 금지하고 있는 지팡이는 보호를 목적으로 한 목자의 몽둥이, 즉 호신용 지팡이라고 하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에게는 두 종류의 지팡이가 있다. 하나는 땅을 더듬는 지팡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인도하는 두 딸이다. 오이디푸스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한 두 딸과 재회한다. 제자들에게 지팡이는 이동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이다. 이동의 편리성이나 가벼움에 대한 강조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존하게 하는 데 포커스가 있다. 터키 이스탄불의 토프카피 궁전 박물관에서 모세의 지팡이'라는 설명판이 붙은 전시물을 관람한 사람들은 대부분 실망한다. 영화 십계'에서 모세 역을 열연했던 Charlton Heston은 자신의 키만큼이나 길고도 굵은, 신비스러운 형상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러나 토프카피 궁전에 전시된 지팡이는 1m 미만의 가느다란 막대기에 불과하다. 모세가 가진 볼품없는 막대기가 하나님 손에 들렸을 때, 그 마른 막대기는 능력의 막대기가 되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인 까닭이다.

12제자는 법률적 개념으로 예수님의 지정된 대리인들’(appointed representatives)이다. 법률 형식으로 12제자의 선교의 배후 배경이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여러 마을로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그 증거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고치는 것처럼 제자들도 동일하게 예수님의 대리인(agent)의 자격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역을 감당한 것처럼 제자 또한 돈으로 때로는 세상의 자원으로 사명을 감당해서는 안 된다. 양식이 넉넉하고 배낭에 생필품이 가득하고 전대에 여행 경비가 두둑하고 두 벌 옷으로 걱정할 것이 없는 여행객을 생각해 보라. 생존에 필요한 빵과 돈과 옷이 없는 여행객과 비교해 볼 때 기도가 많겠는가? 강하겠는가? 굳이 새벽을 깨워 기도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은 기도의 야성(野性)을 무디게 만들 것이다. 억지로 가난하게 될 필요는 없지만 예수님이 특별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들로서는 예수님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위임받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 일을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 그들이 먹고 쓰고 자는 것에 에너지를 소모해서는 안 된다.

 

2. 신은 신으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여행 품목에 대해 디테일하게 말씀한 것은 일반화될 수 없고 영구적인 합법성(validity)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특별한 위임(commission)과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고대와 특히 유대교에서 환대(hospitality), 즉 후한 대접은 매우 귀한 것으로 평가했다. 제자들의 전도파송은 명백하게 단기간(a short-term one)이다. 보통의 환경에서 손님을 대접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몇 주 정도일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을 신고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 어디서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을 것인가? 텐트를 만드는 기술을 가진 바울처럼 돈을 벌어가며 선교하는 자비량 선교를 할 것인가? 아니면 여행 경비가 넉넉하여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전도자 자비로 숙박을 해결하며 여행할 것인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자원을 공급받을 것인가? 전도자는 하나님의 공급을 기대하며 그 일을 할 때 그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공들여 준비할 필요가 없다. 굳이 말씀하지 않아도 으레 신발을 신고 갈 것인데 언급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만화영화 '장화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주인공 푸스는 고양이인데도 사람처럼 장화를 신고 나온다. 푸스에게 신발은 자부심을 의미한다. 이처럼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에 그치지 않고 신발 주인의 개성과 욕구를 드러내는 도구가되기도 하고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초기 몇몇 회당과 마찬가지로 초대교회들은 가정에서 모이는 것을 가장 실제적이라 생각했고 공동체원들의 쉼을 제공하는 베이스(base)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실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들에게 신을 신고 지팡이만 손에 들고 나가라는 말씀은 첫 유월절 식사를 할 때 모습을 상기시킨다. 12제자에게 주신 선교명령은 광야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지시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한 벌 옷으로 40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먹고 마시고 자는 모든 의식주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고 공급해주신 것처럼 제자의 전도여행 역시 하나님이 공급하심을 믿고 나가야 함을 상기시켜 준다.

 

의식주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라

 

3. 두 벌 옷을 입지 말라

마태복음에 소개되는 선교강화에는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 뿐만 아니라 신이나 지팡이조차 소지하지 않도록 금하고 있다. 배낭 혹은 주머니조차 몸에 지니지 말라는 것은 여행에 짐을 최소화하라는 규정이 아니다. 가벼운 여행을 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배낭이 없으니 여벌의 신발이나 옷을 가질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의도는 이동하기 가볍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도를 하는 사람이 먹을 것이나 잠잘 것 때문에 까다롭게 굴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여행을 뜻하는 ‘travel’은 노고를 뜻하는 ‘travail’과 같은 어원이다. 예나 지금이나 집 떠나면 고생이다. 과거 여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순례자, 유목민, 군인 그리고 바보들뿐이었다고 한다.

누가 역시 지팡이를 금지 품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마가는 신과 지팡이는 허락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신은 분명 여벌의 신을 말할 것이다. 또한 금지품목으로 지팡이는 마가에서 말하는 지팡이가 아닌 호신용으로 지팡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벌 옷과 주머니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가?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말씀한다. 일꾼은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전도자들이 제공하는 봉사에 대한 보수로 환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필수적인 생계유지는 기적이 아닌 적절한 환대를 통해서 채워주시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다.

마가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금할 품목을 네 가지 말씀하신다. 양식, 여행 동안 식량을 보관하는 주머니, 돈을 넣고 다니는 옆구리에 차는 지갑에 해당하는 전대, 그리고 여행 동안 갈아입기 위해 필요한 여분의 옷 한 벌조차 지녀서도 안 된다. 전도여행에 과한 지침은 선교를 위한 특정한 훈련이다. 그러므로 이 훈련을 단순하게 교회의 전도나 선교의 모든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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