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70) 너는 내 아들이라(You are my Son)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그레고리 E. (Gregory E. Lang)이 쓴 우리가 너를 선택한 이유라는 책 페이지를 열면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은/ 네가 우리 가정에 더 많은 사랑을 가져다주길 원해서란다.’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은/ 너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란다.’ ‘내가 너를 선택한 것은/ 우리가 함께 살면 정말 재미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의 가족에 더 많은 사랑을 가져다주길 원해서일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삼으신 것도 우리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일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가 함께 살면 정말 기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양자됨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자신을 언제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르셨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에게 담대하게 나아갈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다.

시편 2:7에서 시인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선언을 한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성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강조한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왕국의 왕으로 통치하고 통치하도록 임명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오늘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선언은 이 관계가 성립된 특별한 순간이 있음을 암시하며, 지상에서의 예수 사명의 중요성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그분의 역할을 강조한다.

 

1.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양자

구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은 다윗의 나라와 결부되어 있다. 다윗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로 불리웠다.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해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다윗의 언약을 바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 사무엘하 7:14에 발견된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 영원한 왕조를 세우실 때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기름을 부은 양자로서, 왕은 국가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접근할 수 있었다. 고대 근동의 많은 지역에서 왕과 그의 주요 신 사이의 관계는 부모-자녀 관계로 묘사되었다. 역대기 저자들은 야훼와 다윗 왕조의 밀접한 유대관계 때문에 다윗의 왕좌를 하나님의 왕국으로 지칭할 수 있다.

구약에서 다윗의 뒤를 잇는 왕과 야훼와의 특별한 관계는 왕에 대한 시편들에 잘 나타난다. 예를 들면 시편 2편에서 왕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고, 하나님의 양자이다. 히브리서는 시편 2:7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야훼의 말씀을 양자의 어구로 이해한다. 채퍼먼(Chapman)은 이런 히브리서의 입장을 예수님의 다윗 계열의 메시야 후사, 즉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대제사장 직분도 함께 주셨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에 의하면, 양자를 삼는 사람이 양자로 들어오는 자에게 네가 내 아들이다라고 말하였다.

메시야에 대한 여러 인용 구절이 다윗 왕조에 대한 것이자 메시야에게 적용되어 왔다는 것이 눈에 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왕의 이미지는 시편 2편에서 발견된다. 아마도 이것은 원래 하나님의 택하신 성소, 시온에서 하나님의 부섭정으로 임명받은 왕을 묘사하는 대관식 시편이다. 야훼는 내가 나의 왕을 시온에 세웠다고 선언하신다. 또한 그에게 보증을 주신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선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 하나님과 독특하고 특별한 관계를 갖고 계시다는 생각을 강조한다. 이 선언은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확립하고 만왕의 왕으로서 통치할 그분의 권리를 확증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시고

만왕의 왕으로 통치권을 가지신

예수님

 

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은 왕이시며 대제사장이다

히브리서 1:5에서, 시편 2:7은 메시야의 하늘에서 통치를 확증하기 위해 시편 110:1과 함께 연결해서 사용하는 본문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이렇게 그분의 고난과 죽음과 함께 그분의 승천과 즉위와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증거를 위해서 저자는 시편 2:7에 호소한다.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천사들보다 탁월하심을 뒷받침하기 위해 1:5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시편 2:7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과 하나님의 우편에 만유의 주와 왕으로 앉히신 것을 말한다.

히브리서 1:2-5에서 시편 2:7-8이 언급되는 것은 예수님의 미래 통치에 대한 왕권을 지지하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실 때 대제사장이 되신 것을 지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개념적으로 이것은 또한 창세기 1-2장과 유비를 갖고 있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다. 저자는 시편 2:7을 혈통이 아니라 임명의 선언으로 정확히 해석한다. 그는 이 본문을 인용하여 대제사장이신 아들이 보좌에 오르고 찬사를 받은 결정적인 요인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증거임을 증거하였다(1:5). 그 인용은 왕권적인 능력과 권위를 갖는 아들의 서임을 언급한다. 시편 2편에서 우리는 하나의 대관식 공식 어귀인 것으로 보여지는 선포가 들려지고 있음을 듣게 된다.

1:5 상반절에 시편 2:7에서 인용한 반면에 하반절에는 사무엘하 7:14을 인용한다. 역사적 상황에서 다윗 계열의 왕을 향해 말하는 두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적용되고, 이런 사실은 그분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남을 보여준다. 두 구약 본문은 이미 유대교 문헌과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메시야의 왕권과 관련하여 해석되었다. 그리고 상속자로서 예수님을 두 예언, 곧 시편 2:7과 사무엘하 7:14의 성취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 두 본문은 왕을 하나님의 아들로 가리키며,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1세기 유대인들이 종종 메시야를 주목하는 본문으로 이해했다.

역사적 상황에서 다윗 계열의 왕을 향해 말하는 두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적용되고, 이런 사실은 그분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남을 보여준다. 두 본문은 창세기 1:16-28에서 파생된 아담의 왕권 주제를 다양하게 전개시킨 중요한 예언들 가운데 하나다. 이 예언은 성육신이 아닌 예수님의 죽음과 승천을 통해 왕적 대제사장으로 등극을 가리킨다.

역사적 문맥에서 시편 기자는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에게 복종하라고 경고한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계열의 왕을 대적하여 괴롭혔다. 그러나 이 왕을 거기에 세우신 것은 야훼 자신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높이 올리심으로써 세계 만물의 상속자로 정하셨다. 물론 적들의 저항은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원수들은 그리스도가 상속자로 정해짐으로써 항복하기 시작한다.

 

3.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한다.

저자는 이 시편을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 적용한다. 예수님은 땅 끝까지다스릴 아들이시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들을 성취하실 분이다. 이는 온 세계의 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담에게 주어진 미션의 완성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 이관된 온 세상이 그들의 후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이다.

저자는 다윗의 대를 이어 온 세계를 다스릴 분에 합당한 칭호로서 아들이라는 명칭을 강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결코 천사들에게 아들이라는 호칭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 유일하게 합당하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는 말이 다윗에게 적용될 때, 이 말은 그의 대관식 기념일을 가리킬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오늘은 언제인가.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날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목 박히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높인 것을 공고하신 날이다 저자는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예수님이 승천하신 대제사장으로 메시야적 왕의 자리에 오르신 것과 연결시키고 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야훼께서 취소할 수 없는 왕조를 약속하시는 다윗과의 언약이 사무엘하 7장에 깊숙이 자리한다. 저자는 왕직과 관계된 본문을 예수님께 적용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사람의 아들이 항상 다윗의 보좌에서 다스릴 것이라는 언약의 약속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신다. 아들 됨은 다시 통치와 다스림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을 지을 것이며 그 나라의 보좌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약속이다. 그가 다윗을 계승할 아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이 아들은 그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특별한 약속으로, 이 이 약속은 솔로몬 치세 시에 즉시로 성취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구절을 메시야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또한 "오늘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선언은 이 관계가 성립된 특정한 순간이 있음을 암시하며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선언은 또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에 대한 생각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예수를 그의 아들로 선언하신 것은 구원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자 그의 구원 계획의 실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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