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64) 하늘 보좌(Heavenly seat)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고대 이스라엘의 대관식은 1, 2부로 진행된다. 1부는 성소에서, 2부는 왕궁이다. 성소에서 옥새가 수여되고, 기름을 붓고, 환호가 끝난 뒤에는 모두 성소를 떠나서, 새 왕이 왕위에 앉아 있는 궁전으로 간다. 예를 들면 솔로몬과 요아스이다. 이러한 행위는 권력의 인수를 표현한 것이다. ‘왕위에 앉는 것통치권을 잡는다는 표현과 동일한 의미다.

그리스도는 지금 왕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이는 죄를 속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것, 그리스도가 성도들과 같은 사람이자 형제로 완전하게 공감하는 것, 그리고 신적 전능하심이 결합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보좌와 죽임 당한 어린 양의 보좌는 동일한 보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지위적인 위엄에 있어 천사들보다 무한히 탁월하시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땅의 장막은 하늘 성소의 한쪽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하늘 보좌로의 왕적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등극을 상징한다. 그래서 위대한 왕은 찬송이 울려퍼지는 시온에서 뿐만 아니라, 온 땅에 걸쳐 다스린다.

그리스도의 지위는 단지 보좌 우편에 있는 지위가 아니라 그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의 우편에 있는 보좌의 지위이다. 하나님 우편에의 좌정은 초월적인 위엄에 관한 함축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하늘 성소에서 직무를 수행하신다는 의미를 상기시킨다. 주요한 암시는 시편 110:1에 대한 것이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왕이 기름부음 받은 대제사장이라는 스가랴 6:13에 대한 부차적인 암시를 의도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아들의 보좌이다. 그리스도는 부활과 승천의 결과 하나님의 하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신 왕적 대제사장이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이 통치 보좌는 단순한 왕궁이 아니다. 그것은 성소와 참 장막이기도 하다. 일부 학자들은 장막이 하늘 전체를 의미하고, 성소는 가장 안쪽의 하늘의 의미한다고 해석하지만 두 표현은 것의 같은 뜻이다.

 

1. 그리스도는 왕적 대제사장으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

유대교 아론 제사장이나 레위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앉는 일이 없었다. 그들이 성소의 의무를 다하기까지 계속 서 있어야했다. 제사장들은 서서 섬겼을뿐만 아니라 매일 서서 섬겼다.’ 그들은 어제 제사를 드렸는데도 오늘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하며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율법이 존속하는 한 그들은 매일 서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이렇게 그들의 서 있는자세는 그들의 일이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벽한 왕적 대제사장으로서 그 자리에 앉았다’. 앉음은 완성과 왕위를 모두 의미하는데, 구약 전통에서는 다윗계 왕만이 앉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이 요점은 서언에서 왕이신 아들과 관련하여 언급하였고, 히브리서 8:1에서는 대제사장 주제에 직접 적용되어서 반복된다. 이 개념은 10:1212:2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왕적 대제사장으로서 제대로 완수된 사역을 가리킨다. 이 개념은 시편 110:1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의 희생이 죄를 해결하기에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앉아 계신다. 이는 그의 대제사장의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표시다. 제사장들의 임무는 결코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결코 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단번에 제사를 드리시고 앉으실 수 있다. 그의 일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멜기세덱 서열의 유일무이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만이 앉아 계신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반복할 수 없는 완전무결한 단 한 번의 제사에 의해 거룩하게 한 자들로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대신한 십자가상의 자기 몸 제사는 다른 제사를 종결시키는 제사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으로 드린 단 한 번의 제사가 죄에 대해 궁극적 효력을 지닌다는 것과, 또한 지금은 감췄지만 곧 드러날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 둘 다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과 의식들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왕적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야 한다.

대제사장으로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단순한 자리가 아닌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왕적 대제사장으로서 죄와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님과 더불어 다스리신다는 사실은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고 그분의 사역이 끝났음을 확인해 준다.

 

대제사장으로 승천은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나고

땅의 사역의 종결을 의미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다는 데서 그의 제사의 가치와 그의 인격의 품위가 더욱 예시되고 있다. 십자가의 수치에서 그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로 높임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들은 더욱 더 확신을 가지고 그의 대제사장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능력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그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왕으로서 다스린다는 뜻을 함축한다. 그리스도는 속죄 사역을 마치셨으므로, 더 이상 제단에 서 있지 않으신다. 그분은 승천하여 자신의 피로써 화해한 아버지의 오른편의 은혜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더구나 그의 앉으심은 높은 곳에의 앉으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여 이어서 하늘을 통과하신 일, 곧 승천한 것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완성이다. 제사장들은 앉아 있는 동안에 그들의 임무는 수행하지 않았는데, 히브리서에서 앉아 있음이 그리스도의 제사에 담긴 궁극성(finality)를 가리킨다는 점을 나타낸다. 칼빈(Calvin)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라는 말을 그리스도의 왕국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해한다. 승천을 통해 하늘의 보좌에서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순종으로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영광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가 가진 것으로,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아들로서 누리던 영광이었다(17:5).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은 창조 내에서 피조물을 통해 보여진 만큼만 알 수 있다.

 

2. 그리스도는 왕적 대제사장으로 하늘 보좌에서 통치한다.

히브리서를 여는 첫 단락에서 저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있는 존귀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그분이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힌다. 다시 말해서, 그 분은 대제사장으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왕이다. 저자는 8:1에서 레위직 제사장직에 대한 그리스도의 왕적 대제사장으로서의 우월성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대제사장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은 저자의 논증에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머레이(A. Murray)는 그리스도가 왕이시기에 하늘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분의 위치는 이제 아무도 것도 방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곁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완전히 소유하고 다스릴 수 있는 등위, 즉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의 위치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러한 왕적 대제사장을 가졌다는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알아야 할 핵심 사항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완성한 후, 하늘 보좌에 오른다. 여기서 행위가 특별하다. 이 행위는 죄를 정결케 한 사건 이후에 발생한다. 이것은 즉위의 중요성의 핵심이 죄를 정결케 하는 것에 있다는 암시를 준다. 속죄일에 죄를 정결케 하는 대제사장의 사역과 왕으로 보좌에 등극하는 것을 암시한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곧 그의 거룩한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다는 선언은 바로, 그가 우주의 통치자, 만왕의 왕이라는 선언에 상당하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단 한 번 언급한다. 부활보다 하늘 보좌에 앉은 것을 강조한다.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이 서서 제물을 바치는 것과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적 사역을 마치고 주권적 통치를 이행할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오른쪽에 그의 자리를 잡은 것으로 묘사된다. 메시아의 왕으로서의 역할은 그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능과 결합되어 있다. 왜냐하면 저자는 이 책의 주된 강조점 가운데 하나를 통해 예수님은 죄를 정결케 하는 제사장적 사역을 마치고 높아지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았음을 확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우편이란 표현은 명예, 찬양, 권위, 권능을 표현하는 하나의 비유이다.

 

희생적 사역을 마치고

왕으로 등극하신 예수님

우편이란 개념은 탁월한 능력이나 궁극적인 영광을 대변한다. 그것이 역시 위대함이나 호의의 파생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적용될 때, 시편 110:1은 예수님의 메시야 됨, 부활과 승천을 통한 변호, 심판자로서의 역할, 주되심, 그리고 신자들을 위한 그의 중보를 지원한다. 보좌 우편에 앉는다는 것은, 그 왕국에 있어서 지위와 위엄 및 권세에 대한 상징이다. 왕의 우편 자리는 왕국에서 가장 위엄있는 지위에 대한 상징이다. 우편에 앉았다는 것은 지휘(imperium)가 아니라 통치(dominium), 즉 종말론적 구원의 통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동시에 중보’(intercession)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왕이신 아들이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 앉으셨다는 선언은 시편 110:1에 대한 확실한 암시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 옆에 앉으실 분을 언급하는 유일한 성경 본문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과 완전히 같은 분은 아니지만 하나님 자신이다. 신인(God-man)과 왕적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은 높아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자기 아들 중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 그 의미는 그들로 그의 최고의 대행자들이 되게 하여 달라는 것이다. 왕의 보좌 우편에 앉는 자는 왕과 함께 통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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