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69) 장래 좋은 일(the good things that are already here)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호사다마(好事多魔)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거나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의 다음 구절에서 나왔다: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魔].” 히브리서 저자는 장래 좋은 일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도착함으로 주어졌다고 선언한다. 여기에 우리는 두 가지 것에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직분이요 다른 하나는 직무다. 전자는 그리스도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다. 후자는 그 직분을 가지고 그가 수행하신 직무는 장래 좋은 일을 분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백성을 위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성소에 들어가므로 성취된다. 우리의 노력으로 좋은 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장래 좋은 일이 하늘 성소에 계신 대제사장으로 공급되는 것을 믿는다. 이것은 희망사항이 아니다. NIV는 장래 좋은 일이 이미 왔다’(came...here)고 번역한다. ‘오다라는 동사가 대중 앞에 나타남이라는 뜻으로 쓰일 수 있지만, 문장 앞에 나올 때 목적지 도착을 자주 가리킨다. 그리고 구약의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들어가는 연례 의식으로 상징되는 행위에서 대제사장 그리스도가 왔다’(came)는 시간을 미래에서 현재로 관심을 돌린다. 그의 대제사장 직분에 장래 좋은 일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here and now), 현재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강화한다.

 

1. 장래 좋은 일은 이미 일어났고 일어날 것이다

먼저 대제사장 그리스도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로버트슨(Robertson)은 역사적 무대에 등장으로 생각하고, 이것이 역사적 중대사이자 핵심으로 여긴다. 히브리서는 대제사장 그리스도가 도착한 곳은 땅이 아니라 하늘이라고 진술한다. 그는 하늘 성소에 도착하였다. 그의 도착은 의기양양한 나팔 소리와 함께 선언되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들어가신 것은 옛 법령 하의 속죄일에 했던 것처럼 스스로 괴롭게 하는 금식의 날이 아니라, 기뻐하고 노래하는 날, 곧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왕적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승천을 축하하는 날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적인 사실로 여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는 이중적인 이원론이 존재한다. 하늘과 땅의 이원론, 즉 실제적인 하늘 세계와 잠정적인 지상 세계다. 그리고 종말론적 이원론이 존재한다. 이 세대와 오는 세대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장래 좋은 일의 성취를 나타낸다.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론적인 좋은 일들이 이미 시작되기는 했지만, 하늘 도성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이미와 아직’(already and not yet)의 긴장은 히브리서 전체에 걸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땅에 있는 신자들은 지금 어떤 면에서 하늘의 실재와 동일시되고, 또 하늘의 실재들을 경험하고 있다.

영어의 행복하다(happy)’발생하다(happen)’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행복하려면 좋은 일을 경험해야 하니 틀린 말이 아니다. 히브리서 12:22너희가 이른 곳은 하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선포한다. 비록 몸은 땅에 있지만 우리는 이미 하늘의 시민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장래 좋은 일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 도착함으로 이미 시작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가 다시 오실 때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신자들이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것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이 영역들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충만하게 여기에 임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왔다는 논의하는 가운데 나타난다. ‘장래 좋은 일은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적이면서도 미래적이다. 예수님은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왔다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성취를 나타낸다. 현재는 성취의 때이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이미 장래 좋은 일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종말론적인 좋은 일들을 앞당겨서 경험하고 있다.

 

2. 예수님은 지금 하늘에서 좋은 일을 분배하신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종말론적이 좋은 일이 이미 시작되었고,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지만,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즉 재림할 때까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도래에 대한 보증을 받게 되었다. 이 보증은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의 피로써 하늘 성도에 들어간 왕적 대제사장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의 가장 현저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했다”(12:28)는 선언이다. 귀신 들린 사람이 고침 받은 사건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증거이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 통치의 실현은 아직 미래이나, 그 임박성이 이미 현재에 그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 가운데서 두 단계로 역사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앞으로 모든 인간의 주권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대신 될 때 다니엘이 예언한 형태로 올 것이다(yet to come).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사람들 사이에서 역사하기 위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지금 임했다(has now come)는 것이다. 예수님의 인격과 활동에서 미래는 이미 실현되었다.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와 그 도래는 현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관성의 중심은 예수님이다.

 

has now come

yet to come

모세 시대의 대제사장과 비교해 볼 때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직분은 하늘 성소에서 더 나은 제사를 제공하며 따라서 완전한 죄 용서, 영원한 구원, 정결하게 된 양심,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섬길 수 있는 권리를 가져온다. 옛 시대가 새 시대로 대체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더 좋은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가르켜 주는 표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왕적 대제사장직을 통해 새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는 개혁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분은 하나님 앞으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들어갔다. 장막이 더 크다라는 것은 그 위치가 우월하다는 점을 가리킨다. 땅에 있는 장막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장막이다.

이 땅의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이 땅의 성소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하늘의 성소로 들어갔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왔다라는 동사는 히브리서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는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번 사용되었다. 그러나 장래 좋은 일은 이제 부분적으로 시작되었고, 내세의 능력을 이미 맛볼 수 있다.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가 행한 위대한 사역은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므로 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왕적 대제사장으로 자신의 피로 성소와 참 장막에 들어가 그가 이루신 속죄의 완성에 대한 증거를 드리신다. 이 모든 내용이 그가 성소에 들어갔다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자신의 피를 들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다. 여기서 피는 제물로 드려진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을 나타낸다.

 

3. 우리는 지금 하늘에서 분배하는 좋은 일을 경험한다

인간은 본래 언제나 좋기만 할 수는 없다. 모든 부분에서 신경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자신의 시각을 언제나 일관되게 끌고 갈 수도 없다. 그래서 좋은 의도와 좋은 일을 하려는 의지가 꺾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좋은 의도를 갖고 좋은 일을 하는 건 그리스도인이 계속해야 할 과제다.

좋은 일은 이 땅의 보화나 도덕적 행위를 뜻하지 않는다. 이 좋은 것들은 우리의 하늘의대제사장에 의해 분배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가리킨다. 위로부터 온 종말론적 선물들이다. 아들을 주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 좋은 일은 메시야의 시대를 매개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하늘 성소에서 다스리는 왕적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좋은 일을 행하신다. 그리스도인은 좋은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자가 아니라 착하고’ ‘선한일을 행하는 자다. 라틴어 경구 중에 좋은 것을 하기보다는 나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뜻의 ‘Primum non nocere’이 있다. Hippocrates가 환자를 진료할 때 사용했던 표현이다.

Hippocrates, 사진 출처 : 위키백과사전
Hippocrates, 사진 출처 : 위키백과사전

그리스도인은 다르다. ‘나쁜 일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자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어진 좋은 일을 즐기는 자다. 그래서 좋은이라는 말은 되다가 아니라 하다와 어울린다. 어제 착한 일을 했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좋은 일을 하고 있음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사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일을 하고 있을 때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과 다르다. 이미 그분이 우리 속에 좋은 일을 행하셨고, 좋은 일의 열매를 맺도록 도우신다.

그리스도는 장래 좋은 일, 즉 메시야적 성취의 질서에 속하는 모든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이다. 그리스도가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성소에 도착했다는 묘사는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또 하나의 차이를 보여 준다. 전자는 장래 좋은 일을 예시한다. 후자는 이미 성취된 사실에 근거한다. 그리스도가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을 성소에 도착하였기에 그는 그 결과로 즉시 많은 좋은 것들을 분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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