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71) 영광과 존귀(Glory and Honor)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메소포타미아의 세계관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비교하면, 이스라엘의 세계관에서 인간에게 부여한 지위는 매우 높았다.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혹은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대표로서 하나님 소유의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왕이요 제사장이다.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고, 하루살이와 같이 덧없는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생각을 시편 8편 시인에게 경외감을 주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 매우 가까운 찬양 언어를 만들었다.

창조주가 만드신 피조물에 대한 인간 지배의 주제는 아주 아름다운 시편 8편에서 반향된다. 시인은 천체를 지으신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실제적으로 관심을 가지시며, 더욱이 하나님의 우주 관리에 그들을 이끌어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것을 지배하도록 하신 것에 대해 놀라고 있다. 시편 8편은 사람이 야훼께 간청하고 야훼를 찬양함으로써 영적 세력을 정복하게 된다고 천명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1. 온 땅에 대한 주권을 가진 영광의 관을 쓴 왕

시편 8편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나 다스리다정복하다같은 단어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시편 기자는 하늘의 놀라운 창조물을 지켜본 후에 그 신적 본체의 최고의 구현을 보기 위해 땅으로 눈을 돌린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람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고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고 다스리게 하신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용어는 여기에 나오지 않지만 용어의 의미는 분명 존재한다. 사람은 땅에서 하나님의 왕권을 대변한다. 시편 8편은 구약 성경 전체에서 창세기 1:26-28을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가장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그것을 분명히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켜 그리스도를 마지막 때 이상적인 아담의 성취로 보고 있다. 시편 8편은 아담이 입은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 나라 의회의 구성원들과의 유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담의 지위는 온 땅에 대한 주권을 가진 영광의 관을 쓴 왕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창세기 1:26-28은 언급하면서 시편 8편은 하나님의 형상 개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저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즉 시편 8편은 인간이 입은 하나님의 형성을 하늘 의회의 구성원들과의 유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의 지위는 온 땅에 대한 주권을 가진 영광의 관을 쓴 왕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시편 8편은 왕의 대관식과 관련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아담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묘사되어 있다. 아담에게 씌워진 영광과 존귀는 시편 145:12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야훼의 왕관을 언급한다. 창조와 관련하여 영광은 시편 104:1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동일하게 보통 왕의 것으로 여겨지는 품격이다. 이 대관식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더럽히고 그 자원들을 남용하라는 면허를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의 영역에서 대리통치자(부섭정)로 불림 받은 것이다.

왕적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첫 묘사가 히브리서에서 메시야적 아들로 해석된 시편으로부터의 인용구로 도입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어가 모국어였을 저자가 시편을 인용할 때 그리스어 형태로 인용했을 것이다. 시편 2편은 이상적인 아담에 관해 서술한다. 아담에 대한 초기 묘사를 하는 점에서 히브리서 2장과 시편 8편은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보는 히브리서 초기 논의로 곧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주목함으로써 한층 강화된다. (Beal)은 창세기 1-2장의 패턴과 같이 아담이 처음에는 으로 묘사되고 다음에서 하나님이 거니시는 성소에서 다스리고 예배하는 제사장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패턴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2. 창조물을 돌볼 책임이 있는 영광의 관을 쓴 왕

히브리서 2장에 소개된 시편 8:4-6은 예수님에게 적용된다. 2:6인자용어를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으로 취급한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라는 문구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인간과 공유하고 인류의 지배권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결정을 반영한다. 창세기는 인간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표자 역할을 하며, 창조물을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맥은 히브리서 기자가 그리스도의 고난, 죽으심 및 승귀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진리에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려고 수치스러운 죽음의 고난을 겪어야 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고 자신의 가족으로 불러 모았다.

시편 8편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질서의 중요한 측면을 선언한다. 인류는 창조 된 질서 내에서 영광스러운 장소를 가지고 있다. 지구상의 피조물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 영광과 책임은 창세기 1 , 특히 인간이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는 하나님의 명령과 일치한다. 시편 기자는 창세기 1~2장의 창조 기사를 상고하면서 하나님이 아담을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우셨다고 한다. 하나님의 위엄과 피조 세계의 경어를 고찰한다. 시편 8편은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찬미와 동시에 인간의 무가치하면서도 뛰어난 위대성에 대해 찬미한 노래다. 유대인들은 이 시편을 메시야 시편들 중 하나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이 시편을 반복하여 그리스도께 적용하여 메시야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편 8편의 통치는 천사들이 아닌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을 노래하는 것이 분명하다. 시편 저자는 창조 담화를 묵상한다. 인간들이 천사들보다 낮지만 영광과 존귀를 위해 작정되었다. 천하 만물이 인간에게 복종할 것이다. 저자는 구속역사의 렌즈를 끼고 창조 담화와 시편 8편을 읽는다. 시편이 인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을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가 완전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가 성육신 하신 것, 그리고 고난과 죽으심은 타락한 인간에게 그 존재의 위엄성과 완전성을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다. 인간의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회복케 위함이다. 그리스도는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원대한 계획을 자신을 통해서 복구시키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사를 활용할 수 있다. 창조의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 수 있다.

 

3. 복음 전파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통치권

다윗은 두 개의 대조적인 주제들을 뒤섞어 놓는다. 중대한 것과 보기에 중대하지 않는 것이다. 8:5-8에서 전자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그의 피조물을 다스리게 한 것이다. 후자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천사보다 못하게 하신 것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권위나 영광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능력을 받는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단번에 죄사함을 보증하셨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높아지신 왕으로서 다스린다. 왕의 눈에 띄는 은유는 그들의 책임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왕권의 속성인 영광과 존귀로 인간을 선택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미지 담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천사보다 조금 덜 만드셨다. 예수님의 왕적 사역과 대제사장직 사역은 밀접하게 엮여 있다. 시편 8편이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통치하리라는 작정은 사람들이 죄로 더렵혀진 동안에는 실현될 수 없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시편 8:7과 시편 110:1을 연결했다. 히브리서는 전자를 인간과 예수님 모두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시편 8편은 인류 전체와 관련이 있다. 무엇보다도 유일한 그 사람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칼빈(Calvin)은 이 시편을 끝까지 읽어본다면 우리는 거기에 오직 복음 전파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발견할 것이라고 진술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온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그리스도의 통치로부터 일어나는 어떤 기쁨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인간이 빼앗겼던 통치권을 회복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날 때 인간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인간이 될 수 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고 왕노릇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위엄과 광대한 창조물을 고려하여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사와 지구의 생물에 대한 지배의 선물은 다윗을 완전히 놀라게 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위엄과 인간의 존엄을 노래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와 달과 별들을 생각하고 인간의 존엄을 반추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웅장함에 비추어 인간은 너무나 미미하고 보잘것없이 보인다. 하나님이 인간을 생각하시는 것은 인간 중심의 이기적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모습에서 발견되어 진다. 죄로 인해 파괴 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어 진다. 고난받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된다. 그를 믿는 자는 그와 더불어, 그의 이름으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쓴다.

메소포타미이인의 관점에 따르면, 신들은 스스로를 위해 만든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존재로서 인간을 창조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 인간은, 힘든 노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신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창조되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신들이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통해서만 확보된다. 창세기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사람으로 지음을 받는다. 첫 번째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데 실패한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일으켜 그를 대신하게 하신다. 누가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하나님의 사람을 구약성경에서 만나게 된다. 그는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요 종말의 아담이다.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적절하게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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