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72) 하나님의 보좌(God’s throne)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 평안의교회(서울서부노회) 담임목사

히브리서 저자가 시편을 메시야적이며 그리스도론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은 그 시대에 유대 해석자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이 분명하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그의 신성한 왕권에 대한 고백을 표현하기 위해 시편 45:6의 언어를 사용하여 현재 하늘에서 왕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일반적인 신약성경의 믿음을 공유한다. 저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시편 2:7의 모세의 노래와 시편 45:6-7을 인용하여 묘사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라는 인용문은 아들의 완전한 지위를 다시 한 번 묘사한다. 즉 그는 실제로 하나님혹은 신성한 존재라고 불리는 지상의 왕이다. 비록 고대 이집트에서는 다소 일반적이었으나, 이런 식으로 왕이 직접적으로 불리는 것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유일한 예일 것이다.

여기서 천사들과 달리 예수님은 일을 하지 않고 신성을 가진 왕으로 다스린다. 아들의 신성과 만물을 다스리는 그분의 통치를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들을 하나님이라 부르는 화자이다. 하나님은 우주의 왕이고, 그의 성소는 그의 왕권의 상징이다. 즉위 시편들과 시온 시편들은 하나님이 시온에 있는 그의 거처에서 온 땅 위를 통치하신다고 찬양한다.

 

1. 하나님의 보좌와 통치

시편 45:6과 시편 103:19은 하나님의 보좌와 통치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편 2:7과 사무엘하 7:14, 그리고 시편 110:1에서 주요한 주제를 형성한다. 시편 45:6, 7에서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묘사하고, 특히 히브리서 저자는 7절에서 인용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시편 45편은 제왕시다. 더 엄격하게 말하면 외국 공주와 결혼하는 왕을 축하하기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명백한 사랑의 노래다. 왕을 ’(deity)으로 부르는 왕실 결혼식의 송가(epithalamium)이다. 여기서 사용된 표현 방식도 역시 왕의 봉헌식을 시사하고 있다. 솔로몬이 등극할 때 선포된 소원의 내용들도 마찬가지이다. 왕의 결혼식에서 왕은 분명히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선언되어졌으므로 과장하자면 하나님으로 언급된 것이다. 하지만 인용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에 적용되어질 때 가장 완전한 의미로 발견되어진다. 그렇지만 그것은 훨씬 더 확장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폭넓게 인정받았다. 실제로 메시야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이 히브리서에 인용된 것은 후자의 의미에서이다.

시편 45편은 때때로 직접 메시야 시편으로 간주되었는데, 그 이유는 1:8-9에서 시편 45:6-7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에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시편 45편은 본래 왕에게 바쳐진 결혼축가였으나, LXX과 타르굼은 이 노래를 메시야적 관점에서 이해했다. 후기 유대교 문서들에서 우리는 이러한 메시야적 해석을 찾아 볼 수 있다. 다윗 계통의 왕에게 자신의 권위를 부여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찬양하는 왕실 혼례의 일부이다. 결혼 송시를 따른다면, 히브리서 1:8에서 왕이신 하나님으로 불려지고, 최고의 권력이 부여된다. 다시 말해 하늘 성소에서 우주의 왕으로서 예수님의 통치는 다윗 왕, 즉 하나님의 아들의 통치와 성막에서 신성하게 표현된다.

시편 45:6 말씀이 메시야와 왕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확인시켜 준다.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수수께끼는 예수님 안에서 그 해결을 기다린다. 따라서 이 구절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 작용을 묘사하는데, 둘 다 하나님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구절들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주장한다. 이 시편에서 왕의 자리를 그의 아들이 물려받을 것이라 가르치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7:1에서 모세는 파라오에게 신과 같았다.’ 또한 이 명칭이 문자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편 45편에 묘사된 메시야와 그 분의 통치를 상징하는 규
시편 45편에 묘사된 메시야와 그 분의 통치를 상징하는 규

 

2. 하나님으로 불리는 왕

시편 2:7과 사무엘하 7:14의 연결에서, 하나님에 의해 아들로서 택함을 받은 왕이 나타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비유 언어를 통하여 야훼와 매우 가깝게 연결된 지상의 왕이 나타난다. 게다가 시편 45편에 따르면 신적인 특징을 왕이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통치자로서 하나님을 대리하고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어 그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동방의 언어용법을 연상시켜 준다. 히브리 시인들과 선지자들에게는 다윗 집안의 왕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왕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그와 목적 달성으로 약조된 특별한 약속을 한 왕조에 속해 있었다.

저자의 주요한 관심은 아들의 신격에 관한 설명이 아니다. 아들이 시행한 지배의 영원한 성격에 관한 것이다. 아들이 신격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함축은 그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언급을 오직 강화하고 불변하시는 아들과 변하는 천사들 간의 대조를 예리하게 한다. 하지만 왕의 신성화는 이교 문학에서 그 평행들이 발견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들 됨과 왕권, 왕권과 기름부음을 서로 연결시킨 고대적 관념은 본 서신에도 보존되어 있다. 이스라엘 재판관들이 하나님의 판결을 백성들에게 선언한다(혹은 선언하기로 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 그들을 신들로 말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히브리서 사상에서 다윗 보좌의 점유는 하나님의 대변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 의미에서 왕은 하나님으로 불릴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과 본체를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높이 올려진 이래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줄거리에 있어서 시편 45편은 다윗 계열의 왕에 대한 노래이고, 이 왕을 하나님으로 규정하지만 그렇다고 시편 기자가 문자적으로 이 왕을 신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윗이나 그의 옛 계승자들에게는 좀 더 완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 계통의 메시야도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바로 그 본체의 형상도 되시기 때문이다.

아들의 신성은 창조자, 그분의 신성, 그분이 세상을 보존하고 천사들에게 예배를 받으시는 분으로서 아들의 역할과 부합한다. 히브리서 1:8-9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라는 왕이신 아들의 신성을 인정하는 것에 가장 근접한 신약의 본문 가운데 하나다. 물론 본문이 교리적인 선언이 아닌 예배의 맥락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노래는 하나님의 보좌, 즉 다윗의 후사가 차지하고 있는 보좌에 의해 하나님께 말하고 따라서 계속해서 왕의 통치에 대한 신적 이상들을 묘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진리의 규를 드신 예수님, 상상화
진리의 규를 드신 예수님, 상상화

 

3. 하나님의 아들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시편 2, 110, 그리고 사무엘하 7장과 함께 시편 45편은 하나님 아들에 의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을 맞춘다. 성육신한 아들로서의 그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있으며 다윗의 왕국은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대적을 잠잠케 하고, 아들의 영원한 보좌 확립을 수반하며, 모든 것에 대한 상속을 아들에게 줄 나라이다. 그리고 지금 시편 45편을 통해 공의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한다. 영원한 왕국 모티브는 시편 45편을 영원한 보좌의 구축을 약속한 사무엘하 7(“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3,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16)의 범위 내에 있게 만든다.

시편 45:6의 진술과 언어적인 대구는 이 확장된 구절이 사무엘하 7:14을 포함하는 메시야 증언들의 집하베 왜 첨가되었는지를 암시해준다. 저자는 자신이 성경 인용의 중심부에서 시편 45:7-8과 시 102:25-28을 인용하여 아들은 단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일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자신이며, ‘영원히 지속될 보좌를 차지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편 45편은 하나님의 보좌, 다윗의 후사가 차지하고 있는 보좌에 대해 하나님께 말하고(“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따라서 계속해서 왕의 통치(“공평한 규”)에 대한 신적 이상들을 묘사한다. 하나님 우편으로 예수님의 승귀에서 명백하게 성취된(실제로 유일하게 성취될 수 있는), 아들의 영원한 통치 특성에 관한 직접적인 문자적 계시로 시편 45:6-7을 저자가 또한 이해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불리우신 신약성경의 중요 본문들 가운데 하나이다.

시인은 왕의 개인적인 아름다움, 영속적인 왕권, 군사력, 특히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사법적 역할에 집중하면서 왕에 대한 이상화된 그림을 제시한다. 왕이 신격화된 이집트와 같은 일부 고대 근동 문명의 경우처럼 구약 어떤 본문에도 이스라엘이나 유대 군주의 신격화에 대한 증거가 없다. 유다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겨졌으며 하나님과 왕 사이에는 친밀한 관계가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의 양자로 여겨졌지만 신화에 대한 질문은 없다. 시편 45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의 빛과 성경 전체의 줄거리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바와 같이, 여기서 말하는 다윗 계열의 왕은 그 자신이 하나님이시다. 구약성경의 모든 계시가 한 올 한 올 함께 역어져 하나님과 사람으로 오신 왕을 선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름답게 옷을 입은 이 왕족 신부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9:7-8을 히브리서 1:8-9과 결합시키면 단 하나의 결론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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