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연 따라 산행하기 (16) 가평, 화악산(華岳山)

〆중봉에서 바라본 가평쪽 전경(사진 조성연)
〆중봉에서 바라본 가평쪽 전경(사진 조성연)

화악산(華岳山)은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에 위치한 높이 1,468m의 산이다. 경기 5(감악산, 관악산, 운악산, 화악산, 송악산)중 가장 높은 산으로 산세가 중후하고 험하다. 화악산을 중앙으로 동쪽에 매봉, 서쪽에 중봉(1,466m)이 있으며 이 3개 봉우리를 삼형제봉이라 부른다. 화악산 정상은 공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어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으며, 통상 중봉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등산코스: 관청리-큰 골 삼거리-1090-중봉-1421.5-안부 사거리-큰 골 삼거리-관청리(5시간 30)

대중교통으로 경기 5악의 최고봉, 화악산을 가기 위해 새벽 일찍 목동집을 나섰다.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여 가평역에 도착했다. 또 가평역에서 버스를 타고 목동에서 내려 1시간을 기다린 끝에, 관청리행 버스를 갈아타고서야 산행 출발지인 관청교 옆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큰 골에서 힘차게 흘러내리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다리, 관청교 옆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산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명자나무 꽃,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어있는 담장 너머로 전형적인 산골 집들이 한가롭고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전원주택과 고급스럽게 보이는 음식점도 보인다.

〆산괴불주머니(사진 조성연)
〆산괴불주머니(사진 조성연)

이틀 전에 조금 많이 내렸던 비로 계곡물이 범람하여 신발이 젖지 않고서는 건널 수 없는 임도가 나왔다. 산 위쪽으로 우회하여 큰 바위와 큰 돌들을 징검다리 삼아 겨우 임도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산에는 철쭉, 산수유, 산벚꽃이 피어나고 있고, 각종 나무들이 앞을 다투며 초록색 싹을 틔우고 있다. 이 호젓하고 잘 알려지지 않아 아무도 오르고 있지 않는 산길을 왼쪽 계곡에서 힘차게 들려오는 물소리와 길가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벗하며 혼자서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제비꽃은 흰색과 보라색 꽃으로, 산괴불주머니와 양지꽃은 노란색 꽃으로, 엘레지와 현호색은 보라색 꽃으로 피어나 홀로 힘겹게 산을 오르는 하이커를 반기고 있다. 야생화 탐방 장소로 유명한 이 산에서 내가 만나지 못한 야생화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〆관청리 부근의 벚꽃, 하산길의 철쭉
〆관청리 부근의 벚꽃, 하산길의 철쭉

계곡을 따라 한참 걸어 올라 가마소 폭포에 도착했다. ()의 모양이 가마솥같이 둥글고 깊어 붙여진 이름이다. 비교적 높은 산, 큰 골에서 굽이치며 내려오는 물이라서 물소리가 우렁차고, 곳곳에 소()와 담()을 만들고 방향을 바꾸며 이리저리 힘차게 흘러 내리고 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트레일이 계곡의 이쪽저쪽을 몇 번이나 번갈아 건너게 한다. 계곡 위에 듬성듬성하게 놓여있는 바위를 건너뛰다 미끄러져 얕은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고, 겨울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산행을 계속 할 수 있어 다행이다.

〆가마소 폭포 아래의 큰 골 모습, 가마소 폭포 전경(사진 조성연)
〆가마소 폭포 아래의 큰 골 모습, 가마소 폭포 전경(사진 조성연)

질척거리는 발을 이끌고 큰 골 삼거리를 지나 된비알을 따라 올랐다. 바위는 없지만 경사가 급한 육산(肉山)이라 미끄럽고 오르는 데 힘이 든다. 밧줄이 매달린 오르막이 연달아 이어지고 통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 능선에 이르렀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큰 바람이 귓전을 울리고 나뭇가지를 뒤흔들고 지나간다. 산 아래는 잎이 트고 꽃이 피는 봄이 완연하지만, 이곳은 나무들이 아직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조금 내리막길을 걷다 중봉쪽을 바라보니 희끗희끗하게 눈이 쌓인 모습이 보인다. 이틀 전에 내린 비가 고도가 높은 이곳에서 일부 눈이 되어 내렸나 보다. 쇠기둥에 연결한 밧줄 가이드라인을 따라 난 트레일을 걸어오르니 눈이 조금 쌓여 미끄럽다.

〆중봉에서 바라본 석룡산 주변(조성연)
〆중봉에서 바라본 석룡산 주변(조성연)

곳곳에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운 바위 구간에 쇠기둥 밧줄 가이드 라인이 설치되어 오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돌길 오르막을 걸어 오르니 화악산 정상에 위치한 공군 레이더 기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곧 이어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소백산 같은 높은 산에만 자생하는 주목을 만나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기야 이곳도 남한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니까. 조금 더 걸어 중봉에 도착했다. 바로 옆에 군부대 초소 건물을 지어 놓아 화악산 정상을 바라볼 수 없도록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군부대 건물을 촬영하면 안된다는 경고문도 눈에 띈다.

중봉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산들이 겹겹이 쌓인 산들의 물결이다. 도시나 건물은 거의 보이지않는 깊은 오지임에 틀림없다.

〆중봉에 선 필자(사진 이예구)
〆중봉에 선 필자(사진 이예구)

하산을 서둘렀다. 가평까지 가는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이나 기다려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삼거리에서 애기봉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니 또 가드레일, 바위에 박힌 디딤 사다리가 연달아 나오고 된비알이 계속 이어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쪽이라서 눈이 녹아있어 미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조금 더 내려와 참나무 숲이 우거진 숲길을 걸어 안부 사거리에 도착했다. 안부사거리에서 큰 골 삼거리로 이어지는 된비알도 만만치않게 느껴진다.

아무려면 경기 5악중의 으뜸이라고 알려져있는데……

큰 골 삼거리에 도착하니, 또 다시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이 큰 소리를 내며 나른한 오후의 계곡을 깨우며 지나가고 있다. 마치 지친 하이커의 발걸음을 재촉이나 하듯이.

큰 골 삼거리-1090-중봉-안부사거리-큰 골 삼거리 코스-잘 알려지지 않아 트레일이 희미하고 오르는 사람이 없는 호젓하고 조용한 트레일이다. 힘찬 물소리를 들으며 새싹을 대하고 길가에 핀 각종 야생화를 만나며 육산(肉山)을 오르고 된비알을 타는 산행다운 산행을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

살아 생전, 경기 5악중에 마지막 남은, 개성에 있는 송악산을 오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고대해 본다.

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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