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31)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43)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나콘 립비 엘로힘) 내가 노래하며(아쉬라)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와아자메라 아프 케보디)”(108:1).

역사는 반복되는가?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는가? 전도서에 보면 미래의 역사는 변화하지 않고 과거에 되었던 것이 그대로 현재에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말한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에쉬 다바르 쉐이오마르 레에 제 하다쉬 후)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케바르 하야 레오라밈 아쉘 하야 밀레파네누)”(1:10).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레이티 에트 콜 하마아쉼 세나아수 타하트 하샤메쉬 웨 히네 하콜 헤벨 우레우트 루아흐)”(1:14). 오늘 일어나는 일들이나 새 물건이라고 하는 것들도 그 본질과 속성은 다 비슷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만족하며 안일하게 안전지대라고 안위하며 살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세계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루마 알 샤마임 엘로힘)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웨알 콜 하아레츠 케보데카)”(108:5).

시편 108편은 시편 5권의 초입부에 위치하며 다윗의 시편(57, 60)과 같이 심한 고난 속에서 용감하게 환난을 극복하고 일어나는 신앙을 보여준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베로힘 나아세 하일)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웨후 야부스 짜레누)”(108:13). 다윗은 사울에게 쫒기고 있던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는바, 오늘 우리는 이와 같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재현되며 또 우리에게도 고난의 연속과 환란의 시련을 겪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신앙으로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할로 엘로힘 제바흐타누)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웨로 테쩨 엘로힘 베지베오테누)”(108:11). 하나님이 도우시는 군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는 백전백승의 승리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존재들이 된다. 하나님이 인도하심으로 시인은 새롭게 주도권을 가지고 신앙의 모험을 하며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의 찬송 시>라는 표제어에서 보듯, 파란만장한 다윗의 인생 가운데 펼쳐지는 고난의 연속이며, 삶의 우여곡절의 연속 속에서도 좌절하고 낙망할 수밖에 없던 실존이던 다윗은 신앙으로 실망하지 않는다. 이처럼 오늘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의 사람들에게도 시편은 용기를 준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오데카 바아임 아도나이)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로리니(와자메레카 발 우임)”(108:3). 다윗은 위험한 순간마다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손길 앞에서 매번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다. 따라서 예배의 자리에서 악기를 동원하여 맘껏 하나님을 새벽부터 찬양하겠다고 말한다. “비파야, 수금야, 깰지어다(우라 한네벨 웨키노르)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아이라 샤하르)”(108:2).

신약 시대의 예배, 카타콤의 27권의 교회 예배가 아카펠라의 예배라고 할 때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마음과 혼, 정성과 육성을 맘껏 담은 인격의 예배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루마 알 샤마임 엘로힘)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레마안 예할레쭌 예디데이카)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호쉬아 예미네카 와아네니)”(108:5-6).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은 역사 속에서 세겜과 숙곳, 므낫세, 에브라임, 에돔과 블레셋, 에돔 등의 대적자와 원수 나라들의 공격과 위협 속에서 구원하신 손길을 언급하고 노래하며 찬양한다.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시르 라헤찌) 에돔에는 내 신발을 벗어 던질지며(알 에돔 아쉬리카 나아리)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알레 페레쉐트 에트로아)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미요비레니 이르 미베짜르)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미 나하니 아드 에돔)”(108:9-10). 다윗이 전쟁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며, 전장의 장군의 인생살이이라고 하면 우리는 일상의 대적자들에게 쫓기는 인생이다. 이는 다윗과 우리들의 인생은 매한가지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하바 라누 에즈라 미짜르)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웨샤웨 테슈아트 아담)”(108:12).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기로 다짐하고 마음을 정할 때부터 하나님은 이미 다윗 편에서 싸우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마음을 정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찬양하며 나갈 때 주의 종들에게도 똑같이 시편 108편의 찬양이 반복되고 있다. 조선 말 한국 근대사 초기에 선교사들에게도 똑같이 이러한 삶의 고백이 이어졌다.

파울링 선교사(Pauling, Edward C.)1895년 강경과 인천을 배 타고 오가며 포목 장사를 하던 지병석 집사를 전도하여 그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 파울링 선교사는 미국 보스톤 침례교에서 한국에 파송하였고 그는 18962월에 강경에 와서 지병석에게 세례를 베풀고 아만다가데린 선교사 등과 함께 5명이 예배를 드림으로서 강경침례교회가 시작된다. 1942년 침례교회의 32명이 원산 헌병대에 감금되어 10명은 함흥 형무소에 끌려갔고 이듬해 일제는 자 형인 이 교회를 신사 대지로 강탈하여 등기 이전을 하였고 교회는 방화된다.

파울링 선교사와 캐나다 말콤 펜윅 선교사가 188912월 초에 서울에 도착함으로써 침례교회의 선교사 시작되었다. 엘라 씽 기념 선교회는 1895년 파울링 선교사 부부, 아만다 가데린 양 등 선교사 3인을 선교사로 파송한다. 지병석씨를 통한 전도로 강경 북옥리 자택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다. 부인 천성녀 등과 함께 드린 예배는 침례교 최초의 교회가 되게 된다. 이 강경침례교회는 오늘도 교회의 유적지로 남아서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 문화에 젖은 한국 문화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교회 모습을 보게 된다. 이곳이 파울링 선교사의 거처가 되었고 그 이후에 1900년 스테드만 선교사와 1901-1935년 최초의 침례교단을 조직한 캐나다 펜윅 선교사의 원산과 강경을 왕래하던 선교활동 하던 모습을 볼 수 있다. 선교활동이 어려움을 갖게 되는 계기는 일제가 강경 옥녀봉 중앙에 신사를 짓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치교 목사, 김재형 목사, 성도 32명을 원산 헌병대로 끌고 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시련을 당하게 된다. 오늘도 1923년 건축된 전통한옥 예배당을 볼 수 있다.

상단- 파울링 선교사와 강경침례교회 내부, 하단-강경침례교회 외부, 강경성결교회 신사참배거부 선도비
상단- 파울링 선교사와 강경침례교회 내부, 하단-강경침례교회 외부, 강경성결교회 신사참배거부 선도비

또한 강경성결교회는 최초의 신사 참배 거부교회로 알려져 있고 강경공립보통학교 교사 김복희와 학생 57명이 신사를 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지킨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보수적 복음적 교회의 신앙의 씨앗을 뿌린 파울링 선교사와 펜윅, 가데린 양의 선교의 흔적은 오늘도 한국 교회의 깊은 뿌리가 되어 한국의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