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32)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4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예콰레루 헴마)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웨아타 테바레크)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콰무 와예보슈)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웨아베데카 이쉬마흐)”(109:28).

오늘날 평화를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박은 자 등 8복의 사람들은 천국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세계는 전쟁 중에 있고 우리는 그 싸움의 한복판에서 직간접적으로 동참하며 살아가는 현실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와 관련하여 우리나라가 동맹 관계에 연루된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알 테헤라쉬)”(109:1). 시편 109편 기자는 개인 탄식시편으로서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시편>의 표제어에서 그 고통과 슬픔의 현실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 “나는 사랑하나(타하트 아하바티)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이쉬테누니 와아니 테필라)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와야시무 알라이 라아 타하트 토바)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웨시네아 타하트 아하바티)”(109:4-5). 대적자들로 말미암아 시인은 야웨께 부르짖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있다(56:1). 얼마나 그의 영혼과 마음에 고통과 고난이 길며 또 반대로 그들의 죄악이 심한지 그런 와중에 시인은 깊은 탄식 속에 있다(13:2; 54:3). “그 죄악을 항상 여호와 앞에 있게 하사(이헤유 네게드 아도나이 타미드) 그들의 기억을 땅에서 끊으소서(웨아크레트 메에레츠 지케람) 그가 인자를 베풀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야안 아쉐르 로 자카르 아쇼트 하세드)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와이르도프 이쉬 아니 웨에베욘 웨니트에 레밥 레모테트) 죽이려 하였기 때문이니이다”(109:15, 16). 이는 시편 109편은 다윗의 대표적인 탄식 시편들(3, 22, 51, 103) 중의 결론에 해당하는 시편으로서 인생의 파란만장한 생애 가운데 그 절정에 해당하는 시편이다.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비르카이 카쉐루 미쫌)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우베사리 카하쉬 미샤멘) 나는 또 그들의 비방 거리라(와아니 하이티 헤레파 라헴)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예니운 로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아제레니 아도나이 엘로하이)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호쉬에니 케하스데카)”(109:24-26).

개인 탄식 시편은 시편의 척추에 해당하는 시편으로서 시편의 보편적인 양식이다(존데이). 시편의 1/3의 분량이 탄식 시편으로서 시편 3-7; 9/10; 13; 17; 22; 25-28; 31; 35; 38-39; 40.13-17=70; 42/43; 51-52; 54-57; 59; 61; 64; 69-71; 77; 86; 88; 94.16-23; 102; 109; 120; 130; 139-143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탄식의 시편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120-134)의 서론으로서 역할을 하며 그 시편기자의 편집 모습을 보여준다. 이 탄식이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탄식으로 말미암아 시인은 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게 한다(71:12).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지 말고 어서 속히 구원해 달라는 시편 기자의 탄식 시편의 간구는 너무 갈급해서 대적자의 복수를 기도하기도 한다.

저주가 그에게는 입는 옷 같고(테히 로 케베게드 야에테)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우레메자흐 타미드 야헤게레하) 이는 나의 대적들이(조트 페우라트 소테나이) 곧 내 영혼을 대적하여 악담하는 자들이(웨하도베림 라 알 나프쉬) 여호와께 받는(메에트 아도나이) 보응이니이다(페우라트)”(109:19-20). 탄식이 변하여 구원이 되고 또 감사와 찬양이 되는 믿음의 세계는 결론부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이레베슈 소테나이 케리마)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웨야아투 카메일 바쉐탐)...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키 야아모드 리민 에브욘)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레호쉬아 미쇼페테 나프쇼)”(109:29, 31). 이처럼 탄식 시편의 결정적 시편인 109편은 시편 대단원의 장으로서 109편에서 이 시편의 결론구를 감사와 찬송으로 끝낸다.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요데 아도나이 메오드 베피)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라(우베토크 라빔 아하렐레누”(109:30).

이러한 인생 대 전환의 변화로써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삶을 산 분들이 계시다. 말콤 펜윅 선교사(Malcolm Fenwick, 1863-1935)는 한국인의 전통과 특색에 맞춘 토착화 선교에 집중하였다. 그는 도시보다 산간, 해안가 갈릴리 선교에 집중하며 한국의 땅 끝인 만주까지도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는 최초의 외지 선교사로서 1907년 북간도 지역(중국 길림성)에 한태영 선교사외 4명을 파송하였다. 펜윅은 188926세 청년으로 한국에 와서 45년 동안 한 나라를 섬기며 초교파적으로 선교를 감당하며 그는 선교는 교파를 초월한다는 선교의 모델을 보여준 앞선 선교사의 전형(典型)을 보여주었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이오주 나이아가라 호숫가에서 열리는 사경회에 1883-1897년 복음주의 집회에서 아더 피어선, 허드슨 테일러, 스코필드, 제임스 브룩스, 아도니람 고든, 존 채프만의 선교와 신학, 그리그 그 복음에 영향을 받고 선교사로 자원했다.

그는 고든 목사에게서 안수를 받고 침례교 목사가 되었지만 펜윅은 교단적 색깔을 전혀 띠지 않은 모습으로 대한 기독교회’(동아 기독대, 동아기독교)라는 명칭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는 한국에 온지 2년도 안되어 원산 농장을 운영하며 자립 선교를 이뤄냈고, 나이아가라 사경회를 통해 성경번역 작업을 배워서 1891요한복음전을 번역했다. 1899년에는 요한복음과 빌립보서의 합본을 발행했고, 1919년에는 신약 전권을, 1926년에는 252곡의 찬송가가 수록된 복음찬미를 발행했다.

펜윅 선교사와 그가 발행한『복음찬미』
펜윅 선교사와 그가 발행한『복음찬미』

그는 위크리프와 같은 영성으로 번역과 영성 찬송가를 발행하며, 원산을 중심으로 한 복음 운동을 일으킨 영향력이 큰 선교사였다. 이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선교사였다. 그의 황해도 소래 사경회 인도에서는 삼백 명의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영적인 대 각성이 일어나게 했다. 이 일은 10년 후에 일어난 1907년 평양 대부흥회, 1905년 원산 부흥회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의 선교는 미전도 종족을 대상으로 한 선교의 아버지로서 전방위 선교사의 모델이 되었다. 선교역사는 때로는 기라성 같은 선교사들이 알려지지 않고 숨겨진 보석처럼 있다가 나타나서 우리에게 마음의 아름다운 별로 새겨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도 선교지에 가있지 않으면 못 견디게 한다. 이러한 선교 열정을 가지고 십자가형의 선교사들이 오늘도 땅끝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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