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28)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40)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정의를 지키는 자들(쇼메레 미쉬파트)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오세 체다카 베콜 에트)는 복이 있도다(아쉐레)”(106:3).

세상은 종말론적 상황이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상태이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어렵게 펼쳐지는 세상의 극단적이고 어려운 상태가 계속된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는 이 극복하지 못할 장벽으로 말미암아서 두려움과 위협을 느끼게 된다. 시편 106편은 시편 4권의 저자는 대결론을 맺으며 감사하라고 시편의 독자와 함께 찬양한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호두 라아도나이) 그는 선하시며(키 토브)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키 레올람 하세도)”(106:1). 시편의 세계가 현실에 탄식하는 상황에서 시작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상황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게 된다.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비레쫀 암메카) 나를 기억하시며(자케레니)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파케데니 비슈아테카)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리레오트 베토바트 베히레이카)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리쎄모아흐 베시메하트 고예카)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레히트할렐 임 나하라테카)”(106:4-5).

시편 106편은 역사 시편이자 구속사 시편으로서 시편기자는 역사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일이 역사하셨던 순간들과 행적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하타누 임 아보테누)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헤에위누 히르샤에누).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아보테누 베미쯔라임)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로 히쉬키루 니프레오테이카)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로 자케루 에트 로브 하사데이카)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와야메루 알 얌 베얌 수프)”(106:6, 7). 여기서 시인은 역사 속에 조상이 지은 죄악의 사실을 먼저 고백한다. 출애굽의 역사에서 홍해 도하 사건의 기적과 기사(奇事)를 언급하며 하나님의 기적과 큰 권능을 기억하며 시편기자는 구원의 역사를 전승하며 노래한다.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와이게아르 베얌 수프)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가기를(와이요리켐 바트호모트)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카미드바르) 그들을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와요쉬엠 미야드 소요네) 그 원수의 손에 구원하셨고(와이게아렘 미야드 오에브)”(106:9, 10).

이스라엘 역사의 구원 역사는 출애굽의 사건(106:7-12)과 광야 방랑 사건(13-18)과 호렙(시내)산의 우상숭배 사건(19-31과 므리바 거역 사건(32-36)과 가나안의 우상숭배(몰렉신 숭배, 인신제사: 37-42)를 언급한다. 또 사사 시대의 전승을 기억하며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 속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억한다. “여호와께서 여러 번(페아밈 라보트) 그들을 건지시나(야찌렘) 그들은 교묘하게 거역하며(웨헴마 야메루 바아짜탐)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낮아짐을 당하였도다(와야모쿠 바아오남)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베샤메오 에트 린나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와야르 바짜르) 그들을 위하여 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와이제코르 라헴 베리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와이나헴 케로브 하사다이오)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리프네 콜 쇼베이헴)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와이텐 오탐 레라하밈)”(106: 43-46).

더 나아가 이 시편기자는 사사 시대부터 바벨론 포로 시대까지 이어지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불운의 역사를 기억하며 죄의 원인과 결과가 비참한 망국의 역사가 이뤄졌음을 교훈하며 역사적 회개를 촉구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맹렬히 노하시며(와이하르 아프 아도나이 베암모) 자기의 유업을 미워하사(와에타에브 에트 나하라토)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시매(와이트넴 베야드 고임)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렸도다(와임쉐루 바헴 소네에헴)”(106:40, 41).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호쉬에누 아도나이 엘로헤이누)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웨콰베쩨누 민 하고임)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레호도트 레쉠 콰드쉐카)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레히쉐타베아흐 비트힐라테카)”(106:47).

 

불운한 망국의 원인이

죄의 결과임을 밝히며

회개를 촉구한 시편 106편

역사는 이처럼 과거의 신앙 사건을 기억하고 역사적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비전을 보며 나가는 자에게 새롭게 희망으로 열린다. 이스라엘 역사는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한 역사의 구원사가 펼쳐지게 된다. 마지막에 시편기자가 노래하는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할렐루야 찬양하게 된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민 하올람 웨아드 하올람) 찬양할지어다(바루크 아도나이)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웨아마르 콜 하암 아멘) 할렐루야”(106:48). 이처럼 민수기 시편처럼, 시편 106편은 불만과 불평, 원망과 불순종의 조상들과 불순종의 역사가 고난의 역사적 결과를 낳았음을 기억하게 된다. 이 시편은 이같이 역사적 고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노래한다. 광야의 욕심과 하나님을 시험한 것과 소의 형상을 만듦, 장막에서 원망함으로서 디아스포라의 슬픔 당함을 말하고 있다. 또 시인은 이방의 올무가 되어 고생의 세월을 보냈음을 기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구원하심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한

시편 106편

이러한 감사의 삶을 산 분들이 있다. 선교사는 감사의 삶으로 점철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노아(F. S. Miller, 1866-1937) 선교사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찬송가를 저작한 작사자로서 청주 지방을 선교했던 초기 개척 선교사이다. 그는 청주 랜드마크 양관 건축자이자 최초의 근대학교 청남학교와 최초 근대병원 소민병원의 설립자이다. 그는 한국에 189211.15일 입국하여 서울에서 11년간 사역을 하였고, 1904년부터 1937까지 세상을 떠날 때까지 33년간 청주 주재 선교사로서 활동하였다. 민노아 선교사는 청주 선교부를 설립하고 근대 병원 설립, 문맹퇴치를 위한 여성교육,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금주운동을 비롯한 계몽 운동을 시행하였다. 그는 청주 근대화와 교육도시로서의 거룩한 도성의 명성을 가지게 한, 청주 도시 근대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민노아 선교사는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 출신으로서 의사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W.N.Miller)가 의사로서 남북 전쟁에 군의관에 참여한 분으로서 58년간 피츠버그에서 의사로 지냈다. 민노아는 피츠버그 국립 고등학교, 피츠버그 대학(1889)를 졸업, 뉴욕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1892)하고 목사로 임직한 후 1892년 한국에 선교사로 들어오게 된다. 민노아는 서울 선교부에서 교육 사역을 하였고(1892-97), 복음 사역을 하였다(96-1905). 그는 마포삼열(평양 장로회 신학대학)과 같이, 언더우드가 세운 예수교 학당(현 경신학교)을 맡아서 그는 민노아 학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3대 학당장에 취임하였다. 민노아는 당시 17살이던 도산 안창호를 가르쳤고 6개월 만에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 또 선교사는 그가 유학을 가도록 준비하게 하고 그를 결혼까지 주선하여 주례한 후에 유학의 길을 열어주었다.

민로아 선교사와 민로아 학당 교사와 학생들(가장 오른쪽이 민로아 선교사)
민로아 선교사와 민로아 학당 교사와 학생들(가장 오른쪽이 민로아 선교사)

그는 189710월에 민노아 학당에 폐쇄 당하자 대한기독교서회 편집위원, 1894년부터 상임성서실행 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서, 한글 성서번역에 참여하며 1903년에는 회장으로 1905년까지 소위원회를 이끈다. 또한 찬송가 편집에도 참여하여 총 26곡을 작시한 찬송가가 찬송집에 들어가게 된다(최다곡 수록자로서 5, 통합찬송가 96, 204, 427, 451, 588). 민노아 선교사는 청주에 자리 잡고 하나님의 선교가 무엇이며 선교사는 누가 되어야 하는지, 참 선교사의 전형(典型),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선교사의 역할이 한국의 근대화를 이렇게 가져오게 한다. 한국의 근대화의 빛은 이같이 복음의 전달자와 한국인 선구자(안창호, 방흥근, 김태희, 김원배, 정규태)들에 의해 점점 열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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