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27)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39)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주의 종들이(아바데이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키 라쭈-에트 아바네이하)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웨에트 아파라흐 예호네누)”(102:14).

폭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숨도 쉴 수 없는 날이 연속되고 있다. 또 카눈 폭풍으로 비바람의 피해가 상당한 것을 본다. 입추가 왔는데 찬바람은 생기는 것 같지 않고 말복의 폭풍은 한반도를 뒤집어 놓고 북상중이다. 폭풍으로 더운 날씨는 사그라들었지만, 비바람의 피해는 상당히 크다. 나라는 안팎으로 나쁜 소식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뉴스 듣기를 거리끼는 것 같다. 이러한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주께서 일어나사(아타 타쿰)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테라헴 찌온)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키에트 레헤네나흐)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키 바 모에드)”(102:13). 정한 때가 오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기에, 시편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모습이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야마이 케쩰 나투이)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와아니 카에세브 이바쉬)”(102:11). 시인은 인생의 고통과 고난에 대하여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상황이다.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키 에페르 칼레헴)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웨쉬쿠와이 비베키 마사케티)”(102:9). 이 탄식하는 상황이 하나님의 분노로 말미암은 것이라 고백한다.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미프네 자아메카 웨키쩨페카)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키 네사타니 와타쉐리케니)”(102:10). 고난의 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시인은 원수들의 사라짐을 간절히 바랄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콜 하욤 헤레푸니 오예바이) 내게 대항하여 미칠 듯이 날 뛰는 자들이(메홀라라이 비)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니쉬바우)”(102:8).

시편에서는 탄식과 감사(찬양)의 상황이 되풀이 되어 반복되며 이는 우리 일상의 모습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탄식과 감사(찬양)은 우리의 인생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상태이다. 시편 4(민수기 시편)은 이 구조를 여호와 말라크 시편(90-99)과 다윗 시편(101-103)으로 양분하여 보여주면서 모세의 틀(90-92편과 105-106)에서 전체를 아우른다. 이 모세의 민수기 시편 4권은 탄식과 감사가 각각의 시편에 같이 내포하고 있지만 주로 90편은 탄식(74, 79, 89편 같이), 91, 92, 93, 94, 95-99 편은 감사(여호와의 피난처 되심과 여오와의 왕되심), 101-103편은 다윗의 왕시편(찬양과 탄식), 105-106 편은 찬양(감사)시편으로서 역사시편이다. 100편은 감사 시편으로 탄식과 감사(찬양)으로 내용으로서 양발의 구조와 장단의 구조를 가진다. 이는 시편의 세계를 어우러지게 구성하며 씨줄(탄식)과 날줄(감사, 찬양)을 엮어가고 있다. 이 시편 102편은 탄식의 상황들(1-11), 분위기 반전(여호와의 도우심, 12-17)이 이뤄지게 되고 결국 감사와 찬양으로 그 국면이 전환되게 된다.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파나 엘 테필라트 하아르아르)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웨로 바자 에트 테필라탐)”(102:17). 시편 10218-28절은 감사와 찬양하는 결정적인 때를 말하고 있다.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티카테브 조트 레도르 아하론)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웨암 니브라)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예할렐 야흐)”(102:18). 인생의 과정에서 찬양하는 자의 불행한 순간들을 보시며 하나님은 그 탄식의 소리를 들으시며 그의 구원과 해방을 베푸신다.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리쉐모아 에네콰트 아시르)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레파테아흐 베네 테무타흐)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레사페르 베찌온 쉠 아도나이),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우테힐라토 비루샬람)”(102:20-21). 이 시편의 탄식의 절정은 중년에 자신을 데려가지 말라고 탄식하고 있는 현재의 실존을 걱정하며 탄식하는 장면이다(10224). 결국 시인은 시험을 넘어 그 역경을 통한 시련극복의 결론 시를 선포하고 있다. “주의 종들의 자손은(브네 아바데이카)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이쉬코누)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우자르암 레파네이카 이콘) 하였도다”(102: 28).

 

이러한 탄식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복음의 빛을 전하며 살아간 분들이 있다. 스웨러(Wilbur C. Swearer, ) 선교사는 1898년 충청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에 기도처를 세웠다. 하지만 독립 운동과 민족 해방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그 예배당은 1907년 일본 경찰에 의해 불태워졌다. 이후 스웨러 선교사는 1908년 지령리 교회를 다시 설립하고 또 1910년 진명학교를 설립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교육하였다. 그래서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시에 유중권, 조인원 등이 주축이 되어 교인들이 앞장서게 된다. 많은 교인들이 순교하고 유관순(1902-1920)도 이 때 체포되어 순국하게 된다. 이 교회는 철저한 감시 속에 핍박받다가 1932년 폐쇄 당한다. 그런데 1966년 다시 개척되어 이화여고의 지원으로 기념 교회가 세워지면서 매봉 교회로 건축되었고 1층에는 유관순 기념관이 설치되었다. 이전에 이 매봉 교회는 천안의 최초의 교회가 되었다. 이는 스웨러 선교사가 목천 방문을 통해 여주의 박해석 전도사를 통해 매봉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

스웨러 선교사(오른쪽) 일행이 자전거를 타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장면
스웨러 선교사(오른쪽) 일행이 자전거를 타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장면

스웨러 선교사는 미감리회 선교사로서 공주와 충청도 지역의 선교를 담당한 스크랜턴 선교사에 뒤를 이어 이 지역을 담당한다. 이는 스웨러 선교사는 스테드맨 선교사의 철수 이후 해미와 덕산을 중심으로 했던 선교하였고 이는 홍성 지역의 선교 사업을 맡아 하게 된다. 이는 공주와 홍성을 잇는 공주 지역을 확장하여 선교부가 한국 남부지방에서 서부지방으로 이관하게 된다. 이는 충남관찰부가 입지한 공주에 선교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대도시 선교 전략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공주제일교회(공주기독교 박물관)는 그 흔적을 살필 수 있게 한다. 이 공주제일교회는 공주 선교와 충청 선교의 시작점이 된다. 1902년 스웨러 선교사는 배재학당 출신인 김동현 전도사를 파송하여 교회가 시작되도록 하였다. 이 장소는 공주 관찰부 앞, 현 반죽동인데 여기에서 선교사는 초가 한 동을 구입해서 교회가 시작되게 한다. 김 전도사는 경기도 시흥 무지내 사람으로서 1901년 무지내교회를 설립하고 수원 선교의 시작점이 될 선교 부지를 구입하다가 일제 순경에 잡혀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자 공주를 떠나게 되고 19037월 초가 두 동에 부동산을 구입해 의료선교사 맥길이 파송되어 온다. 한편 스웨러 선교사는 3.1운동의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며 독립 운동을 주도한 신홍식 목사에게 35세 때에 세례를 주었다.

공주제일교회는 1905년 공주 최초의 근대식 교육의 요람인 명선여학교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유관순은 2년간 공부를 하게 된다. 19241월 중앙영아관을 설립한 덴마크 출신의 보딩(Moren Bording) 선교사가 최초의 우유 급식소를 설치하게 하고 1926년 아이들에게 우유를 공급하게 된다. 이처럼 스웨러 선교사가 시작한 공주 선교는 하나님의 파송 선교사들이 뒤이어 이어졌다. 이 선교의 줄 잇기 하나님의 선교를 행함으로써 한국에 복음의 서광이 서서히 비춰오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교는 한 개인과 한 민족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며 하나님 나라와 의을 제시하며 영혼 구원과 천국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내비게이션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이 영원한 참자유의 가치를 전하는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에는 이 선교사들의 노고와 땀, 씨앗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도 지구촌 선교의 씨앗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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