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26)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38)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데우 키 아도나이 후 엘로힘)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아수누)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웨로 아나흐누 암모)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웨쫀 마르이토)”(100:3).

인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나 좋은가? 우리네 인생은 즐거운 날보다는 슬픔과 걱정의 날들이 더 많이 보내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러한 환난의 날을 보내며 그 속에 살아가는 현실이다. 하지만 시편의 세계를 알게 되면 근심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날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감사하고 노래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온 땅이여(콜 하아레츠)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하리우 라아도나이)”(100:1). 시편 100편 기자는 시편 4(90-106)에서 <감사의 시>라는 표제어(미즈모르 레토다)를 통해서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노래를 부를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없고 주위를 돌아보면 걱정과 근심을 하는 상황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신앙으로 감사하는 인생을 배우게 된다.

시편 100편은 찬양 시편으로서 우리가 찬양하게 되는 이유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웨로 아나흐누)”(3). 하나님은 모든 땅 위에 당신의 이름이 얼마나 크신지요(호두 로 바라쿠 세모)’ 찬양받으실 분이라는 사실이다(4).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 되시며,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선택하시는 분이시요 역사의 주이신 창조주라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분이라는 사실을 이 찬양시를 통해 말한다. 그래서 이 시편은 땅 끝으로부터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셔야 한다고 말한다(33, 46, 103, 113). 이처럼 역사와 창조를 통해, 이스라엘 역사적 사건으로서 창조에 대한 견해를 함축적인 표현으로서 고백하며 시편 100편은 구속사 시편으로 이를 말한다(24).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래서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말한다(100:3). 시편은 50(아삽)에서 초반의 결론으로 감사로 끝을 맺고, 100편에서는 간결한 감사와 찬양으로 중반의 결론을 맺으며, 마지막 150편에서 전체의 결론으로써 찬양의 결론으로 종결을 맺는다.

인생의 문제가 찬양과 감사에 있다. 우리가 그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야 풀린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그 인생 문제가 해결된다. 이는 인생과 인간의 주권을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데서부터 해결되기 때문이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보우 쉐아라이오 베토다)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하쩨로타이오 비트힐라) 그에게 감사하며(호두 로)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100:4).

미국 테네시 주에 흑인 노예들이 찬송하던 박물관이 있다. 테네시 주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붙들려 왔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를 알 수 있는 것이 축복이요 예수를 배울 수 있는 것이 복이 되었다. 예수가 고난의 삶 속에서도 그들이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희망의 주가 예수라는 사실을 찬양한다. “예수, 예수여 아침에도 예수, 점심에도 예수, 밭에서도 예수, 저녁에도 예수, 드러누워 잠잘 때 예수여 (진정한 자유) 예수여라는 간단한 찬송 가사를 가지고 반복하며 희망의 주님 예수를 찬송한 가사를 볼 수 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키 토브 아도나이)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레올람 하세도)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웨아드 도르 와도르 에무나토)”(100:5). 고난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끊임없는 사랑으로말미암아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영원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오늘도 사랑하시고 인도하시기에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며 그의 문(성전)과 그의 궁정에 들어가면서 감사하며 찬송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숱한 고난과 고통의 연속인 인생의 어두움 속에 살면서도 감사거리를 생각하며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다. 그분의 창조를 노래하며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하심을 기리며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아브두 에트 아도나이 베심하)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보우 레파나이오 비르나나)”(100:2). 그래서 모든 민족이 찬양하는 날까지 우리는 그를 높이며 찬양하면서 감사할 것이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하리우 라아도나이) ”(100:1). 이러한 노래를 부르던 분들이 계시다.

사애리시(엘리스 해머드 샤프, A. H. Sharp, 史愛理施, 1871-1972)선교사는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로서 오하이오 주에서 교역자로 일하다가 190331살 나이에 한국으로 선교하러 온다. 그녀는 한국 이름인 사애리시에서, ‘역사적으로 예수의 사랑과 이치를 베풀자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부인은 한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선교사가 되었다. 천안과 공주, 강경, 연산, 은진, 노성을 순회하면서 영아 육아원과 학교(공주 영명여학교)를 세워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유관순, 이순길)에 그 씨앗을 뿌렸다. 그녀는 공주에 복음을 전한 스크랜톤, 스웨러, 맥길 선교사의 뒤를 이어서 공주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과거 조선말 시대는 한양(서울)과 공주가 대도시에 속했다. 그래서 샤프 선교사 부부가 1904년 공주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한다. 남편 샤프(로버트 아더 샤프) 선교사는 윤성렬을 교사로 하여 영선학당(영명 남학교)을 설립하였다. 그는 서울에서 황성 기독청년회에 호모 헐버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리버 에비슨, 제임스 그카스 게일 등과 함께 초대 이사로 섬기며 기독교 청년 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로버트 샤프의 아내 앨리스 해먼드 사프는 1904년 공주에서 결혼하여 최초의 서양식 벽돌 양옥집을 짓고 살며 선교를 시작한다. 샤프 부인은 허조셉 전도부인을 교사로 하여 두 명의 학생을 가지고 명선여학당(영명여학교)설립하게 된다. 남편 샤프 선교사가 발진티푸스 감염으로 사망하자 1906년 우리암(W. E. C. Williams)선교사가 뒤를 이어 공주로 와서 영명학교(영명고등학교 전신)를 설립하며 인재를 양성하였다.

샤프 선교사는 유관순 열사를 수양딸로 삼아 영명학교에 입학시켰고 3.1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공주제일교회는 충정지역 3.1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다. 190611월 이후 스웨러 선교사 부부, 윌리엄즈 선교사 부부, 케이블 선교사 부부, 테일러 선교사 부부, 번스커스 의료 선교사 부부 등이 공주에 주재하면서 한국 선교의 중심지를 형성한다. 이 공주가 한국 근대화의 명동(明洞), 선교본부가 되어 충청도의 선교 거점이 되게 하였다.

(왼쪽 상단 기준) 사애리시 선교사, (아래) 샤프 선교사, 유관순 열사 수형표(서대문구치소), 공주 영명학교
(왼쪽 상단 기준) 사애리시 선교사, (아래) 샤프 선교사, 유관순 열사 수형표(서대문구치소), 공주 영명학교

사애리시 선교사는 유관순, 이순애, 박인덕, 임영신, 노마리아, 전밀라 등 어려운 가정의 소녀들을 교육하였다. 샤프 선교사는 논산 읍내에 1909년 영화 여학교와 진광남학교를 설립하여 복음을 전했고, 그 후 1928년에는 예배당을 세웠다. 강경과 연산, 은진, 노성 지방을 순회하면서 사회복지 활동, 유치원을 설립하면서 그녀는 복음을 전하다가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때에 일제가 1939년 그녀를 강제 추방하여 미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사애래시 선교사는 캘리포니아 파사데나 은퇴 선교사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03세 장수하고 소천하였다. 샤프 선교사는 유관순을 양녀로 삼고 이화여학당에 유학을 시키면서 복음 전도자로서 키웠고 그 외에도 이순길 같은 독립 운동가를 키우며 한국 여성의 빛나는 누나로서, 한국 독립의 어머니, 할머니로서 아직도 한국인의 가슴에 남아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으깨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유관순의 투옥 중 기록, 뉴욕타임스 3월 기사, <유관순, 일제 통치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샤프 선교사의 양녀 유관순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예수 사건을 알리는 3.1 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과 신약의 십자가 사건이 인류 역사의 자유와 해방을 알리는 이정표가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여러 민족과 나라의 자유와 해방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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